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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7월 29일 丙午 1번째기사 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영의정 유순 등이 백관을 거느리고 경서문을 올리다

왕이 인정전(仁政殿)에 납시었다. 영의정 유순(柳洵) 등이 백관을 거느리고 경서문(敬誓文)을 올리니, 그 글에 이르기를,

"그윽이 생각하건대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乾)과 곤(坤)이 제 자리를 정한다.[天尊地卑乾坤定矣]’ 하였고, 또 이르기를 ‘건은 주관하여 만물을 낳게 하고, 곤은 만물을 성취시킨다.’[乾知大始坤作成物] 하였으니, 그 본체(本體)로 말하면 존비(尊卑)는 바꿀 수 없는 일정한 자리가 있는 것이고, 그 자취로 말하면 양(陽)은 베풀고 음(陰)은 변하여 음양의 교합으로 만물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이 천지와 더불어 병립(竝立)하여 그 가운데 자리 잡았으므로 이에 군신(君臣)이 있게 된 것인데, 그 분수가 질서 있고 그 위세가 절연(截然)하여 천지가 서로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위 아래가 서로 협력하여 마음이 합하고 뜻이 같아야 치도(治道)를 이루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하늘과 땅의 형체는 서로 합할 수 없지만 기(氣)는 만물과 서로 합하여 통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체로 천지의 기가 교합하여 뇌정(雷霆)으로 울려주고 풍우(風雨)로 적셔주며, 한 번 춥고 한 번 더워 생성(生成)시키고 염장(斂藏)시키는 것이 조화(造化)의 자취인데, 그 그렇게 되어지는 것은 유구(悠久)토록 쉬지 않는 성(誠)인 것입니다. 임금으로서 하늘을 본받아 법 쓰기를 후하게 하고 예를 떳떳이 하며, 덕 있는 사람을 쓰고 죄 있는 자를 다스려 오변(於變)278) 의 치도(治道)를 이루는 것이 정사와 교화의 성공인데, 실지는 임금이 정성을 다해 신하를 신임하고 신하도 정성을 다해 임금을 섬겨 상하가 서로 믿어 정성과 전일이 간단 없게 하므로 말미암아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헌청 홍도 경문 위무 전하(憲天弘道經文緯武殿下)279) 께서 양강(陽剛)하신 덕으로 문명(文明)한 운수를 타고 조종(祖宗) 대대로 쌓은 국기(國基)와 훌륭한 정치의 뒤를 이어받아, 그대로 하여 온 지 오래되매 고식(故息)적인 일이 많았는데, 이에 정연(挺然)히 분발하여 치교(治敎)를 경장(更張)하되, 간교한 무리를 없애고 폐습을 바로 잡아 완악[頑]을 선량하게 감화시키매, 풍속이 바뀌고 기강이 엄숙해져 조정이 높아지고 종사가 안정되며, 예악이 갖춰지고 변방이 평온해져 모든 정사가 일변하고 천만 가지가 모두 새로워졌습니다.

신 등은 모두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공경(公卿)의 자리만 차지할 뿐 성정(聖政)을 도와 만분의 일도 보필하지는 못하고, 다만 분주하게 힘쓰기를 아침부터 밤까지 게으름 없이 하여 겨우 성상의 계책을 받들며, 눈을 씻고 다스리시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모두 태평 성대의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천 년만에 한 번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작을 잘한다고 반드시 종결을 잘하는 것이 아니요, 말을 잘한다고 반드시 실행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하가 임금에게 누군들 시종 일관 변함이 없겠다고 하지 않으며, 누군들 순탄하나 험악하나 한결같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충군 애국(忠君愛國)이 입에만 넘치고 동인 협공(同寅協恭)280) 을 참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하늘을 저버리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니, 어찌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는 도리겠습니까.

대성인 순(舜)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는 면전에서 순종하고 물러가선 뒷말을 하지말라.’ 하였으니, 면전에선 순종하고 돌아서선 비방하는 것은 반복하는 신하입니다. 안영(晏嬰)281) 은 말하기를 ‘임금은 명령을 내리고 신하는 받든다.’ 하였으니,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어기고 거역하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교합하지 않는 것이 천지의 비색(否塞)이요, 상하가 교합하지 않음은 상하의 비색입니다.

