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가 왕세자의 관례를 먼저하고 책봉례를 다음에 할 것을 아뢰다
예조가 아뢰기를,
"왕세자의 관례(冠禮)는 정월 21일, 책봉례(冊封禮)는 정월 27일로 날짜가 선택되어 계하(啓下)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말하기를 ‘관례 때에 마땅히 왕세자의 의장(儀仗)과 궁료(宮僚)가 배시(陪侍)하는 의식을 갖추어야 할텐데 관례를 먼저 하고 책봉례를 뒤에 거행하니 책봉례를 받기 전에 먼저 이런 의장을 사용하는 것은 미안할 듯 하다.’고 합니다. 이 말도 일리가 있는 듯 한데, 《오례의(五禮儀)》를 보면 관례는 3권(卷)에 수록되어 있고 책봉례는 4권에 들어 있으며, 구례(舊例)도 관례의 선후가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먼저 책봉례를 거행한 다음에 관례를 거행하려고 하면 동관(童關)으로서 책봉례를 받게 되니, 관례를 먼저 하고 책봉례를 뒤에 하는 것이 순편함이 되는 것만 못합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아직 책봉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성명(成命)이 이미 내려져 명위(名位)가 일단 정해졌으니 만큼 관례 때에 먼저 의장과 궁료의 배시하는 의식을 갖추더라도 무방할 듯 합니다. 대신과 의논하여 시행하소서."
하였는데, 좌의정 윤방(尹昉)과 우의정 신흠(申欽) 등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니, 상이 따랐다. 예조가 또 아뢰기를,
"왕세자의 책봉례 다음에는 전하께서 백관을 모으고 대왕 대비전과 왕비께서 명부(命婦)들을 모으는 예절이 모두 예문에 실려 있으니, 예문대로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명부를 모으는 예는 권정(權停)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659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禮曹啓曰: "王世子冠禮以正月二十一日、冊禮以正月二十七日, 推擇啓下矣。 或以爲冠禮之時, 當用王世子儀仗、宮僚陪侍之儀, 而冠禮在先, 冊禮在後, 未受冊之前, 先用此儀仗, 似爲未安云。 此言亦似有理, 而《五禮儀》冠禮在三卷, 冊禮在四卷, 冠禮先後, 舊例皆然。 若欲先行冊禮, 後行冠禮, 則童丱受冊, 不如先冠後冊之爲順便。 臣等之意, 雖未及受冊, 而成命已下, 名位已定, 冠禮之時, 先用儀仗, 宮僚似無所妨, 請議大臣行之。" 左議政尹昉、右議政申欽等, 亦以爲可, 上從之。 禮曹又啓曰: "王世子冊禮後, 殿下會百官, 大王大妃殿及王妃會命婦之禮, 俱載禮文, 依禮文擧行何如?" 答曰: "依啓。 會命婦禮權停。"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659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