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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32권, 광해 7년 4월 6일 壬午 1번째기사 1615년 명 만력(萬曆) 43년

선수청이 궐내의 건축하는 공사에 대한 일로 묘당에서 처리할 것을 아뢰니 윤허하다

선수청이 아뢰기를,

"궐내의 건축하는 일은 공사가 대단히 크고 체면도 중한데, 각사를 호령하고 공장을 불러모으는 일은 진실로 선수청의 두서너 직질이 낮은 관원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별도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헤아려 조처하는 일은 해조에 문의하라. 삼조 판서를 예겸제조로 삼아 부지런하고 성실한 제조·낭청·감역관은 묘당과 자세히 의논하여 알맞은 인원을 헤아려 선정해서 환경전(歡慶殿)·문정전(文政殿)·명정전(明政殿)경운궁(慶運宮)을 수리하라."

하였다. 【〈이것이 토목의 시초이다.〉 왕이 궁궐을 크게 지으려고 우선 옛 궁전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인경(仁慶)·경덕(慶德) 양궁을 창립하였는데, 공역이 9년이 되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가를 헐어버린 것이 거의 천여 채에 이르렀고 벌목하는 조도관(調度官)이 사방으로 나뉘어 나갔다. 이 때문에 팔도가 분주하였고 민력은 탕진되었다. 〈또 경복궁(慶福宮)을 중건하고 경복궁으로부터 각도(閣道)를 만들어 인경궁(仁慶宮)에 연결하고자 하였는데, 미처 시작하기 전에 반정(反正)의 거사가 있었다.〉 이때 "성안에 궁궐이 가득하고 조정에 재상이 가득하니 시사가 반드시 변할 것이다."는 참언이 있었는데, 〈대체로 역적을 토벌하였다는 위훈(僞勳)으로 재상의 반열(班列)에 오른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져 결국에는 그 참언과 부합되었다고 하였다.〉 】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8책 418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역사-사학(史學)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乙卯四月初六日壬午繕修廳啓曰: "闕內營造, 工役浩大, 體面亦重。 號令各司, 招集工匠, 固非繕修廳數三秩卑之員, 所能堪任。 請令廟堂別爲議處。" 傳曰: "允。 料理措置之事, 問于該曹。 以三曹判書, 爲例兼提調, 勤幹提調、郞廳、監役官, 詳議廟堂, 量數擇定, 歡慶文政明政殿慶運宮修理。" 【(此土木之始也。) 王欲大營宮闕, 先以繕修舊殿爲名, 而創立仁慶慶德兩宮, 工役迄九年而未休。 毁撤人家, 幾至千餘區, 伐木調度之官, 分散四出。 以此八路蕭然, 民力蕩竭。 (又欲重建慶福宮, 自慶福爲閣道, 以連仁慶宮, 未及始役而有反正之擧。) 時, 有滿城宮闕, 滿朝宰相, 時事必變之讖, (蓋以討逆僞勳陞於宰列者, 不計其數, 終符其讖云。)】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8책 418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역사-사학(史學)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