신 등이 변변치 못하오나 위로는 하늘을 받들고 아래로는 땅을 밟으며 속에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찌 차마 반복하는 신하가 되어 어기고 거역하는 짓을 하겠습니까. 성상께서 위에 계시며 만대에 태평을 가져오기 위하여 신임하고 의심하지 않으시는데 어찌 차마 성상의 은덕을 저버리고 정성을 다하여 보답하지 아니하고 막혀서 통하지 않을 일을 하겠습니까. 진실로 이 마음을 변한다면 천지와 귀신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견마(犬馬)의 정성이 권권(惓惓)함을 견디지 못하오니 삼가 바라건대, 굽어 살피소서. 신 등은 격절(激切)하여 황공하옴을 억누를 길 없어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김감(金勘) 지음. 영의정 유순(柳洵)·좌의정 신수근(愼守勤)·우의정 김수동(金壽童)·무령군(武靈君) 유자광(柳子光)·판윤 구수영(具壽永)·좌찬성 신준(申浚)·판중추(判中樞) 김감(金勘)·우찬성 정미수(鄭眉壽)·좌참찬 임사홍(任士洪)·판중추 박건(朴楗)·예조 판서 송질(宋軼)·공조 판서 권균(權鈞)·도승지 강혼(姜渾)·우참찬 민효증(閔孝曾)·호조 판서 이계남(李季男)·형조 판서 신수영(愼守英)·좌승지 한순(韓恂)·병조 판서 이손(李蓀)·이조 판서 유순정(柳順汀)·우승지 김준손(金俊孫)·좌부승지 윤장(尹璋)·우부승지 조계형(曺繼衡)·동부승지 이우(李堣)."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63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6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78]
    오변(於變) : 오(於)는 감탄사, 변(變)은 악을 변하여 선하게 만든다는 것.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백성들의 마음을 균평하게 밝혀가니 백성들이 밝아지며, 만방을 협화시키니 여민이 아! 변화하여 이에 화합해졌다.[平章百姓 百姓昭明 協和萬邦 黎民變時雍]"는 말에서 나온 것임.
  • [註 279]
    헌청 홍도 경문 위무 전하(憲天弘道經文緯武殿下) : 연산군을 가리킴.
  • [註 280]
    동인 협공(東寅協恭) : 신하들이 서로 조심하여 공사(公事)를 받들고, 마음을 합쳐 공경(恭敬)을 이룬다는 뜻. 《서경》 고요모(皐陶謨) 편에, 동인 협공이라 하였는데, 그 주석에, ‘군신은 마땅히 그 조심하고 두려워 함을 같이하고 그 공경함을 합쳐야 한다.[君臣當同其寅畏協其恭敬]’ 하였음.
  • [註 281]
    안영(晏嬰) : 춘추 시대 제(齊)나라 대부. 자는 평중(平仲). 절검 역행(節儉力行)하여 밥상에 두 가지 고기를 놓고서 먹지 않고, 첩도 비단을 입지 않으며 갖옷 하나를 30년이나 입어 이름이 제후들에게 드러남. 뒷사람들이 그의 행사(行事)와 간(諫)한 말을 모아 《안자춘추(晏子春秋)》를 만듦.

○丙午/王御仁政殿, 領議政, 柳洵等, 率百官進敬誓文, 其辭曰:

竊惟《易》曰: "天尊地卑, 乾坤定矣。" 又曰: "乾知大始, 坤作成物。" 言其體則尊卑有不易之定位, 語其迹則陽施陰變, 陰陽交而萬物生成。 惟人與天地竝立, 成位其中, 於是有君臣焉。 其分秩然, 其勢截然, 猶天地之不可易。 然必上下相須, 心交而志同, 以成治道。 譬之天地之形不可交, 而氣交萬物而通也。 夫天地之氣交, 鼓之以雷霆, 潤之以風雨, 一寒一暑, 生成歛藏造化之迹, 而其所以然者, 悠久不息之誠也。 人君法天厚典庸禮, 命德討罪, 躋於變之治, 乃政化之成, 而實由君推誠以任下, 臣盡誠以事上, 上下相孚, 誠一無間也。 恭惟我憲天弘道經文緯武殿下, 以陽剛之德, 應文明之運, 承祖宗積累之基, 熙(給)〔洽〕 之餘, 因循旣久, 事多姑息。 乃挺特奮發, 更張治敎, 剗奸革弊, 化頑爲淳, 風俗移易, 紀綱整肅, 朝廷尊而宗社安, 禮樂備而邊鄙寧, 庶政一變, 萬化皆新。 臣等俱以無狀, 備位公卿, 不能毗贊聖政補萬分一, 第與奔走宣力, 夙夜匪懈, 祗奉聖算, 拭目仰治, 共享(大)〔太〕 平之福, 可謂千載一時矣。 然善始者未必善終, 能言者未必能行。 臣之於君, 孰不曰終始不渝也? 熟不曰夷險一節也? 忠君愛國之溢於口, 而不能同寅協恭, 眞蹈其實, 則負天欺己, 豈人臣事君之義哉? 大曰: "汝無面從, 退有後言。" 面從而背非, 反覆之臣也。 晏嬰曰: "君令臣共。" 臣不恭君之令, 違逆之歸也。 天地不交, 天地之否也, 上下不交, 上下之否也。 臣等區區, 上戴天下履地, 中涵心, 豈忍爲反覆之臣, 而違逆之歸乎? 聖上在上, 爲萬世開太平, 任之不貳, 豈忍負上德意, 不竭誠以報之, 而爲隔否之事乎? 苟渝此心, 有如天地。 有如鬼神, 犬馬之誠, 不勝惓惓, 伏惟聖鑑。 臣等無任激切屛營之志, 謹昧死以聞。 臣金勘撰。 領議政柳洵、左議政愼守勤、右議政金壽童、武靈君柳子光、判尹具壽永、左贊成申浚、判中樞金勘、右贊成鄭眉壽、左參贊任士洪、判中樞朴楗、禮曹判(曹)〔書〕 宋軼、工曹判曹〔書〕 權鈞、都承旨姜渾、右參贊閔孝曾、戶曹判書李季男、刑曹判書愼守英、左承旨韓恂、兵曹判曹〔書〕 李蓀、吏曹判書柳順汀、右承旨金俊孫、左副承旨尹璋、右副承旨曺繼衡、同副承旨李堣


  • 【태백산사고본】 17책 63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6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