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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0일 辛巳 5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안양군과 봉안군을 곤장 때리다

전교하기를,

"안양군(安陽君) 이항(李㤚)봉안군(鳳安君) 이봉(李㦀)을 목에 칼을 씌워 옥에 가두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숙직 승지 두 사람이 당직청에 가서 을 장 80대씩 때려 외방에 부처(付處)하라. 또 의금부 낭청(郞廳) 1명은 옥졸 10인을 거느리고 금호문(金虎門) 밖에 대령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창경궁(昌慶宮)으로 잡아오라."

하고, 이 궁으로 들어온 지 얼마 뒤에 전교하기를,

"모두 다 내보내라."

하였다. 이 나오니 밤이 벌써 3경이었다.

정씨(鄭氏)의 소생이다. 왕이, 모비(母妃) 윤씨(尹氏)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嚴氏)·정씨(鄭氏)055) 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을 불러 엄씨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

왕이 손에 장검을 들고 자순 왕대비(慈順王大妃) 침전 밖에 서서 큰 소리로 연달아 외치되 ‘빨리 뜰 아래로 나오라.’ 하기를 매우 급박하게 하니, 시녀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대비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왕비 신씨(愼氏)가 뒤쫓아가 힘껏 구원하여 위태롭지 않게 되었다.

왕이 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인수 대비(仁粹大妃)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욕하기를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을 독촉하여 잔을 드리게 하니, 대비가 부득이하여 허락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손자에게 하사하는 것이 없습니까?’ 하니, 대비가 놀라 창졸간에 베 2필을 가져다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대비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 뒤에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2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3책 59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 / 변란(變亂)

  • [註 055]
    엄씨(嚴氏)·정씨(鄭氏) : 둘 다 성종(成宗)의 후궁인 귀인(貴人). 엄씨는 딸 공신 옹주(恭愼翁主)가 있었는데 청녕위(淸寧尉) 한경침(韓景琛)에게 출가하고, 정씨는 아들 안양군(安陽君) 항(㤚)과 봉(㦀)이 있고, 딸 정혜 옹주(靜惠翁主)는 청평위(淸平尉) 한기(韓紀)에게 출가하였음.

○傳曰: "安陽君 鳳安君 鎖項囚獄。" 又傳曰: "直宿承旨二人往當直廳, 杖各八十, 付處外方。 且義禁府郞廳一員領獄卒十人, 待命于金虎門外。" 又傳曰: "拿來于昌慶宮。" 入宮良久, 傳曰: "竝皆放送。" 出, 夜已三鼓。 鄭氏之出。 王以母妃尹氏廢死, 由於之譖, 夜縛于宮庭, 手自亂擊踐踏之, 召, 指曰: "撲此罪人。" 暗不知爲誰撲之, 心知其爲母, 不忍加杖。 王不之快, 令人亂撲, 備諸慘酷, 竟殺之。 王手劎立慈順王大妃寢殿外, 厲聲連叫曰: "速出庭下。" 甚迫。 侍女皆散走, 大妃猶不出, 賴王妃愼氏追到力救, 得不危。 王捽髮, 至仁粹大妃寢殿, 開戶辱之曰: "此大妃愛孫, 所進觴可一嘗。" 督進爵, 大妃不得已許之。 王又曰: "愛孫其無賜乎?" 大妃驚, 遽取布二匹賜之。 王曰: "大妃何殺我母?" 多有不遜之辭。 後令內需司取屍, 裂而醢之, 散棄山野。


  • 【태백산사고본】 14책 52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3책 59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