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조빈이 국가의 근본이 명조에 있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다
교리 조빈이 상소하기를,
"국가가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그 근본이 있습니다. 삼대(三代)로 말하면 하(夏)나라가 일어난 것은 수토(水土)를 다스린 데 근본하였고, 은(殷)나라가 일어난 것은 오교(五敎)021) 를 널리 베푼 데 근본하였으며, 주(周)나라가 왕업을 일으킨 것은 실로 후직(后稷)과 공유(公劉)가 어렵게 농사지은 데서 근본하였습니다. 아, 우리 왕조가 왕업을 일으킨 것도 근본이 있습니다. 고려 말에 난신(亂臣)의 모략을 듣고서 명조의 홍무(洪武) 정삭(正朔)을 폐하고 북원(北元)의 연호를 사용하면서, 병기를 들어 반란하여 위화도(威化島)에 진군하였으니, 당시의 생민의 화는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 성조(聖祖)께서 의를 들어 회군하여 크게 동방(東方) 사민의 소망을 위로하였으므로, 천심과 인심이 함께 돌아와 역수(曆數)가 자신에게 돌아왔고 보명(寶命)과 경복(景福)을 사양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마침내 억만년 무강한 왕업을 열었으니 저 고려가 망녕되게 군사를 일으킨 것은 마침 우리를 위해 백성을 몰아준 것입니다.
이로부터 대대로 그 공을 지키어 세조조(世祖朝)에 이르러서는 상국(上國)의 협공책을 받들어 마침내 일부의 군사를 일으켜 이만주(李滿住)를 주멸하여 의성(義聲)을 천하에 드날리고 큰복이 국가에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그러한즉 우리 나라가 왕업을 일으킨 근본은 중국을 높이고 이적을 배척한 데 있지 않겠습니까. 오직 이런 까닭으로 임진년 변란에 우리 선왕(先王)께서 거듭 명조가 구제해 준 힘을 입어 위태롭던 국가의 운명을 다시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조종조의 충성심이 중국인의 마음속에 깊숙이 사무치지 않았다면 만리가 넘는 곳에 군사를 일으켜 사력을 다해 구원할 리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선조(宣祖)께서는 중국을 대신하여 병화를 받고, 지성을 미루어 황제의 마음을 돌려 놓아 마침내 대의를 사해(四海)에 드러내고 국조(國祚)를 후세에 연면하게 하셨으니, 그 공렬이 어떠합니까. 아, 무오년 요해(遼海)를 넘은 역사(役事)는, 정치가 혼란하고 신하는 아첨스러워 나라를 잘못 운영해 몰래 하서국(河瑞國)을 보내어 군사 기밀을 누설하여 명장(明將)이 함몰하고 요(遼)·심(瀋)이 패망하게 한 것으로, 우리 나라의 의롭다는 명성은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저상되었습니다. 계해년 반정 초 혼조의 죄상에는 이것이 그중 하나였습니다.
지난 봄 노적이 참호한다는 말이 있을 적에 전하께서 대의에 의거하여 휘척(揮斥)하시고 자문을 보내 전주(轉奏)하고 팔방에 선교(宣敎)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대업을 계승하고 천심(天心)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조종조의 덕업(德業)을 잘 계승하여 이적을 배척하고 중국을 높이는 도리에서 나온 것이고, 혼조가 비계(秘計)를 오랑캐에게 알려 준 것도 전하를 위해 백성을 몰아준 데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보면 이치를 거스르면 망하고 순응하면 흥한다는 것은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의리를 들어 회군하여 존주(尊周)의 의리를 밝힌 것은 우리 나라가 왕업을 일으킨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손이 이 도리를 배반하면 반드시 천의(天意)와 민심을 거슬러서 국가를 보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삼강(三綱)을 부식(扶植)하고 조종조의 업적을 거듭 빛내는 것이 전하가 왕업을 계승하는 근본입니다. 오늘날 혹시라도 이 도리를 배반하면 반드시 천의와 민심을 거슬러서 하루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천명(天命)의 거취(去就)와 민심이 이합(離合)하는 기미가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우리 나라의 인민은 자기의 조상으로부터 성조(聖祖)의 왕업에 대한 것을 익히 들었으니, 그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존주의 대의가 없었으면 어떻게 이 나라를 보존하였겠는가 하고, 임진년의 황은(皇恩)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상국의 두터운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오늘을 보전할 수 있었겠는가 하여, 그 마음에 자연히 명조를 부모처럼 여기는 것으로 이것은 교령(敎令)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묘년의 강화는 참호하기 이전이어서 형제국으로 명칭하였으나 의사(義士)들이 분한 마음을 품은 것은 오히려 극도에 달했는데, 더구나 오늘날 참호한 이후에 다시 전쟁을 완화시킨다는 명분을 빌려 다시 화친의 약속을 하려 한다면, 말은 못한 채 분노하는 자가 어떠하겠습니까?
