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에 대응할 것에 대한 전 판서 김상헌의 상소
전 판서 김상헌(金尙憲)이 상소하기를,
"신은 뼈에 사무치는 비방을 받고 거친 외방에 버려짐을 달게 여기고 있었는데, 삼가 천지 부모와 같으신 은혜를 받아 죄를 면해주시고 직첩(職牒)이 또 돌아왔으나 죽을 때까지 초야에서 칩거할 마음으로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건대 늙고 병든 이 목숨은 아침 저녁으로 죽기만 기다리고 있으니, 성덕(聖德)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방법이 없어 오직 밤낮으로 감격하며 눈물을 흘릴 따름입니다. 지난번에 상후(上候)가 불편하시어 오래도록 회복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삼가 듣고 신하된 자의 마음에 근심하는 마음 간절하였으나, 본래 의술(醫術)에 어두워 정성을 바치지 못하였습니다.
근래 또 떠도는 소문을 듣건대 조정에서 북사(北使)의 말에 따라 장차 5천 명의 군병을 징발하여 심양을 도와 대명(大明)을 침범한다고 합니다. 신은 그 말을 듣고 놀랍고 의심하는 마음이 정해지지 못한 채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릇 신하로서 군주에 대하여 따를 수 있는 일이 있고 따를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자로(子路)와 염구(冉求)가 계씨(季氏)에게서 신하 노릇을 하였으나 공자(孔子)는 오히려 ‘따르지 않을 바가 있다.’고 칭찬하였습니다050) 당초 국가의 형세가 약하고 힘이 다하여 우선 눈앞의 보존만을 도모하는 계획을 하였던 것이나, 지금은 전하께서 난을 평정하고 바르게 되돌리려는 큰뜻을 가지고 와신 상담해 오신 지 3년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머지 않아 치욕을 씻고 원수를 갚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찌 가면 갈수록 미약해져서 일마다 순순히 따라 끝내 하지 못하는 바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줄이야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예로부터 죽지 않는 사람이 없고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죽고 망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반역을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 어떤 사람이 ‘원수를 도와 제 부모를 친 사람이 있다.’고 아뢴다면, 전하께서는 반드시 유사(有司)에게 다스리도록 명하실 것이며,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말로 자신을 해명한다 할지라도 전하께서는 반드시 왕법(王法)을 시행하실 것이니, 이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리입니다. 오늘날 계획하는 자들이 예의(禮義)는 족히 지킬 것이 못 된다고 하니 신은 예의로써 분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해만 가지고 논한다 하더라도 강포한 이웃의 일시적인 사나움만 두려워하고 천자(天子)의 육사(六師)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원대한 계책이 못 됩니다.
정축년 이후로 중조(中朝)의 사람들이 하루도 우리 나라를 잊지 않고 있는데, 특별히 용서해 주고 있는 까닭은 우리를 구해 주지 못하여 패배하였고 우리가 오랑캐에게 항복한 것이 본심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관하(關下) 열둔(列屯)의 군병들과 해상 누선(樓船)의 병졸들이 오랑캐를 쓸어내고 옛 강토를 회복하기에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우리 나라의 잘못을 금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만약 우리 나라 사람들이 호랑이 앞에서 창귀(倀鬼)051) 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 죄를 문책하는 군대가 벽력같이 달려와 배를 띄운 지 하루면 곧바로 해서(海西)와 기도(畿島) 사이에 당도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의 두려움이 심양에만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저들의 세력이 한창 강하여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화가 있을 것이다.’고 하는데, 신은 명분과 의리야말로 지극히 중대한 것인 만큼 이를 범하면 반드시 재앙이 이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리를 저버리고 끝내 망하는 것보다는 정도(正道)를 지키면서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이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린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이 순조로우면 백성들의 마음이 기쁘고 백성들의 마음이 기쁘면 근본이 공고해집니다. 이렇게 나라를 지키고서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한 적은 아직 없습니다. 우리 태조 강헌 대왕(太祖康獻大王)께서는 의리를 들어 회군(回軍)하여 2백 년의 공고한 기업(基業)을 세우셨고, 선조 소경 대왕(宣祖昭敬大王)께서는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여 임진 왜란 때에 구원해 준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지금 만일 의리를 버리고 은혜를 잊고서 차마 이 일을 한다면, 천하 후세의 의론은 돌아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차 어떻게 지하에 계신 선왕(先王)을 뵐 것이며 또 어떻게 신하로 하여금 국가에 충성을 다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단연코 다시 도모하고 서둘러 대계(大計)를 정하시며 강포함에 뜻을 뺏기지 말고 사특한 얘기에 두려움을 갖지 마시어 충신과 의사의 기대에 부응하소서. 신이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 대부(大夫)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 되었습니다. 비록 폐하여 물러나 있는 중이나 이 국가의 막대한 일을 당하여 의리상 잠자코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번 유림(柳琳)이 갈 적에는 신이 원방에 있었고 일도 급박하여 미처 말씀을 올리지 못하였으므로 지금까지 여한이 뼈에 사무쳐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감히 기휘(忌諱)를 피하지 않고 어리석은 정성을 진달하는 바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살펴 주소서."
