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6권, 성종 4년 1월 27일 戊午 4번째기사
1473년 명 성화(成化) 9년
지중추부사 신윤의 졸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신윤(辛昀)이 졸(卒)하니, 철조(輟朝)하고 사부(賜賻)와 조제(弔祭)를 상례(常例)와 같이 하였다. 신윤은 본관이 영산(靈山)이며, 증 호조 판서(贈戶曹判書) 신중선(辛中善)의 아들이다. 문음(門蔭)086) 으로 동부 녹사(東部錄事)에 시보(試補)087) 되고, 여러 번 벼슬을 옮겨서 지안성군사(知安城郡事)·순흥 도호부사(順興都護府使)에 이르고, 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예빈시 윤(禮賓寺尹)·제용감사(濟用監事)를 지냈다. 늙었으므로 검교 한성부 윤(檢校漢城府尹)이 되고 가선 대부(嘉善大夫) 품계(品階)에 올랐다가, 곧 통정 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제수(除授)되었는데, 검직(檢職)088) 을 거쳐서 실직(實職)에 제수되는 자는 으레 품계를 낮추기 때문이었다. 얼마 안가서 가정 대부(嘉靖大夫) 검교 호조 참판(檢校戶曹參判)에 오르고, 곧 자헌 대부(資憲大夫) 행 호군(行護軍)에 올랐다. 드디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제배(除拜)되어 수 개월 있다가 대관(臺官)에게 논박당하여 파직(罷職)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79세였다.
호이(胡夷)라고 시호(諡號)하니, 나이 많아 수(壽)를 오래 한 것을 호(胡)라 하고, 마음을 평온히 하고 안정(安靜)을 좋아한 것을 이(夷)라 한다. 신윤은 별다른 재능이 없으나, 부호(富豪)하기 때문에 중외(中外)의 현관(顯官)을 지내고 검직을 거쳐 천전(遷轉)하여 지중추부사가 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5책 2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