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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31권, 명종 20년 4월 6일 壬申 1번째기사 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대왕 대비가 언서 유교를 내리다

대왕 대비가 봉서(封書) 하나를 대신에게 【삼공·영평 부원군·영부사가 일제히 모였다.】 내렸는데 곧 언서 유교(諺書遺敎)이다.

【그 교서(敎書)는 다음과 같다."내가 본래 심열(心熱)이 있었는데 상한(傷寒)에 감기로 풍열증(風熱證)이 겸해 발작하더니, 마침내 한 가지 증세도 줄어듦이 없고, 원기가 날로 점차 허약하여져서 장차 부지할 수 없게 되었소. 그러므로 내 의사를 조정에 이르는 바이오. 지난 계해년034) 에 갑자기 국본을 잃고 망극하던 중에 상이 상심하여 그대로 심열증이 있다가 지난해에 겨우 조보(調保)하였으나 원기가 본래 허약하여 평상시처럼 회복되지 못하였기에 내가 밤낮으로 우려하였소. 세자가 탄생하기를 내가 날마다 바랐었는데 뜻밖에 우연히 이 병을 얻어 장차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오직 조정의 제신이 상에게 충성을 다하기를 바랄 뿐이요. 주상은 원기가 본래 충실하지 못하여 오래도록 소선(素膳)을 들 수 없으니, 모든 상례(喪禮)는 모름지기 기체(氣體) 보양(保養)하는 것을 선무로 삼아 개소(開素)035) 하는 것을 꼭 졸곡까지 기다리지 말고 모든 방법을 써서 조보하는 것이 곧 나의 소망이오. 주상에게 충성을 다하는 일과 개소하는 일을 내 소망대로 일체 따르고 어김이 없으면, 내가 비록 지하의 영이 되더라도 또한 감격할 것이오. 나라를 위한 정회(情懷)는 여기에 그치지 않으나 지금 병이 중함으로 인하여 다만 대개를 말할 뿐이오. 내가 평일 부리던 나인(內人)과 각 사(各司)의 사람은 고례(故例)에 의하여 모두 신역(身役)을 면제하고 자기 몸에 한하여 양식을 제급(題給)함이 가하오. 또 이 일은 조정에 말하기가 마음에 매우 미안하나 평일에 품고 있던 바이므로 아울러 말하는 것이오. 석도(釋道)는 이단이기는 하지만 조종조 이래로부터 다 있어 왔고, 양종(兩宗)036) 은 역시 국가가 승도(僧徒)들을 통령(統領)하기 위하여 설립한 것이오. 승도들이 비록 쓸데없는 것이라고는 하나 조정에서는 모름지기 내 뜻을 체득하여 끝까지 옛날 그대로 보존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옛사람 말에 ‘평상시에는 불도(佛道)를 섬길 수 없지만 부모에게 간하여도 만일 고치지 않으면 그대로 따랐다.’ 하였으니, 주상이 이단을 금지 억제하더라도 조정에서는 모름지기 내 뜻을 따르오. 윤백원(尹百源)은 비록 죄가 중하다 하더라도 효혜 공주(孝惠公主)037) 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오. 내가 이러한 때를 당했으니 그를 근도(近道)에 이배(移配)하도록 하오."】

사신은 논한다. 양종을 설립한 뒤부터 국가의 저축이 고갈되고 승도들이 마구 방자해져서 장차 국가를 다스릴 수 없게 되고 한 시대에 화를 끼친 것이 많았는데도 후세에 이를 남기고자 하여 임종하던 날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하니, 어찌 그리도 심히 혹하였을까. 더구나 윤백원은 악인과 당을 지어 난을 빚어내어 종묘 사직에 죄를 얻었다. 먼 변방에 귀양보내어 미련한 목숨을 보전하게 한 것도 오히려 형벌을 잘못 적용한 분노가 있는데 또 그를 석방하려 하니, 이것이 여정(輿情)이 더욱 답답해 하고 공론이 격발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11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사상-불교(佛敎) / 사법-행형(行刑) / 역사-사학(史學)

  • [註 034]
    계해년 : 1563 명종 18년.
  • [註 035]
    개소(開素) : 소식하는 사람이 육식을 시작하는 것.
  • [註 036]
    양종(兩宗) :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조선 명종 초에 선종시(禪宗試)와 교종시(敎宗試)의 두 승과(僧科)를 두어 각 30명씩 승려를 선발하였다.
  • [註 037]
    효혜 공주(孝惠公主) : 중종(中宗)의 장녀로 장경 왕후(章敬王后) 윤씨(尹氏)의 소생인데 연성 위(延城尉) 김희(金禧)에게 출가하였다. 딸 하나만 낳았는데, 문정 왕후(文定王后)가 그의 오빠 윤원로(尹元老)의 아들 윤백원(尹百源)에게 아내로 삼게 하였다.

○壬申/大王大妃, 以一封書下于大臣。 【三公、鈴平府院君、領府事齊會。】 乃諺書遣敎也。 【其敎曰: 予本有心熱, 而傷寒感冒風, 熱證兼發, 終無一證之減, 而元氣日漸虛弱, 將不得支持, 故諭予意于朝廷。 往在癸亥, 奄失國本, 罔極之中, 主上傷心, 仍有心熱證。 前年僅得調保, 而元氣本弱, 不能如常, 予以是晝夜憂慮矣。 國本誕生, 予日望之, 而意外偶得此病, 將不能保。 唯望朝廷一心盡忠於主上耳。 主上元氣, 本不充實, 不可久進素膳。 凡干喪禮, 須以保養氣體爲務。 開素之事, 不須待其卒哭, 而百般調保, 是予之望。 盡忠主上及開素事, 依于所望, 一從無違, 則予雖爲地下之靈, 亦應感激。 爲國情懷, 非止於此, 今因病重, 只言大槪。 予平日使喚內人各司人, 則依故例, 竝爲免役, 而限己身糧食題給可也。 且此事, 發言於朝廷, 心甚未安, 平日所懷, 故竝及之。 釋道雖是異端, 自祖宗朝以來, 皆有之兩宗, 則亦是爲國家統領僧徒, 而設之, 緇流雖曰無用, 朝廷須體予意, 終使完舊仍存可也。 古人云: "常時不可事佛道, 然諫父母, 如不改, 則從之云。" 主上雖禁抑異端, 朝廷須從予意耳。 尹百源, 雖曰罪重, 然孝惠公主奉祀之人。 當予如此之時, 使之移配近道可也。】

【史臣曰: "自設兩宗以來, 國儲虛竭, 緇徒橫恣, 將不可以爲國, 貽禍於一時者, 多矣。 而又欲遺之於後, 臨終之日, (拳拳)〔眷眷〕 不忘, 何其痼惑之甚也。 況百源黨惡釀亂, 得罪宗社, 只竄遐裔, 獲保頑喘, 猶有失刑之憤, 又欲放擇之, 此輿情愈鬱, 而公論之所以不得不激發者也。"】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11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사상-불교(佛敎) / 사법-행형(行刑)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