하였는데, 회보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7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외교-명(明) / 외교-야(野)
○戊申/前判書金尙憲上疏曰:
臣積毁砭骨, 分甘投荒, 伏蒙天地父母之恩, 行遣旣免, 職牒繼還, 偃息田廬, 沒齒爲期。 自念老病餘生, 朝夕待盡, 無以報聖德之萬一, 唯日夜感激涕泣而已。 頃者伏聞上候違豫, 久未復常, 臣子之心, 雖切憂慮, 素昧方技, 末由効誠。 近日又聞道路言, 朝廷從北使之言, 將發兵五千, 助瀋陽犯大明。 臣聞之, 驚惑未定, 不以爲然。 夫臣之於主, 亦有可從不可從。 子路、冉求雖臣於季氏, 孔子猶稱其有所不從。 當初國家勢弱力屈, 姑爲目前圖存之計, 而以殿下撥亂反正之大志, 臥薪嘗膽, 今有三年于此。 雪恥復讐, 庶幾指日可望, 豈意愈往愈微, 事事曲從, 終至於無所不至之地乎? 自古無不死之人, 亦無不亡之國, 死亡可忍從, 逆不可爲也。 有復於殿下者曰: "人有助寇讐攻父母。" 殿下必命有司治之。 其人雖善辭以自解, 殿下必加以王法。 此天下之通道也。 今之謀者以爲, 禮義不足守, 臣未暇據禮義以辨。 雖以利害論之, 徒畏强隣一朝之暴, 不懼天子六師之移, 非遠計也。 自丁丑以後, 中朝之人未嘗一日忘我國, 特恕其亡救而敗, 拜戎非本心也。 關下列屯之兵, 海上樓船之卒, 雖不足於掃氈裘, 而復遼疆, 其於禁我國之爲梗則有餘也。 若聞我國之人爲倀鬼於虎前, 問罪之師, 雷奔霆擊, 帆風一日, 直到海西畿島之間, 毋謂可畏者, 獨在於瀋陽也。 人皆曰: "彼勢方强, 不從必有禍。" 臣以爲, 名義至重, 犯之必有殃。 與其負義而終不免危亡, 曷若守正而竢命於天乎? 然其竢命者, 非坐而待亡之謂也。 事順則民心悅, 民心悅則根本固, 以此守國, 未有不獲其祐者也。 我太祖康獻大王擧義回軍, 建二百年鞏固之基; 宣祖昭敬大王至誠事大, 被壬辰年拯濟之恩。 今若棄義忘恩, 忍爲此擧, 則縱不顧天下後世之議, 將何以見先王於地下, 亦何以使臣下, 盡忠於國家哉? 伏願殿下, 赫然改圖, 亟定大計, 勿爲强暴所奪, 勿爲邪論所怵, 以副忠臣義士之望。 臣受國厚恩, 久從大夫之後, 雖在廢退, 當此國家莫大之事, 義不可泯默。 前日柳琳之行, 臣居遠事迫, 未及獻言, 茹恨在骨, 至今耿耿。 玆敢不避忌諱, 輒達愚悃, 伏願殿下垂察焉。
不報。
- 【태백산사고본】 39책 39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7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