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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27권, 인조 10년 10월 23일 丁亥 2번째기사 1632년 명 숭정(崇禎) 5년

대신과 2품 이상이 궁중의 저주 사건을 조사하도록 청하니 국청을 설치하다

대신 2품 이상이 아뢰기를,

"상께서 편찮으신 지가 이미 오래되니 조정과 외부가 뒤숭숭합니다. 지금 듣건대 궁중에서 저주(詛呪)하는 변고가 있어 흉측한 물건이 낭자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막대한 변고를 내환(內宦) 한두 사람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할 수 없으니, 외정(外庭)으로 내보내 엄하게 국문하여 진상을 파악하도록 명하소서."

하고, 대간(臺諫) 역시 합사(合司)하여 논계하기를 여러 날 동안 하니, 이에 금부에 국청을 설치하여 국문하도록 명하고 이어서 하교하기를,

"궁인(宮人) 옥지(玉只) 등 3, 4명이 밤중마다 문을 닫고 몰래 궁벽한 곳으로 가 제사를 지내며 기도하였다고, 자전(慈殿)의 초상(初喪)에 이 일로써 말한 사람이 있었다. 때문에 본전(本殿)의 상궁(尙宮) 주숙(朱淑)·백숙(白淑) 등도 감히 전부 숨기지 못하고 본방(本房)을 위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는데, 요사이 흉측한 물건을 묻었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기도한 제사 역시 저주를 위하여 지낸 줄을 알았다. 만약 본방을 위하여 기도하였다면 문을 잠가 놓고 남에게 숨길 리가 없을 것 같으니, 그 밤에 제사지낸 것이 필시 곡절이 있는 성싶다. 자전이 승하하신 지 3일 만에 말질향(末叱香)이 까닭없이 독약을 마시고 죽은 것도 그 이유가 없지 않을 터이니, 모두 구속하여 신문하라."

하였다. 【 본방(本房)은 연흥 부인(延興夫人)을 지칭한 것이다.】 옥지(玉只)가 공초하기를,

"선조 대왕 때부터 궁중에 뽑혀 들어와 계축년142) 이후로 주 상궁(朱尙宮)과 자전을 함께 모시다가, 계해년143) 에 이르러 천일(天日)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계축년에 저주한 일로써 나인(內人)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저주에 대한 말은 사람들이 모두 귀를 가리고서 차마 듣지 못합니다. 더구나 지금 양전(兩殿)께서 화합하시는데 어찌 이와 같은 마음을 품겠습니까. 본방(本房)이 병환이 많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며 기도하였는데, 무릇 기도하는 방법은 으레 조용한 곳에서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저주를 꾀하였다면 주숙·백숙 두 사람들이 이미 함께 거처하였으니, 또한 마땅히 그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나와 말질향(末叱香)·윤귀희(尹歸希) 등 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말질향이 죽은 것은 병으로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함께 도모하였다면 나도 마땅히 함께 죽어야 되는데, 어찌 말질향 혼자만 죽도록 하였겠습니까. 제사를 지낼 때에 침전(寢殿)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 이것은 숨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전이 노친(老親)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항상 이르기를 ‘내가 살았을 때 효성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고 하셨는데, 이미 이런 말씀을 듣고 어찌 감히 기도하는 일을 꺼리겠습니까."

하였다. 귀희(歸希)의 계집종 덕개(德介)를 신문하니 공초하기를,

"나인(內人) 이애단(李愛丹)이 연등(燃燈)하기 위하여 관왕묘(關王廟)에 나가게 되면, 언제나 귀희와 더불어 비밀히 의논하였습니다. 지난해 8월에 애단의 동생 이장풍(李長風)이 흰 고양이 머리를 가져다 주어 주방(廚房)에 놓아두었으며, 애단이 또 길이가 한 자가 채 못 되는 하나의 싸매진 물건을 가지고서, 귀희와 서로 말하였는데, 좌우 사람들을 물리쳤기 때문에 그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승건(僧巾) 수십 개를 만들어 혹은 상자에 담기도 하고 혹은 보자기로 싸기도 하여, 나로 하여금 대비전 침실의 높은 난간에다 그것을 놓아두도록 하였으며, 애단이 아이의 머리를 가지고 와 장보문(長保門)에 문안드리러 다니는 길에 묻도록 하였습니다."

