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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59권, 중종 22년 6월 6일 辛亥 4번째기사 1527년 명 가정(嘉靖) 6년

홍문관 부제학 박윤경 등이 정치의 다스림에 따라 절후가 응한다는 상소문

홍문관 부제학 박윤경(朴閏卿)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은 삼가 살피건대 《서경》 홍범(洪範)에 ‘정사가 다스려지면 절후가 알맞게 되고 정사가 참람하면 가뭄이 따른다.’ 하였습니다. 대개 다스림의 반대가 참람이니 정사가 다스려지지 못하면 참람해지는 것입니다. 참람하면 항거하게 되므로 가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하는 일은 천지와 유통(流通)하므로 행하는 일의 선과 악에 따라 두 기운(氣運)178) 이 그 유대로 응하는 것이니,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근년 이래로 음양이 자주 어그러지고 구징(咎徵)이 거듭 나타나 천재(天災)로 절실하게 견책하는데 금년은 더욱 참람합니다. 따라서 화기(火氣)가 왕성해야 할 달에 서리와 우박이 뒤섞여 내리는가 하면 여항(閭巷)에는 우물이 다 말랐습니다. 들에 푸른 풀이 없고 길에는 굶주려 죽은 시체가 있으며, 백성이 천성을 상실하여 어린 아이를 버리는가 하면 떠돌다가 죽어 뒹구는 정상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식찬을 감하고 풍악을 철거하고 몸을 낮추어 허물을 반성하며 종묘·사직에 기고(祈告)하고 산천에 사람을 나누어 보내셨으니, 백성을 근심하고 재앙을 두려워하는 일을 거행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도 하늘에서 응답이 없습니다. 정령을 내릴 때나 일을 거행할 적에 일념(一念)이 참람하고 어그러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마음의 그릇됨이 비록 작지만 하늘과 땅이 따라서 어그러지고, 한 마음의 바름이 비록 작지만 하늘과 땅이 따라서 순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하늘이 이미 화순하면 하늘에 있는 하늘도 화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아아, 큰 집에 아름다운 담장을 꾸미는 것은 하후(夏后)가 자손들에게 훈계한 바요, 흉년든 때 사치한 일을 거행한다는 것은 의구(宜臼)한 소후(韓昭侯)를 풍간(諷諫)한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백성이 굶주리고 재물이 다하여 공사간에 모두 곤궁한데 왕자군(王子君)과 옹주(翁主)들이 지은 집이 법도에 지나쳐 극히 장대하고 화려한 것으로 서로 자랑하고 있으므로 기강을 집행하는 자가 제도에 지나친다고 논하였으나 아직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옛부터 제왕(帝王)의 자손으로서 검약(儉約)했기 때문에 안전했던 경우는 있지만, 사치 참람하고서 패하지 않은 경우는 드뭅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사랑스런 자녀에게 패하는 소이(所以)를 남겨 주는 것이 안전할 수 있는 소이를 남겨주는 것과 어느 것이 낫습니까?

정승의 자리는 임금에 다음가는 위치로서 임금은 이들과 함께 국사를 논의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니, 구경(九經)에 이른바 경대신(敬大臣)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세상의 비평을 받으면 썩은 가지 꺾이듯 물러가야 합니다. 대신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소신(小臣)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내시(內侍)의 직책은 왕명을 전달하고 응대하고 청소하는 일에 대비하는 것뿐입니다. 전번에 있었던 저주(詛呪)의 변고(變故)는 정원(政院)에 관계되는 것이 없는데도 마음대로 공사(供辭)하였으니, 당당하고 깨끗한 조정에 감히 나쁜 짓이라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서리가 내리면 얼음이 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타난 조짐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후설(喉舌)의 지위에 있는 자들이 이를 예사로 보아 즉시 청죄(請罪)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왕명의 출납을 진실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안으로 폐행(嬖幸)에게 고혹(蠱惑)되는 것은 임금으로서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인데, 궁중(宮中)에 있는 몸으로 사삿집을 경영하기 위해 곁의 집을 점탈하는가 하면, 은총을 빙자하여 마음대로 사치를 부리면서 법을 무시하고 분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고서도 거리낌이 없으니, 신들은 성덕(聖德)의 누가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한 여인이 부정한 짓을 해도 괴기(乖氣)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전번에 대간(臺諫)은 남빈(南嬪)이 궁중에서 작폐한 일을 논하였는데 그때 전하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임금의 말은 한 번 나가면 문득 법칙이 되는 것으로, 비유하면 사계절이 오가고 해와 달이 찬연히 밝아 만물이 그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벼슬을 임명하고 벌을 시행하는 것은 위복(威福)을 다루는 큰 권한인데, 혹 아침에 서용했다가 저녁에 회수하기도 하고 혹 일이 지나간 뒤에 추후로 논하기도 하므로 호령이 일정하지 못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신들은 이는 전하께서 덕을 지니심이 굳건하지 못한 탓인가 합니다.

