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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44권, 광해 10년 4월 12일 辛丑 5번째기사 1618년 명 만력(萬曆) 46년

호조에서 경상도의 곡식을 면포로 대납케 하는 일과 경비를 절약하는 일로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경상도의 곡식을 면포(綿布)로 대납(代納)케 한 것은 대체로 나라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구차하게나마 임시 변통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인데 근년 이래 이 일이 한 번 시작되면서부터 간혹 값을 깎아서 바꿔주거나 혹 강제로 기한을 설정하여 실어오게 하는가 하면 색목(色目)을 잡다하게 만들고 무절제하게 가져다 쓰는 것이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니, 도내의 사람들이 자기들만 고초를 당한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 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목면이 없으면 목전의 위급함을 구할 길이 없기 때문에 신들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전처럼 마련해내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요즘 본도를 왕래하는 인편에 듣건대, 전지(田地)가 1, 2결(結)이라도 있는 자는 포목을 무려 30여 필이나 내기 때문에 공녀(工女)가 옷이 없어 제대로 몸을 가리지 못하는가 하면 남정네도 겨울철이면 누에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고 솜 타는 것을 일삼아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일년 내내 수고한 농부가 공녀의 일을 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대체로 여자 한 사람이 짜는 것만으로는 한 집에 배정된 역(役)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니 이 또한 애달플 뿐입니다. 게다가 지난 가을에는 목화(木花)가 결실되지 않아 심지어는 헤진 옷의 헌 솜까지 넣고 짜내고 있다 하니, 민간에서 얼마나 어렵게 포목을 마련해내고 있는지 이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대단한 데도 구중 궁궐 위에서는 들을 길이 없게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신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으로서 더욱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본도에서 내야 할 포목을 통틀어 조사해 보건대, 영건 도감에서 거두어 들일 포목 7백여 동(同), 본도에 남겨두었다가 왜인(倭人)들에게 지급해야 할 1천 동, 본조가 받아들여 경비로 써야 할 것 4백여 동, 전교로 분부하신 데에 따라 은(銀)을 무역할 대금 4, 5백 동 등 도합 2천 6백여 동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영건 도감에서 쓸 것은 도감의 명령이 엄하기 때문에 거의 모두 징수해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타 해조(該曹)에 납부해야 할 것과 왜인에게 지급해야 할 포목들은 마치 거북등에서 털을 구하는 것처럼 도저히 마련해낼 처지가 못되고 은을 무역할 4, 5백 동 역시 마련해내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합니다. 온 도내 백성들의 고달픔에 비추어 볼 때 변통해 주는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지 결코 강압적으로 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만, 본조(本曹)의 형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치 밀가루도 없이 수제비를 빚는 것과 같으니 앞으로 들어갈 허다한 경비를 무슨 수로 마련해야 할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신들이 나이 많은 벼슬아치들과 일을 아는 산원(算員)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난리가 일어나기 전에는 근년처럼 용도가 번다한 때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전성기 때 축적된 양을 보면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녹봉을 지급해 주는 것을 제외하고도 창고에 저장한 미곡이 매년 30여 만 섬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해사에 비축한 온갖 물품도 차고 넘쳤으니 어찌 모자랄 걱정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규정 이외의 비용을 지출할 경우에는 해조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처지를 고수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이현궁(梨峴宮)죽전궁(竹前宮)을 조성할 당시 ‘해조의 목면 40동을 내수사로 옮겨 보내라.’는 명이 있었는 데도, 최흥원(崔興源)이 판서로 있으면서 그만 감히 방계(防啓)하며 세 차례 아뢴 끝에 윤허를 받아내고 끝내 옮겨 보내지 않았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사의 신하가 어찌 방계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마는, 대개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것이 직책상 당연하다고 여겨 그렇게 했던 것일 뿐입니다.

현재 노비(奴婢)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공포(貢布)가 평시의 10분의 1에도 차지 못하는만큼, 부경(赴京)하는 사신 일행이 한 번 떠날 때 방물가(方物價)와 무역가(貿易價)를 지급하고 나면 사섬시의 물력(物力)이 번번이 바닥이 나곤 하는데 그밖에 밑 빠진 독에 물붓듯 들어가는 과외(科外)의 비용이 또 어디 한량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구례(舊例)에는 오직 절사(節使)가 부경할 때에만 중국 물건을 무역해 오는 규정이 있었고, 그때에 지급하는 금액도 많지 않았으며 그밖에 별행(別行)의 경우에는 무역해 오는 규정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별행이나 절사를 막론하고 무역해 오는 양이 지극히 많을 뿐더러 규정 외로 무역하는 것이 또 있어 거기에 드는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예전에는 있지 않았던 일입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이번의 사은사 행차 때에는 긴급하지 않은 무역은 재감(裁減)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개 천지간에 쓸 수 있는 재물은 일정한 수밖에 없는데 너무 헤프게 쓰면 이치상 계속 댈 수가 없는 법이니 이것이야말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費)는 경비(經費)라 하고 용(用)은 경용(經用)이라 하여 경(經)이라는 하나의 글자를 붙여 쓰고 있는 것도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통쾌하게 재감하라는 명을 내려 일에 따라 절약해 주시지 않는다면 신들이 또한 무엇에 근거하여 봉행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지금 이후로 쓸데없이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는 일체 경중을 막론하고 성상께서 직접 단안을 내리시어 모두 제거토록 해 주소서. 그리고 묘당으로 하여금 품지(稟旨)하여 긴급하지 않은 도감이나 특별히 설치한 각청(各廳)을 정파(停罷)시키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약토록 하는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될 듯합니다. 황공한 심정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뜻이 옳다. 다만 무역하는 물건들이 어찌 이렇게 엄청나기까지야 하겠는가. 내 생각에는 여러 도감과 임시로 설치하는 각청을 한꺼번에 함께 설치하기 때문에 경비를 더욱 계속 대기가 어려운 듯하다. 지금 이후로는 부득이 도감이나 각청을 설치해야 할 때라도 먼저 설치한 곳의 폐지를 기다렸다가 그 뒤에 순차적으로 설치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경비를 그런 대로 계속 댈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대신에게 의논한 뒤 참작해서 선처토록 하라. 그리고 사은사 일행이 무역하는 일 같은 것은 지금 곧 떠나게 되어 있으니 재감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66장 B면【국편영인본】 29책 463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무역(貿易) /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재정-국용(國用) / 농업-면작(綿作) / 공업(工業)

