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신을 인정전에서 접견하고 칙서 1통을 받다
상이 서교(西郊)에 나갔다. 승지 오정일(吳挺一)을 불러 마대군(馬隊軍)을 물러가게 하라고 명하였는데, 이는 저들이 볼까 염려해서였다. 환궁한 뒤에 인정전에서 접견하고, 영칙례(迎勅禮)를 행하였다. 청사(淸使)가 또 칙서 1통을 상에게 바쳤는데, 바로 섭정왕(攝政王)의 글이었다. 그 글 중에 혼사에 관한 언급이 있었기 때문에 파흘내와 기청고 등이 매우 비밀스럽게 처리하여 좌우를 물리친 뒤에 상에게 볼 것을 청하였다. 상이 어렵게 여기는 기색이 없자 파흘내 등이 서로 돌아보며 웃었다. 파한 뒤에 상이 도승지 윤강(尹絳)에게 일렀다.
"혼사를 쾌히 허락하자 저들이 매우 기뻐하였다. 사문(査問)도 하지 않았으나 오늘날의 일이 상당히 완화된 것이다. 이런 뜻을 대신에게 전하라."
【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황제는 조선 국왕에게 칙유한다. 전에 그대의 선왕(先王)에게 시호를 내렸는데도 그대는 공손하게 상소하여 사은하지 않음은 물론 예물도 바치지 않았으며, 황숙(皇叔) 섭정왕(攝政王)이 부의를 보냈는데도 본장(本章)에 대해서 사은하지도 않았다. 또 비록 예물은 갖추었다 하더라도 단자(單子)에 황숙부 섭정왕이라고 쓰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실례한 것이다. 그리고 왕의 주문을 보니 ‘왜(倭)의 사정이 참으로 우려스럽다. 혹시 위급한 일이라도 만나게 되면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성을 수리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고자 한다.’ 하였고, 또 ‘의정부가 첩보에 의거하여 말하기를 「만일 왜국의 연해에 표류해온 한인(漢人)의 배를 가까운 왜관(倭館)으로 보내지 않고 곧바로 상국으로 보내게 되면 그들이 전보다 더 심한 악감을 우리에게 갖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는 등의 말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보고를 한 관원은 앞으로 한인을 왜인으로 만들어 왜국으로 보내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명조(明朝)가 아직도 있다고 여겨서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짐(朕)의 한인을 강제로 왜국으로 보내겠다는 것인가? 그런 관원은 분명히 난(亂)을 만들어 나라를 망칠 사람인 듯한데, 국왕은 그런 관원을 잡아다 중죄로 다스리지는 않고 도리어 그를 인용하여 주문을 하였으니 이는 그대의 과실이다. 즉시 잡아다 국문해서 중죄를 내리라. 또 보내온 배신(陪臣) 이시방은 부신(部臣)에게 ‘금년은 면(綿)을 걷지 못하였으니 한 해의 공포(貢布)를 줄여 달라.’고 하여 부신이 전주(轉奏)하였다. 짐은 조선의 고통을 민망히 여기고 평민들을 불쌍히 여겨 일찍이 세공(歲貢)과 사신(使臣)에게 예로 제공하는 것을 많이 줄여 주었는데, 이것이 어찌 그대가 요구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겠는가. 대체로 실정과 말투를 보건대 주문은 비록 왕의 주본(奏本)이지만 주본의 말은 실로 왕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필시 간신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만일 왜인이 강함을 믿고 그대 나라를 침범한다면 대국의 군사가 구원할 것이며, 결단코 지체하거나 잘못할 리가 없다. 그대 나라의 간신이 천하가 아직 다 평정되지 못하고 도적이 아직 모두 없어지지 않은 것으로 헤아리고 그대 나라의 병마(兵馬)를 조발할까 염려하여 일부러 가상적인 것을 설정하고 거짓으로 왜인의 실정에 핑계를 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천하가 이미 하나가 되었고 모든 백성이 우리의 영역으로 귀일되었다. 지난날 표류해온 왜선을 짐이 불쌍히 여겨 차마 구류하지 못하고 그대 나라로 송환하였다. 그런데 그대는 이번에 짐의 백성인 한인의 배를 붙들어서 이곳으로 보내지 않고 왜관으로 보내고자 하였으며, 또 성을 수축하고 병사를 훈련하고자 하였다. 