아,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일을 서징(庶徵)으로 관찰하건대 참람하지 않음이 없으니 하늘이 노하여 밝히고자 함이 또한 어찌 이유가 없겠습니까? 그런데 전하께서는 재변을 두려워하는 정성이 오직 기도하고 제사드리는 일에만 근면하고 근본을 찾지 않으시므로, 경근(敬謹)함이 오랬지만 감응(感應)이 더디어지는 것입니다. 일전에 한 번 비가 왔지만 땅에 흡족하지 못한 채 햇볕이 다시 강하게 쪼입니다. 옛날 송 경공(宋景公)노 희공(魯僖公)은 춘추(春秋) 때의 임금입니다. 송 경공이 세 번 자책하자 형혹성(熒惑星)179) 이 물러갔고, 노 희공이 여섯 번 기도하면서 죄를 자신에 돌리자 하늘이 비를 내려 가뭄을 몰아냈습니다. 선악에 대한 상응이 터럭만큼도 어긋남이 없이 이렇게 분명히 드러납니다. 선유(先儒)가 ‘상서와 재앙이 나뉘는 것은 모두 은미한 것으로 임금의 마음 하나에 달린 것이다.’ 하였으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닙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검박한 덕에 유의하시고 사치의 욕심을 막으며 대신을 공경하여 진퇴(進退)를 신중히 하고 내시들이 축복(縮伏)하여 감히 기강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며, 내정(內政)을 정숙히 하여 사치와 호화를 마음대로 함이 없게 하며, 호령을 확고하고 신중하게 하여 번쇄(煩瑣)함이 없게 하소서. 그리하여 마음을 바루고 기운을 화순하게 가져 날마다 살피고 날마다 조심하여 조금도 간단이 없게 하시면, 천지가 개통하고 초목이 번성하여 위육(位育)의 공과 태화(泰和)의 다스림이 기약치 않아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찌 날씨가 불순하고 재앙을 걱정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하였는데, 회답하였다.

"근래에 한재가 매우 극심하니 어찌 일각인들 잊을 수 있겠는가? 궁중의 일은 의당 계칙(戒飭)하여야 하겠다. 남빈(南嬪)은 선왕의 후궁이니 자전(慈殿)을 모시게 하는 것이 준례이다. 따라서 갑자기 독촉하여 외방으로 내보내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자연히 가 있을 곳이 있게 될 것이다. 호령이 한결같지 않다는 말은 과연 마땅하다. 삼공(三公)의 거취는 과연 경솔히할 것이 아니다. 논난을 받아 파직하기에 이르렀으므로 부득이 갈았지만 어찌 마음이 편안하겠는가? 내시가 제 마음대로 공사(供辭)를 하였는데 후설의 지위에 있는 자가 곧 청죄하지 않았으니, 모두 추문(推問)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소방(疏放)하였다. 전에는 추문하지 않았더라도 후에는 이렇게 하는 일이 없도록 이미 엄히 신칙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59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579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주생활-가옥(家屋)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註 178]
    두 기운(氣運) : 음양(陰陽).
  • [註 179]
    형혹성(熒惑星) : 화성(火星).