하였다. 국청이 아뢰기를,

"덕개(德介)가 이미 승복하였으니, 그로 하여금 묻어놓은 곳을 지적하도록 한 뒤에 사형에 처하소서."

하였는데, 그 뒤에 덕개가 끝내 지적하지 못했다. 옥지(玉只)의 계집종 득화(得花)를 신문하니 공초하기를,

"경오년144) 여름 동안에 애단이 번번이 나갈 적마다 반드시 이상한 물건을 가지고 들어오곤 하였는데, 모양이 보릿가루와 같으면서 약간 푸른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윤 소원(尹昭媛) 【 바로 귀희(歸希)이다.】 에게 바칠 즈음에 마침 보게 되었는데, 날이 저물자 애단이 이 물건을 가지고 바로 대전(大殿)의 침실로 갔었습니다. 지난해 7월에 무슨 제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옥지가 밤에 목욕 재계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서 갔었습니다."

하였다. 국청이 귀희를 국문할 것을 청하고 양사도 계청하니, 비로소 국청에 내보내도록 명하였다. 귀희가 공초하기를,

"나는 귀희가 아니라 바로 윤희(尹希)입니다. 선조(宣祖) 시대에 11세 아이로서 궁중에 뽑혀 들어와 대왕(大王)이 승하하실 때에 자전(慈殿)에게 유언하여 작위(爵位)를 주어 보살피도록 하였습니다. 계축년145) 변고에 연흥(延興) 및 대군이 일시에 화를 당하였기에, 무릇 무당과 점장이에 관한 일을 일체 모두 거절하였으며, 자전이 승차하실 때에도 점쳐본 일이 없었습니다. 덕개가 승복한 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며, 이른바 흰 고양이 머리 및 싸매진 물건이라는 것도 모두 근거없는 말입니다. 승건(僧巾)을 만드는 것은 궐내의 풍습인데, 무릇 여러 내인(內人)들 중에 역시 어찌 이것을 만드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장보문 밑에 아이의 머리를 묻어놓았다는 말은 거짓에서 나온 것이며, 밤중에 제사를 지낸 것은 본방(本房)이 병환이 있었기 때문에 가끔 기도드린 적이 있었는데, 애단관왕묘에 나간 것 역시 이런 종류일 것입니다."

하고, 애단이 공초하기를

"오랫동안 주방(廚房)에 있으면서 다른 일을 맡지 아니하여 이미 관왕묘에 나가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연등(燃燈)하는 일이 있었겠습니까. 아이의 머리를 묻어 놓았다는 말에 있어서는 더욱 모르는 바입니다."

하고 이장풍(李長風)이 공초하기를,

"애단은 비록 동생이지만 내외가 엄절하여 서로 만나볼 수 없고 1년에 한 번씩 안부만을 통하였으며, 또 줄곧 시골에 있었으므로 절대로 참여하여 아는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국청이 귀희·옥지 두 사람을 신문할 것을 청하였으나, 상이 선조(宣祖) 때의 궁인(宮人)이라는 이유로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들이 아뢰기를,

"조종조에서도 이런 죄인에게 사사(賜死)한 예가 있었으니, 이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귀희옥지에게는 사사하고 덕개는 처형당하였으며 득화는 미처 처형당하기 전에 죽었다. 그 이외의 애단·의숙(義淑) 등 여러 내인으로서 관련된 사람들과 귀희·옥지가 거느렸던 계집종 및 이장풍은 모두 곤장을 맞다가 죽었다.