이는 모두 난신(亂臣)에게서 나온 말이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 그대의 선왕(先王)은 우리 조정의 은덕을 잊지 못하여 충성을 다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왕이 어찌 충성을 다하려 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비단 지금만이 아니라 그대 조선의 사왕(嗣王) 대대로 영원히 산하(山河)와 같이 변함이 없을 것이니 어찌 잊을 때가 있겠는가. 이는 모두 아래의 간신이 당을 결성하여 끝없는 난(亂)의 근원을 열어놓는 것이다. 모든 말은 보낸 대신에게 만나서 모두 말하도록 하였다. 특별히 유시한다."】
두 번째 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부(皇父) 섭정왕(攝政王)은 조선 국왕에게 칙유(勅諭)한다. 나의 여러 왕(王) 및 패륵(貝勒)과 여러 대신들이 누차 아뢰어 ‘예로부터 번국(藩國)의 참한 여인을 가려서 비(妃)로 삼은 전례가 있으니, 대신을 조선으로 보내서 숙녀를 가려 비로 삼아 조선과 인친(姻親)을 맺도록 하기를 바란다.’고 하기에, 많은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어 특별히 대신들을 보내어 인친에 관한 일을 유시하도록 하였다. 그대 조선은 이미 우리와 한 나라가 되었는데, 다시 인친을 맺게 된다면 더욱 오래도록 견고하여 두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왕의 누이나 딸, 혹은 왕의 근족(近族)이나 대신의 딸 중에 참하고 덕행이 있는 자가 있으면, 선택하여서 짐이 보낸 대신들이 보고 와서 회주(回奏)하게 하라. 특별히 유시한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17면
- 【분류】외교-야(野) / 외교-왜(倭)
○上出西郊。 召承旨吳挺一, 命去馬隊軍, 嫌爲彼人所見也。 旣還宮, 接見于仁政殿, 行迎勑禮。 淸使又以一勑書, 授于上, 乃攝政王書也。 書中及婚事, 故巴訖乃、祈靑古等甚秘之, 辟左右, 然後請上見之。 上無留難之色, 巴訖乃等, 皆相顧而笑。 旣罷, 上謂都承旨尹絳曰: "快許婚事, 則渠輩甚喜。 査問亦不行於今日, 事機頗緩矣。 以此意傳諭大臣。" 其勑云:
皇帝勑諭朝鮮國王前。 謚爾先王, 爾不耑疏謝恩, 兼乏謝獻之儀, 皇叔攝政王贈賵, 亦不曾有謝恩。 本章雖具有禮物, 而單上不書皇父攝政王, 此皆失禮之處, 及閱王奏內有云: "倭情萬分可慮。 倘遇警沒奈何, 欲修築訓鍊。" 又議政府據報云: "如有漂到倭國沿海漢人船隻, 不送於咫尺倭館, 直爲解送上國, 其蓄憾於我, 比前必甚。" 等語。 其具報官員, 將欲以漢人作倭人, 而與倭國歟? 抑以爲明朝猶在耶? 抑强欲以朕之漢人, 而捕送倭國耶? 似此官員, 顯是啓亂壞國之人, 王不將此官, 挐問重罪, 而徑云奏, 是爾之失也。 卽宜挐問, 加以重罪。 又遣來陪臣李時昉向部臣云: "今歲不收綿, 請緩一年貢布。" 部臣爲之轉奏。 朕節次憫念朝鮮苦累, 軫恤平民, 曾於歲貢之物及饋遺使臣之禮, 大爲裁減, 此豈爲爾有求而然耶? 槪觀情詞, 具奏雖係王本, 而本內語意, 實非出於王心, 必由奸臣造意也。 若倭果恃强侵犯爾國, 大兵拯援, 斷無遲誤之理。 爾國奸臣, 料天下未盡平定, 盜賊未盡滅息, 恐調爾國兵馬, 以故致設虛揣, 詐諉倭情耳。 今天下業已混一, 億兆盡歸版圖矣。 向曾有漂到倭船, 朕心惻然, 不忍拘留, 尙且付爾國送還。 爾今欲以所獲朕之漢人船隻, 不送於此, 而送倭館, 又欲修築訓鍊, 此皆亂臣所出之言也。 思昔爾先王, 不忘我朝恩德, 竭盡忠誠。 今王豈有不欲竭盡忠誠之理? 不特此一時, 卽爾朝鮮嗣王子子孫孫, 無間世代, 永如山河之不改易, 豈應有渝忘之時乎? 此皆是在下奸臣, 朋比結黨, 啓無窮之亂源者也。 凡百語言, 悉在遣去大臣面言之, 特諭。
其二曰:
皇父攝政王勑諭朝鮮國王。 予之諸王曁貝勒、衆大臣等屢次奏言: "自古以來, 原有選藩國淑媛爲妃之例, 乞遣大臣, 至朝鮮, 擇其淑美, 納以爲妃, 締結姻親。" 予以衆言爲然, 特遣大臣等往諭親事。 爾朝鮮國業已合一, 如復結姻親, 益可永固不二矣。 王之若妹若女, 或王之近族, 或大臣之女, 有淑美懿行者選, 與遣去大臣等看來回奏。 特諭。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17면
- 【분류】외교-야(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