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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 14권, 현종 9년 4월 13일 辛巳 3번째기사 1668년 청 강희(康熙) 7년

교리 이단하의 요청으로 김인후ㆍ강항ㆍ김덕령을 추증하다

김인후(金麟厚)를 정경(正卿)에, 강항(姜沆)·김덕령(金德齡) 등을 당상에 추증하라고 명하였다.

김인후는 호가 하서(河西)이며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이 뛰어나 옥당에 들어와 교리가 되었다. 인종에게 인정을 받아 인종이 장차 크게 쓰려 하였다. 인종이 승하한 후에는 병을 칭하고 벼슬하지 않았으며, 매년 인종의 기일(忌日)을 만나면 홀로 산속에 들어가 통곡하고 돌아왔으므로 ‘해마다 칠월이면 온 산중에 통곡소리[年年七月日 慟哭萬山中]’라는 시구가 있게 되었다.

강항은 임진 왜란 때 호조의 낭관으로서 호남 지방에 갔다가 왜적에게 포로가 되어 일본에서 10여 년을 살았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였으나 선정(先正)의 여러 신하들이 그의 절의에 대해 많이들 칭송하였으며, 그가 지은 《간양록(看羊錄)》이 세상에 전한다.

김덕령은 임진 왜란 때 의병장으로 세상에서 ‘익호 장군(翼虎將軍)’이라고 하며, 역옥(逆獄)에 연루되어 죽었는데, 대개 당시 사람들이 그의 용력을 꺼려서 모함하여 죽인 것이다.

교리 이단하(李端夏)가 이 세 사람의 행적을 상소를 올려 말하자, 이에 이 명이 있게 된 것이다.

삼가 살펴보건대, 강항은 임진 왜란을 당하여 왜적에게 포로가 되어 고용살이를 하다가 쫓겨났다. 이에 왜적의 자제들을 모아 글을 가르쳐 주고 쌀을 받아 살아가다가 십여 년이 지난 뒤에 배를 훔쳐 타고 도망쳐 왔는데, 선조께서 버려둔 채 등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를 일러 왜적에게 항복하였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나, 그에게 무슨 칭할 만한 절의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이단하는 당론에 병들어서 감히 추증하기를 청하였으니, 참으로 《논어》에서 말한 ‘내가 누구를 속이겠는가. 하늘을 속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77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命追贈金麟厚正卿、姜沆金德齡等堂上。 麟厚號曰河西, 經明行修, 入玉堂爲校理, 見重於仁廟, 仁廟將大用之。 仁廟昇遐之後, 遂稱病不仕, 每値仁廟忌辰, 獨往山中, 慟哭而還, 有 ‘年年七月日, 慟哭萬山中’ 之句。 , 壬辰以戶曹郞, 往湖南, 爲所據, 居日本十餘年。 及還本國, 不容於世, 而先正諸臣, 多稱其節義, 其所著《看羊錄》, 行于世。 德齡, 壬辰亂義兵將也, 世稱翼虎將軍, 死於逆獄, 蓋時人忌其勇力, 搆而殺之。 校理李端夏以三人行蹟, 上疏言之, 於是, 有是命。

【"謹按當壬辰難, 爲所擄, 以傭保而見黜。 聚子弟, 敎書受米以度日, 十數年後, 盜船奔還, 宣廟棄不用。 謂之降於, 則過矣, 有何節義之可稱哉。 端夏痼於黨論, 敢請追贈, 眞所謂吾誰欺, 欺天者也。"】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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