당초에 인목 왕후(仁穆王后)의 초상(初喪)에 백서(帛書) 3폭을 궁중에서 발견하였는데, 반고(頒告)나 주문(奏聞)에 임금을 폐하고 세우는 내용처럼 되어 있었다. 상이 꺼내어 척속(戚屬)들에게 보여주고 얼마 후에 그 글을 가져다가 불살라버렸다. 어떤 사람은 왕후가 서궁(西宮)에 유폐당하였을 때 쓴 것이라고 말하지만, 외부 사람으로는 그것이 그러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03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大臣二品以上啓曰: "自上違豫已久, 中外遑遑。 今聞宮中有詛呪之變, 凶穢之物, 狼藉云。 此莫大之變。 不可令內宦一二人治之, 請命出付外庭, 嚴鞫得情。" 臺諫亦合司論啓累日, 乃命設鞫廳於禁府以鞫之。 因下敎曰: "宮人玉只等三四人, 每夜半閉戶, 潛往僻處, 設祭祈禱。 慈殿初喪, 有以此言之者, 故本殿尙宮朱淑白淑等, 亦不敢全諱, 稱以爲本房設祭。 近聞埋置凶物之後, 乃知祈祝之祭, 亦爲詛呪而設也。 若爲本房祈禱, 則似無鎖門諱人之理, 其夜祭, 必有曲折。 慈殿昇遐第三日, 末叱香之無故飮毒而死, 亦不無其由, 竝加鉤問。" 【本房, 指延興夫人也。】 玉只供稱曰: "自宣祖大王朝, 選入宮中, 癸丑以後, 與朱尙宮同侍慈殿, 得至癸亥, 復見天日矣。 癸丑以詛呪之事, 內人多死, 故詛呪之語, 人皆掩耳而不忍聽。 況今兩殿和合, 豈懷如此之心乎? 本房多病, 故設祭祈禱, 凡祈禱之法, 例設於靜處。 若謀詛呪, 則兩人, 旣與同處, 亦當知之。 此豈吾與末叱香歸希等三人所爲者乎? 且末叱香之死, 聞以病死。 若與同謀, 則吾當同死。 豈令末叱香獨死乎? 設祭之時, 寢殿之人, 無不知之, 此非隱諱之事也。 且慈殿爲老親祈壽, 每曰: ‘吾生之日, 欲盡誠孝而已。’ 旣聞此敎, 何敢厭憚於祈祝之事乎?" 訊問歸希德介, 供稱: "內人愛丹爲燃燈, 出往關王廟, 每與歸希密議。 前年八月, 愛丹之同生李長風, 覓給白猫頭, 置於廚房。 愛丹又持一裹物, 長不滿尺者, 與歸希相語而辟左右人, 故不得聞其語。 又裁作僧巾數十, 或盛之以笥, 或裹之以袱, 使吾置之於大妃殿寢室高欄, 愛丹持兒頭, 使埋於長保門問安之路矣。" 鞫廳啓曰: "德介旣已承服, 請使之指示埋置處, 然後正刑。" 其後德介終不能指示。 訊問玉只得花, 供稱: "庚午夏間, 愛丹每每出去, 必持異常之物而來, 形如麥屑, 而微有靑色。 納于尹昭媛 【卽歸希。】 之際, 適得見之。 日暮, 愛丹持此物, 直往大殿寢室。 前年七月, 不知其爲某祭, 而玉只夜間沐浴、齋戒, 改着潔衣而去矣。" 鞫廳請鞫歸希, 兩司亦啓請, 始命出付鞫廳。 歸希供稱: "吾非歸希, 乃尹希也。 宣祖朝以十一歲兒, 選入宮中, 大王昇遐之時, 遺敎于慈殿, 使之錫爵垂恤矣。 癸丑之變, 延興及大君, 一時被禍, 凡巫卜之事, 一皆拒絶, 慈殿昇遐之時, 亦無問卜之事。 德介承服之事, 全不得知, 所謂白猫頭及所裹之物, 皆是無形之言。 僧巾裁作, 此乃闕內之風, 凡諸內人, 亦豈無爲此者乎? 長保門底埋置兒頭之說, 出於虛誣, 夜半設祭者, 本房有病患, 故有時祈祝, 愛丹之出往關王廟者, 亦此類也。" 愛丹供稱: "長在廚房, 不任他事。 旣不出往關王廟, 寧有燃燈之事乎? 至於埋置兒頭, 尤所不知。" 李長風供稱: "與愛丹雖是同生, 而內外嚴截, 不得相見, 一年一度, 只通安否。 且長在鄕曲, 絶無與知之事矣。" 鞫廳請訊問歸希玉只兩人, 上以宣祖朝宮人, 終不聽。 大臣以爲: "祖宗朝亦有此等罪人賜死之例, 請依此施行。" 上乃從之。 歸希玉只賜死, 德介伏誅, 得花未及正刑而斃。 其餘愛丹義淑等諸內人辭連者, 歸希玉只所率婢及長風, 皆斃於杖下。 初, 仁穆王后之喪, 得帛書三幅於宮中, 有若頒告、奏聞, 爲廢立之擧者。 上出以示戚屬, 尋取其書而燒之。 或云, 后幽西宮時所書, 而外人莫知其然否。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03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