○戶曹啓曰: "以慶尙道之粟, 換作綿布之擧, 蓋出於國用不贍, 苟且推移之計。 而近年以來, 此事濫觴, 或減價貿換, 或勒限委輸, 色目之繁殷, 取用之無節, 可謂極矣。 道內之人, 稱以偏苦者, 固無足怪。 然除却此木, 則無以救目前之急, 故臣等雖知其未妥, 而不得不仍前責辦矣。 近因本道往來人, 聽得‘有田一二結者, 出木布多至三十餘匹, 工女赤脫衣不掩體, 男人冬節, 則以引絲彈絮爲業, 人無不能’ 云。 以終歲勤之農夫而兼爲工女之事, 蓋以一女之織, 不能供一戶之役。 其亦可哀也已。 加以去秋木花不實, 至以破衣故絮, 作綜成織云, 民間艱備木布之狀, 據此可知。 蔀屋之下, 怨聲嗷嗷, 九重之上, 無由徹聞, 良由臣等不職之致, 尤極惶憫。 通査本道出木之數, 營建都監收布七百餘同, 留本道應給倭人之數一千同, 納本曹應爲經費之用者四百餘同, 因傳敎分付, 貿銀之數四五百同, 都合二千六百餘同。 營建之用, 則以都監令嚴之故, 幾盡徵捧云。 而其餘應納該曹、應給倭人之數, 如括毛龜背, 萬無辦出之勢, 貿銀次四五百同, 亦極難備云。 一道民生怨苦, 合有變通之擧, 決不可抑以行之。 以本曹事勢言之, 有同無麪䬪飥, 前頭許多經費, 何由辦得, 極爲渴憫。 臣等問諸老吏及事知算員, 則亂前用度之繁, 未有如近年之甚云。 全盛蓄積之富, 比此時何如也? 頒祿外留倉米, 歲不下三十餘萬石, 該司所儲, 百物盈溢, 寧有缺乏之虞? 而如遇規外之費, 該曹牢守不撓。 至於梨峴宮竹前宮造成時, 有‘該曹木綿四十同, 移送內需司’之命, 崔興源爲判書時, 乃敢防啓, 三啓蒙允, 竟不移送。 其時有司之臣, 豈不知防啓之爲未安乎? 蓋以爲措備節用, 職當然耳。 目今奴婢收貢之數, 不滿平時十分之一, 赴京一起行次, 方物價、貿易價題給, 則司贍寺輒爲告匱, 其他科外尾閭之費, 何限? 綿布之缺乏, 勢所然也。 且舊例, 唯節使赴京時, 有物貿易之規而題給之價不多, 其餘別行, 則無貿易。 今則無論別行、節使, 貿易之數極多, 更有規外之貿, 價物之費, 愈往愈繁, 此實前古所未有之事也。 臣等妄意今番謝恩使之行, 不緊貿易, 似當裁減。 大槪天地間財用, 只有此數, 用之太濫, 則無可繼之理, 古今通患。 故費曰經費, 用曰經用, 下一經字, 恐有深意。 然苟非自上快下裁減之令, 隨事節約, 則臣等亦何所憑藉而奉行乎? 竊願今後凡係干冗費之類, 無論輕重, 斷自聖衷一切滌除。 因令廟堂稟旨, 停罷不緊都監及別設各廳, 以省一分之費, 恐不可已。 惶恐敢啓。" 傳曰: "啓意是矣。 但此貿易之物, 何至浩大? 予意諸都監及權設廳, 一時竝設, 以此經費, 尤爲難繼。 今後雖不得已應設都監及廳, 待先設處撤罷後, 繼次設局, 則經費庶幾可繼。 議大臣參酌善處。 如謝恩使貿易, 則今將發行, 勿爲裁減。"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66장 B면【국편영인본】 29책 463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무역(貿易) /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재정-국용(國用) / 농업-면작(綿作) / 공업(工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