대체로 제후의 나라로서 참호하는 도적과 사신을 통하면 신은 이 사신을 무어라고 명칭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제후의 나라로서 참호하는 도적과 서신을 통하면 신은 이 서신을 무어라고 명칭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唐)나라 신하 이고(李翺)가 말하기를 ‘신요(神堯)는 일려(一旅)로 천하를 취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나 자손은 천하를 가지고 하북(河北)을 취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천고(千古) 의사의 명언입니다. 신도 그 말을 외워서, 성조께서는 일려로 왕업을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으셨는데 오늘날에는 팔도를 가지고도 역천하는 일개 오랑캐를 배척하지 못하느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나라 팔도의 지방과 백성은 만승(萬乘)의 부(富)와 천리의 크기에 그치지 않는데 자강하지 못하고 도리어 위축되어 오랑캐 보기를 호랑이처럼 무서워하니, 맹자(孟子)가 이른바 ‘천리로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습니까. 전하께서 참으로 능히 우리 백성의 분발함을 인하여 충의심을 고취하여 중국으로 향하고, 현명한 보좌를 얻어 국정을 위임하고, 적심(赤心)을 미루어 사람들 마음속에 두면, 사람들이 자기 재능을 다하고 병사들이 사력을 다할 것이니, 일개의 미친 오랑캐를 무어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장려하는 칙서가 겨우 내려져 아직 은혜를 보답하지 못하였고 황릉(皇陵)이 더럽혀져 천하가 함께 분노하고 있는데, 그들과 사신을 교환하고 비계를 누설시킨다면 혼조가 하서국을 보낸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신은 난을 생각하는 백성이 구실을 삼을까 두렵습니다. 그런즉 인심의 이합(離合)하는 기미가 이미 나누어졌고 천명의 거취가 이미 결정되어서 오랑캐가 맹서를 저버리고 군사를 일으키기도 전에 종기가 안에서 곪아 터져서 종사가 먼저 멸망될 것이니, 두렵지 않습니까? 신은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치는 말이 군부를 불의에 빠뜨리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으므로 강개하는 마음이 격앙되어 큰 소리로 부르짖어 전하께서 대오 각성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전하께서 신의 말을 오활(迂闊)하다 하시고 다시 기미할 길을 도모하신다면, 신은 노련(魯連)·호전(胡銓)과 함께 동해에 빠져 죽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소사(疏辭)는 비유가 정밀하지 못하고 너무 지나치게 헐뜯어 배척하였으니, 자세히 살피지 못하였다고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49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註 021]오교(五敎) : 오륜(五倫).
