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을 행하고, 유철ㆍ오정위 등을 파직시킬 일 등을 논의하다.
상이 대신·형관·삼사의 여러 재상과 더불어 삼복을 행하였다. 경외의 사형수 20명 중에서 인정과 법을 참고하여, 정배한 자가 5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율대로 따랐다. 집의 이익 등이 아뢰기를,
"좌윤 유철은 재상의 반열에 있는 신분으로 혐의로운 행위를 피하지 아니하고 곤수를 찾아가서 보았으니 실로 사대부의 수치입니다. 파직시키소서."
하니, 상이 추고하라고 하였다. 또 아뢰기를,
"형조 참판 오정위도 통제사 박경지를 찾아가서 문밖에서 만나보았다고 합니다. 재신 중에 직접 목격하고 말하는 자가 있는데도 오정위는 그 사실을 숨기려고 끝까지 자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파직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또 아뢰기를,
"담양(潭陽) 사람 이운정(李雲挺)은 자기 아비가 형벌을 받고 죽자 격쟁(擊錚)하여 원통함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는 부민(部民)이 고소하는 것과는 다른 것인데 전가 사변의 죄까지 받았으니, 인정과 법으로 볼 때 용서해 줄 수 있는 일입니다. 석방시키도록 명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홍명하가 아뢰기를,
"문관과 무신이 길은 다르다 하더라도 만일 서로 알고 지내는 친분이 있다면 한번 정도 찾아가 보는 것은 무방할 듯하며 간청한 일도 없었는데 파직까지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처신을 잘하는 것이 으뜸이다. 찾아가 보았더라도 요구한 바가 없었다면 무엇이 나쁘겠는가마는 비록 찾아가 보지 않았더라도 서신을 보내 요구했다면 매우 안 될 일이다. 나는 찾아가 본 것을 가지고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니고 대관이 아뢴 글에 ‘자수하지 않는다.’고 말하므로 윤허한 것이다."
하였다. 승지 민유중이 아뢰기를,
"어제, 비국의 공사(公事)를 미처 입계하기 전에 먼저 누설한 일에 대해 분부가 계셨습니다. 신에게도 이러한 잘못이 있으니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유창을 형추하라고 판하(判下)하신 뒤에 신이 복역(覆逆)하여 아뢰려고 이미 갖추어 놓고 미처 올리지 않았을 때 대신의 차자가 때마침 도착하는 바람에 그 공사를 미처 해부에 내려보내지 못했습니다. 신이 먼저 누설한 일이 없는데 밖에 있는 대신이 먼저 알고 있기에 신도 사실 의아해 했으나, 대신의 차자이므로 부득이 입계하였습니다. 그러나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신의 잘못이 드러났기에 황공하여 대죄합니다."
하였다. 홍명하가 아뢰기를,
"지금 이 말을 들으니 신 역시 황공합니다. 유창의 공사를 당초에 돌려보내라는 명이 있었으므로 혹시 과중한 분부가 있을까 염려되어 신이 서면으로 도승지 장선징(張善瀓)에게 물었더니, 형추하라 하였다고 답하였기 때문에 신이 알 수 있었습니다. 지레 먼저 차자를 올린 것은 경솔한 처사였습니다만 이미 듣고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신은 진실로 잘못이 있습니다. 그러나 승지가 비록 복역하였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그 공사를 금오에 내리지 않았단 말입니까. 승지가 한 일 역시 타당하지 못합니다."
하니, 민유중이 아뢰기를,
"대신의 말도 옳은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승지 김만기도 아뢰기를,
"대신의 말에는 뒤폐단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미 복역하였으면 상의 마음을 돌리기 전에는 이것이 성립되지 않은 명인데, 한편으로는 환수하기를 청하고 한편으로는 공사를 내리라는 말입니까.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대신이 실언한 것입니다."
하였다. 홍명하가 아뢰기를,
"날이 저문 뒤에도 내려보내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비록 복역하였더라도 공사를 내리는 것이 무슨 지장이 있단 말입니까."
