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 18권, 광해 4년 3월 4일 戊戌 3번째기사
1612년 명 만력(萬曆) 40년
좌·우 포도 대장이 김제세가 최유해의 집이라고 지적한 곳의 실정을 아뢰다
좌우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신들이 〈역적〉 김제세를 데리고 그가 지적한 왕심리(王審里)의 두 집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만 모두 최유해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한 곳은 개성 도사(開城都事) 권의중(權義中)의 집이었는데 굴이 만들어져 있는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역적으로 하여금 최군이 들어가 있던 굴을 가리키라고 하니, 한 칸 마루 밑을 가리켰습니다. 판자를 뜯어내고 살펴보았습니다만 굴을 파고 사람이 숨어 있던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신문(新門) 안의 최군의 노복인 박몽수(朴夢守)의 집을 그로 하여금 가리키게 하니 하나의 초가집을 가리켰는데, 그 집주인은 김덕수(金德守)였습니다. 그의 아내 옥금(玉今)에 대해서는 그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무녀(巫女)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김덕수는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7책 34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가족-친족(親族)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