○弘文館副提學朴閏卿等上疏曰:

臣等謹按, 《洪範》曰: "乂, 時暘, 若, 曰僭, 恒暘, 若。" 蓋乂之反, 爲僭, 而政不治則僭差也。 僭則亢, 故常暘。 人主行事, 與天地相爲流通, 故行有善惡, 二氣各以類應, 可不懼哉? 比歲以來, 陰陽屢舛, 咎徵層見, 天災切譴, 今年益慘。 火旺之月, 霜雹交下, 閭巷之間, 井水盡涸。 野無靑草, 塗有餓莩。 民喪天性, 遺棄赤子, 仳離轉死之狀, 可忍言耶? 殿下貶膳、撤樂, 側躬省愆, 祈告宗社, 分禱山川, 憂民懼災, 無所不至, 而天不應焉。 出政之際; 行事之間, 抑有一念之僭差耶? 一心之謬雖微, 而天地從以乖; 一心之正雖眇, 而天地從而順。 在我之天旣和則在天之天無不和, 必然之理也。 嗚呼! 峻宇雕墻, 夏后所以訓子孫; 時屈擧嬴, 宜臼所以諷韓昭。 況今民餒財匱, 公私俱困。 諸君、翁主, 治第踰章, 窮極壯麗, 競尙誇耀。 執紀綱者, 論以過制, 尙未見從。 自古帝王子孫, 儉約安全者有之; 奢僭不敗者鮮矣。 然則愛厥子者, 遺之以敗, 孰若遺之以安? 台鼎之位, 貳於人主, 而與議國事, 共理天工, 九經所謂尊敬者也。 一被物評, 退若拉杅。 大臣尙爾, 況小臣乎? 閹寺之職, 傳命應對, 備灑掃而已。 厭詛之變, 不關政院, 自擅供辭, 堂堂淸朝, 雖莫敢蝃蝀, 履霜堅氷之漸, 庸可忽哉? 居喉舌之地者, 視爲尋常, 卽不請罪, 是豈出納惟允者乎? 內蠱嬖幸; 有土大戒, 而身在椒闥, 經營私廈, 占奪旁舍, 憑寵怙侈, 越法犯分,無所畏忌, 臣等恐爲聖德之累也。 一婦傾側, 亦足致乖。 嚮者, 臺諫論南嬪之搆弊宮掖, 不審殿下, 何以處置耶? 王言一出, 便可爲則, 譬如四時往來, 兩曜燦明, 萬物仰成也。 命爵、施罰, 威福大柄, 而或朝敍而暮收; 或事往而追論, 號令靡常, 下不信上, 臣等恐殿下, 執德之不固也。 嗚呼! 如前數事, 以庶徵觀之則未爲不僭, 而天怒昭告, 亦豈無由乎? 殿下懼災之誠, 唯謹於禱祀之具, 而不求於本源之地, 故敬謹雖久, 感應斯遲。 日者一霖, 未洽土脈, 陽復驕蹇。 昔宋景魯僖, 春秋之君也。 三慮營國, 熒惑退躔; 六祈罪己, 天雨驅魃。 善惡相盪, 不爽毫髮, 如是顯明。 先儒有言: "休咎之分, 皆起於人君一念之微。’ 豈不信哉, 伏願殿下, 愼儉德而杜奢慾; 敬大臣而重進退, 縮伏宦竪, 罔敢干紀; 整肅內政, 無肆侈靡; 堅重號令, 無有煩瑣。 心正氣順, 日省月愼, 無少間斷則天地開通, 庶草蕃蕪, 位育之功; 泰和之治, 不期然而然耳, 安有燠陽之不順; 災沴之爲患哉? 伏惟殿下, 留心焉。

答曰: "近來旱災尤甚, 豈一刻忘乎? 宮闈間事, 所當戒勑。 南嬪, 先王後宮, 侍於慈殿例也, 不可卒迫出外, 然自有所在之處也。 號令不一之言果當。 三公去就, 果非輕也。 被論至罷, 雖不得已遞之, 豈爲安心? 閹寺自擅供辭, 居喉舌者, 不卽請罪, 皆所當推, 但已在疏放。 前雖不推之, 後勿如是事, 已嚴勑也。"


  • 【태백산사고본】 30책 59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579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주생활-가옥(家屋)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