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실록 6권, 효종 2년 2월 21일 戊辰 2번째기사
1651년 청 순치(順治) 8년
주강에 나가니 지경연 이기조가 청의 신하들과 사귀어 둘 것을 청하다
상이 주강에 나아가 《서전》 우공을 강독하였다. 강독이 끝나자 지경연(知經筵) 이기조(李基祚)가 아뢰기를,
"신은 이제 막 북경에서 돌아왔으므로 감히 듣고 본 사실을 진달할까 합니다. 청주(淸主)의 나이는 이제 14세인데 전상(殿上)에 앉아 제장(諸將)을 거만하게 지휘하였습니다. 그리고 청장(淸將) 중에는 파흘내(巴訖乃)만 현재 우리 나라를 돌보아 주는 빛이 있을 뿐 명조(明朝) 사람으로 청국에 벼슬한 홍승주(洪承疇)·풍전(馮烇)·유수환(劉守渙) 등은 모두 우리 나라를 해치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승주는 대릉하(大陵河) 패전의 책임을 오로지 우리쪽에 돌리고 풍전은 수차 글을 올려 조선에게 청국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깎게 할 것을 청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금백(金帛)을 출연하여 이들과 사귀어 두어야만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왕(漢王)에게 4만 근의 황금이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 진평(陳平)이 능히 그것을 사용하였다031) . 비록 금백이 있더라도 누가 능히 그것을 사용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9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70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외교-야(野)
- [註 031]한왕(漢王)에게 4만 근의 황금이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 진평(陳平)이 능히 그것을 사용하였다 : 한왕 유방(劉邦)이 형양성(滎陽城)에서 초(楚)의 항우(項羽)에게 포위되었을 때, 진평이 "대왕께서 능히 황금 수만 근을 출연하여 반간(反間)을 놓아 초의 군신을 이간시켜 서로 의심하게 한다면 항왕(項王)은 남을 꺼리고 참소를 잘 믿으므로 반드시 서로 죽일 것이니 한(漢)이 그 기회를 틈타 공격하면 초를 격파할 것은 분명합니다." 한 말에 따라 한왕이 그에게 황금 4만 근을 주니, 그것으로 초의 군사에게 반간을 놓아 항우의 근신인 아보(亞父)와 종리매(鍾離昧)를 항우로부터 떠나가게 하고 마침내 형양성에서 탈출하였다.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