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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6권, 선조 25년 4월 30일 己未 6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승려 무학이 지은 도참기에 나오는 귀절과 도성의 동요가 유행하자 거기에 해석이 나돌다

국초(國初)에 승려 무학(無學)이 지은 도참기(圖讖記)에 역대 국가의 일을 말했는데, 임진년(1592)에는 ‘악용운근(岳聳雲根) 담공월영(潭空月影) 유무하처거(有無何處去) 무유하처래(無有何處來)’란 말이 있는데, 이것이 무자년003) ·기축년으로부터 세상에 행해지다가 임진년에 이르러서 크게 성행했으나 아무도 그 말을 해석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왜구가 갑자기 들이닥치자 조정에서 순변사(巡邊使) 신립(申砬)을 보내어 방어하도록 하였는데 충주에서 패전하고 전군이 월낙탄(月落灘)에서 몰사했다. 이른바 ‘악(岳)’은 곧 유악강신(維岳降申)’이며, 용(聳)’은 ‘입(立)’의 뜻이며, ‘운근(雲根)’은 곧 돌[石]이다. 그러므로 ‘악용운근(岳聳雲根)’은 ‘신립’이란 말이 된다. 또 ‘담공월영(潭空月影)’은 곧 ‘달이 여울에 떨어진 것[月落灘]’이니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다. 그 아랫 구절은, 도성 안의 백성은 피난가고 왜구가 입성(入城)한다는 말이다.

또 동요(童謠)가 있어 임진년 정월부터 도성 안에 퍼지기 시작하더니 4월에는 크게 유행했다. 동요는 곧 ‘이팔자 저팔자 타팔자[此八字彼八字打八字], 자리 봉사 고리 첨정(自利奉事高利僉正), 경기 감사 우장 직령(京畿監司雨裝直領), 큰달마기[大月乙麻其]’였는데, 임진 난리 뒤에 해석하는 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중국 사람은 남녀가 간음하는 것을 일러 ‘타팔자(打八字)’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군대가 우리 나라의 여인을 간음한다는 말이고, ‘자리고리(自利高利)’는 우리 나라의 방언으로 ‘냄새나고 더럽다.’는 뜻인데 이것은 임진 난리 뒤에 생긴 납속 군공(納粟軍功)을 의미하며, ‘봉사(奉事)·첨정(僉正)’은 다 낮고 미천함을 의미하고, 상이 4월 그믐에 파천하였으니 그 달은 큰 달이며 큰달 그믐 곧 큰달 말일이란 뜻이다. 이른바 ‘큰달마기’란 곧 ‘큰달 끝[大月末]’이란 뜻이고, 그날은 마침 큰비가 내려 경기 감사가 우장(雨裝)과 직령(直領)을 입고 어가를 뒤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4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어문학-문학(文學) / 군사-전쟁(戰爭)

○國初, 有僧人無學讖記, 歷言國家事, 壬辰年則曰: "缶聳雲根, 潭空月影, 有無何處去, 無有何處來" 云云。 自戊子己丑年間, 行于世, 至壬辰盛行, 人莫能解其語。 及倭寇卒至, 朝廷遣巡邊使申砬禦之, 忠州敗軍, 全軍更沒於月落灘。 所謂岳卽維缶降申也, 聳立也, 雲根石也。 潭空月影, 卽月落灘溺死之言也。 其下句, 卽都民避亂, 倭寇入城之言也。 且有童謠, 自壬辰正月, 行於都中, 至四月大行。 其謠曰: "此八字, 彼八字, 打八字, 自利奉事, 高利僉正, 京畿監司, 雨裝直領, 大月乙麻其。" 云云, 亂後解之者曰: "中原人, 謂男女相奸爲打八字, 此乃唐兵, 來奸我國女人之言也。 自利高利者, 我國方言臭穢之謂, 此乃亂後納粟軍功 奉事僉正, 皆卑微可賤之謂也。" 上於四月晦日, 去邠, 其月卽大月晦日, 卽末日也, 所謂大月乙麻其者, 卽大月末也。 其日適大雨, 京畿監司着雨裝直領而扈駕。" 云。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4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어문학-문학(文學)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