하니, 김만기가 아뢰기를,
"이 일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일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라고 세 번 말하고, 이어 아뢰기를,
"정원이 복역하는 것은 삼사가 환수하는 것과 같지 않으니, 먼저 공사를 내리는 것은 결코 불가한 일입니다."
하였다. 홍명하가 아뢰기를,
"이는 다름이 아니라 이미 신의 차자로 인하여 먼저 환수하기를 허락하였으므로, 김만기 등이 상의 마음을 미처 돌리지 못한 것을 불만족스럽게 여겨 이러쿵저러쿵 말한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신에게 말하기에 그때는 믿지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하니, 김만기가 아뢰기를,
"복역의 계사에 대하여 미처 비답도 내리기 전에 대신의 차자가 외부로부터 먼저 입계되었으니, 신은 그 일의 체모가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홍명하가 발끈 성을 내며 아뢰기를,
"김만기가 탑전에서 감히 신을 배척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못났으나 직분상 대신인데 어찌 감히 이렇게 한단 말입니까.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정태화가 아뢰기를,
"어제 월등된 인원을 초계하여 탕척시켜 줄 일로 분부를 내리셨는데, 신이 다시 생각해 보니 아래에서 초계하다 보면 필시 균일하지 못한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가 원래 대단치 않은 것이니 등급의 다소를 따지지 말고 모두 말끔히 씻어주소서."
하니, 상이 따르고 이르기를,
"지금 말끔히 씻어준다고 해서 뒷날 규례로 삼지 말 것이며, 이 다음부터는 월등을 7등으로 한정하여 정식을 삼도록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정원이 복역한 계사에 대하여 미처 비답을 내리기도 전에 상신의 구원하는 차자가 밖으로부터 먼저 이르렀으니, 일반적인 사례로 비추어 보면 경솔한 듯하다. 그러나 만일 대신이 이미 들은 바가 있다면 어찌 정원이 쟁집하는 데에만 맡겨 두고 진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비변사의 계초를 먼저 전달한 것과 서로 다른데도 민유중은 짐짓 이 일을 끌어대어 억지로 자기 잘못이라 하고 마음속으로는 불평스럽게 여겨 기척하는 뜻이 현저하게 있었으니 꽉 막혀 있는 그의 소견은 깊이 책망할 것도 없다. 그러나 대신의 입장도 마땅히 너그럽게 수용하여 대체를 보존하기에 힘썼어야 할 텐데 도리어 성을 내며 떠들어 스스로 체면을 손상시켰다. 처음에는 민유중이 즉시 계하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타당성을 잃었다 하고, 끝에 가서는 김만기가 자기의 말을 공박한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여 지나치게 소리치고 말도 조리를 잃어 문비(問備)를 청하기까지 하면서 그릇된 행위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아, 대신이 되어 백성들의 위에 있으면서 일찍이 한 마디 반 마디라도 임금과 백성들을 위한 계획은 언급하지 않고 그저 자신만 높이고자 하여 자신을 침범한 사람에 대해 화를 내면서 ‘어찌 감히 이렇게 대놓고 배척하는가.’ 하였다. 또 설령 김만기의 말에 과연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의 시비는 마땅히 공론에 맡겼어야 할 것이니 직접 벌주기를 청한 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행동인 듯하다. 잘못이 있으면 다스리기에 힘썼던 옛사람의 의의로 볼 때 과연 어떠한가. 아, 애석하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33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
