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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정초본] 116권, 광해 9년 6월 11일 甲辰 1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새 궁궐을 새문동에다 건립할 것을 의논하다

【새 궁궐을 새문동(塞門洞)에다 건립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였다. 【성지(性智)가 이미 인왕산 아래에다 신궐을 짓게 하고, 술인(術人) 김일룡(金馹龍)이 또 이궁(離宮)을 새문동에다 건립하기를 청하였는데, 바로 정원군(定遠君)의 옛집이다. 왕이 그곳에 왕기(王氣)가 있음을 듣고 드디어 그 집을 빼앗아 관가로 들였는데, 김일룡이 왕의 뜻에 영합하여 이 의논이 있게 된 것이다. 인왕산의 터는 두 구역이 있는데, 하나는 사직 담장의 동쪽에 있고 또 하나는 인왕동(仁王洞)에 있는 바, 바로 소세양(蘇世讓)의 청심당(淸心堂) 터이다. 성의 담장은 양쪽이 함께 하였으나 전우(殿宇)는 서로 달라서 실로 두 개의 대궐이었는데, 새문동에 또 하나의 대궐을 지어서 셋째 대궐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한꺼번에 공사를 시작하여서 제조와 낭청이 수백 명이나 되었으며, 헐어버린 민가가 수천 채나 되었다. 여러 신하들이 먼저 한 궁궐을 지어 이어(移御)한 뒤에 차례차례 공사를 일으키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들지 않았다. 이에 나라 사람들이 모두들 성지를 허물하여 그의 살점을 먹고자 하였다. 그러자 성지가 노하여 조사(朝士)들에게 말하기를 "이 한 중놈의 모가지는 조만간에 짤려서 도랑에 내던져 질 것이다. 다만 나는 인왕산의 새 터만 정하였을 뿐으로, 지금 세 대궐의 역사를 한꺼번에 일으키는 것은 본래 나의 뜻이 아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어찌하여 한 마디 간언이라도 올려 중지시키지는 않고 한갓 나만 탓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듣는 자들이 이말을 듣고는 부끄러워하였다.】


  • 【정족산사고본】 26책 11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596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 / 역사-사학(史學)

○甲辰/議建新宮於塞門洞 【性智旣卜仁王山下新闕, 術人金馹龍又請建離宮於塞門洞, 卽定遠君舊第。 王聞其有王氣, 遂奪入官, 馹龍迎合王意, 有此議。 仁王山基, 凡兩區, 一在社稷墻東, 一在仁王洞, 卽蘇世讓 淸心堂基也。 城垣雖同, 殿宇各別, 實爲兩闕, 塞門洞又一闕, 號爲三闕。 一時創役, 提調郞僚數百人, 破撤人家數千區。 群臣請先成一宮移御後, 以次起役, 而王不聽。 國人皆咎性智, 欲食其肉。 性智怒罵朝士曰: "此一髡首, 當早晩斷擲大溝中矣。 但老髡, 只卜仁王新基, 今三闕竝起, 本非我意。 不知朝廷, 何無一言以諫止, 而徒咎老髡爲。" 聞者愧其言。】


  • 【정족산사고본】 26책 11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596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건설-건축(建築)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