○癸亥/校理趙贇上疏曰:
國家之興, 必有其本。 以三代言之, 夏之興, 本於平水土; 殷之興, 本於敷五敎, 而周家興王之業, 則實本於后稷、公劉稼穡艱難之道。 嗚呼! 我朝王業之興, 亦有本焉。 當麗氏之末, 聽亂臣之謀, 停洪武之正朔, 用北元之年號, 而稱兵犯順, 軍次威化島。 當是時, 生民之禍, 有不可測者。 我聖祖擧義旋師, 大慰東方士民之望, 於是乎, 天與人歸, 曆數在躬, 而寶命、景福, 有不可得辭者, 遂開億萬年無疆之休。 彼麗氏之妄興師旅者, 適所以爲我敺焉而已。 自是厥後, 世守其烈, 逮我世祖朝, 奉上國夾攻之策, 遂擧偏師, 誅滅滿住, 而揭義聲於天下, 篤純祐於國家。 然則我國興王之本, 其不在於尊中國、攘夷狄乎? 唯此之故, 壬辰之變, 粤我先王, 荐蒙天朝拯濟之力, 再造邦國杌隉之命。 如非祖宗忠順之誠, 淪浹於中國之人心者, 其能越萬里興師, 出死力相救哉? 況我宣祖, 替中國而受兵禍, 推至誠而回帝心, 遂使大義著於四海, 國祚綿於後世, 其功烈爲如何哉? 嗚呼! 戊午渡遼之役, 政昏臣諂, 謀國失宜, 潛送河譯, 透漏軍機, 以致天將陷沒, 遼 瀋傾覆, 我東之義聲, 由是而遂沮。 癸亥反正之初, 罪狀昏朝, 此居其一矣。 春間虜賊, 有僭號之語, 殿下據義揮斥, 移咨轉奏, 宣敎八方。 然則殿下之能纉大業、享天心者, 亦出於善述祖宗, 攘夷狄、尊中國之道, 而昏朝之所以秘計款虜者, 亦不過爲殿下敺焉而已。 執此觀之, 逆順、興喪之判, 不難知也。 故臣愚以爲, 擧義回軍, 克彰尊周之義者, 我國興王之業也。 其在子孫, 反是道則必拂逆乎天意、民心, 而無以保有國家矣。 扶植三綱, 重光祖宗之業者, 殿下纉緖之本也。 其在今日, 或反是道, 亦必拂逆乎天意、人心, 而無以一日圖存矣。 然則天命、民心, 去就、離合之幾, 其不在是乎? 何以知其然也? 我國人民, 自乃祖乃父, 熟聞聖祖之王業, 其心以爲: "非尊周之大義, 何以有此國乎?" 見壬辰之皇恩, 其心以爲: "非上國之厚賜, 何以保今日乎?" 其心自然, 視天朝如父母, 此非敎令所能爲也。 丁卯之和, 雖在僭號之前, 名以弟兄, 而義士之含憤猶極, 況當今日僭號之後, 復假緩兵之名, 再尋和好之約, 則人之不言而敢怒者, 將何如也? 夫諸侯之國, 而與僭號之賊通使, 則臣未知此使何名也; 諸侯之國, 而與僭號之賊通書, 則臣未知此書何名也? 唐臣李翺有言曰: "神堯以一旅, 取天下而有餘, 子孫不能以天下, 取河北。" 此千古義士之名言也。 臣亦誦其說以爲: "聖祖以一旅, 興王業而有餘, 今日不能以八路, 斥一逆胡乎?" 我八路地方人衆, 不翅萬乘之富、千里之大也, 不能自强, 而乃反畏蹙, 視虜如虎, 則孟子所謂千里畏人者也, 豈不寒心哉? 殿下誠能因吾民之思奮, 皷忠義而西向, 得賢佐而委任, 推赤心而置人, 則人盡己才, 士盡死力, 彼一狂胡, 何足畏乎? 又況奬勑纔下, 恩典未酬, 皇陵震汚, 天下共憤, 而方且與之交使, 洩漏秘計, 則與昏朝之送河瑞國者, 何別? 臣恐思亂之民, 得爲口實也。 然則人心離合之幾已判, 天命去就之分旣決, 虜盟未渝, 虜馬未牧, 而癰疽內潰, 宗社先傾也, 可不懼哉? 臣不忍見主和、誤國之說, 將陷君父於不義, 故慷慨激昻, 大聲疾呼, 冀殿下之省悟。 殿下如以臣言爲迂闊, 而再圖羈縻之路, 則臣將與魯連、胡銓, 同蹈東海而死耳。
答曰: "疏辭比喩不精, 譏斥太過, 可謂不能詳察也。"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49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