○壬戌/上與大臣刑官三司諸宰, 行三覆, 論京外死囚二十人, 參以情法, 定配者五人, 餘皆依律。 執義李翊等啓曰: "左尹兪㯙, 身居宰列, 不避嫌疑之迹, 往見閫帥, 實爲士夫之羞。 請罷。" 上曰: "推考。" 又啓曰: "刑曹參判吳挺緯, 亦往見統制使朴敬祉於門外。 宰臣至有目覩而傳說者, 而挺緯欲掩諱, 終不自首。 請罷推。" 上從之。 又啓曰: "潭陽人李雲挺以其父受刑致死, 擊錚訟冤。 此非部民告訴之比, 而至被全家之罪, 參以情法, 容有可恕。 請命放釋。" 上從之。 命夏曰: "文武雖殊塗, 如有相識之分, 則一者往見, 似無所妨。 旣無所干請, 則至於罷職, 恐似太過也。" 上曰: "持身爲上。 雖或往見, 若無所求, 庸何傷乎, 雖不往見, 以書干求, 則甚不可也。 予非以其往見爲可罪, 臺啓以 ‘不爲自首’ 爲言, 故允之矣。" 承旨閔維重曰: "昨以備局公事, 未入啓前先泄事, 有下敎。 臣亦有此失, 臣未免爲不職矣。" 上曰: "甚事?" 對曰: "兪瑒刑推判下之後, 臣欲覆逆啓, 旣具未上, 大臣箚本適至, 其公事未及下於該府。 臣無先泄之事, 而在外大臣, 能先聞之, 臣實疑訝, 係是大臣之箚, 不得不入啓。 而臣之不職著矣, 惶恐待罪。" 命夏曰: "今聞此言, 臣亦惶恐。 兪瑒公事, 初有還下之命, 慮或有過重之擧, 臣書問於都承旨張善澂, 則答以刑推判下, 故臣得以知之。 至於徑先陳箚, 殊涉率爾, 而旣已聞之, 亦安可已乎?" 因曰: "臣則固有失矣。 承旨雖覆逆, 何敢不下其公事於金吾乎。 承旨之事, 亦未爲得也。" 維重曰: "大臣之言, 亦未知其得也。" 承旨金萬基亦曰: "大臣之言, 不無後弊矣。 旣方覆逆, 則未回天聽之前, 便是未成之命, 一邊請以還收, 一邊因下公事。 豈有是理也。 大臣於是乎失言矣。" 命夏曰: "日暮之後, 猶不下何也。 雖覆逆, 因下公事, 抑何妨乎?" 萬基曰: "此大不然。 此大不然。" 如是者三, 仍言曰: "政院覆逆, 與三司還收不同, 先下公事, 決不可也。" 命夏曰: "此無他, 旣因臣箚, 先許還收, 故萬基等以其未及回天爲歉, 多有所云云。 有人以此言於臣, 曾不之信, 今果然矣。" 萬基曰: "覆逆之啓, 未及賜批, 大臣之箚, 自外先入, 臣未知其事體果何如也。" 命夏怫然怒曰: "萬基敢於榻前, 侵斥臣身臣雖疲劣職是大臣, 何敢如是, 請推考。" 上從之。 太和曰: "昨以越等人員抄啓蕩滌事有命, 臣更思之, 自下抄啓, 必有不均之弊。 且其罪元非大叚, 無論等數多少, 宜盡蕩滌。" 上從之曰: "今雖蕩滌, 後勿爲例, 而此後越等, 以七等爲限定式。"
【史臣曰: "喉司覆逆之啓, 未及賜批, 相臣匡救之箚, 自外先至, 揆以俗例, 或涉率爾。 若使大臣, 旣有所聞, 則亦何可諉諸政院之爭執而不爲之進言乎? 此與宣泄籌司啓草, 自不相同, 而維重故援玆事, 强爲引咎, 中懷不平之心, 顯有譏斥之意, 其拘泥之見, 不足深責。 其在大臣之道, 亦宜容而受之, 務存大體, 而乃反乘憤呶呶, 自損體面。 始以維重之不卽啓下爲失當, 終以萬基之攻破己言爲不可, 太露聲氣, 語失倫脊, 至請問備, 不自覺非。 噫! 身爲大臣, 位居人上, 而曾無一言半辭及於君民大計, 徒欲自尊, 怒人侵已, 乃曰: ‘何敢直斥如是。’ 設令萬基之言, 果有所失, 事之是非, 宜付公議, 自爲請罰, 實涉無謂。 其視古人勤攻闕失之義, 果何如哉。 吁! 惜哉。"】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33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