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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45권, 세조 14년 3월 25일 乙酉 4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박시형이 옥중에서 글을 만들어 억울함을 호소하다

박시형(朴時衡)이 옥중(獄中)에서 글을 만들어, 그 아우로 하여금 억울함을 호소하게 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신(臣) 박시형은 재야(在野)의 천(賤)한 선비입니다. 신이 거주하는 도(道)는 전라도(全羅道)가 되고, 현(縣)은 장성현(長城縣)이 되며, 이(里)는 소곡(小谷)이 됩니다. 신은 일찍이 어미를 여의었는데, 신의 아비 박홍(朴鴻)은 홀아비가 되어 혼자 살면서 재산을 잃게 되니, 토전(土田)과 노예(奴隷)도 적어서 집이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신이 나이 겨우 5세를 넘자 글을 배우게 하여 7세에 소학(小學)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신이 글을 외우지 못하니, 아비가 노(怒)하여 종아리를 치려다가 회초리를 잡아 다시 스스로 저지하고, 곧 말하기를, ‘내가 너로 하여금 젊은 나이에 명성(名聲)을 이루게 하려는 것은 먹고 입는 것을 스스로 넉넉하게 하려 함이다. 이제 너는 안으로 자모(慈母)를 잃었는데, 내가 또 따라서 종아리를 치는 것은 그 은혜가 상(傷)할 것이니 차마 하지 못하겠다.’ 하고, 그대로 울다가, 즉시 신을 거느리고 하나의 경서(經書)를 조금 아는 중[僧]을 찾아서 의탁하였습니다.

신은 날로 백언(百言)을 외우고, 경전(經傳)을 익히고 해독(解讀)하며, 독서를 파(罷)하고 강(講)하다가 남은 시간에는 노사(老師)와 더불어 선가(禪家)의 일을 담론(談論)하니, 신의 마음에는 조금씩 기뻐하였으나, 홀로 기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오직 출세(出世)하는 데 뜻을 삼음은 객지(客地)에 오래 있다 본시 살던 곳에 돌아가는 것을 이름이며, 공허(空虛)함을 피하는 것을 이름이니, 사람의 발 소리를 듣고도 기뻐하였습니다.

이에 책을 끼고 조용한 곳을 찾아 월출산(月出山)에 들어가니, 아비를 보지 못한 것이 또 5년이 되었습니다. 신이 나이 15세에 집에 돌아와 아비를 뵈었더니, 아비는 노여워하고 나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기쁜 모양을 아울렀습니다. 그 얼굴을 온순하게 하여 그 온 것을 기뻐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안색을 가다듬어 그 온 것이 이르지 못함을 노(怒)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에 아비의 침소(寢所) 곁에 시좌(侍坐)하여 조용히 바로 고하기를, ‘소자(小子)는 일찍이 어미를 잃고 가인(家人)이 박(薄)하여, 장차 스스로 떨칠 수가 없습니다. 원컨대 세속(世俗)의 더러움을 벗어나 명산(名山)에 들어가 구족(九族)의 인연을 도와서 이루려 합니다. 금세(今世)에 명성을 이루어서 한 아비를 영화롭게 효도함이 어찌 구족(九族)의 좋은 인연을 돕는 것과 같겠습니까?’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이 젊은 나이에 기력을 지켜 정력이 온전하며, 정신이 한결같고 뜻이 웅장할 때의 말이었습니다. 신의 아비는 폐연(廢然)히 바로 이르기를, ‘너의 말이 그럴 듯하다. 그러나 우리 집은 파계(派系)가 매우 한미하고, 자산(資産)도 자못 고단하다. 너의 증조부(曾祖父)는 중랑장(中郞將)을 지내었으니, 이름이 박승봉(朴承鳳)이고, 조부(祖父)는 갑사(甲士)·사정(司正)을 지내었으니, 이름이 박영보(朴英寶)이며, 나는 또 질병이 있어 벼슬하지 아니하고 학생(學生)이 되었으니, 아아! 모두 향인(鄕人)을 면하지 못하였다. 내가 곧 개연(慨然)히 생각하고 너에게 학문(學文)을 권장하는 것은 입신 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父母)를 드러내게 함이니, 그 기대(期待)하고 바라는 것이 그것이 깊지 않겠느냐? 이제 네가 할애(割愛)하여 출가(出家)하고 머리를 깎고서 산으로 들어가면, 나의 평일에 너를 기르고 너를 장성시키며, 너를 가르치어, 너에게 기대하고 바랐던 것이 이즈러진다. 네가 말하는 것과 같이 하여 그 미래(未來)의 족친을 구원하는 좋은 인연을 이루게 된다 하더라도, 어찌 등제(登第)하고 입신(立身)하며, 그 효도를 내 눈 안에서 친히 보는 것과 같겠느냐?’ 하며, 반복하여 사랑스럽게 가르치어, 신은 힘써 아비의 훈도를 따라, 아침에 논밭 갈고 밤에 글 읽기를 경전(經傳)이나 제자(諸子)의 서(書) 같은 것은 열독(閱讀)하지 않음이 없어, 소략하게 지류(支流)를 얻어서 과업(課業)을 부지런히 하였으나, 정(精)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하늘에 응하고 사람에 순종하시어, 등극(登極)하신 지 2년인 병자년(丙子年)142) 봄에, 신이 장옥(場屋)143) 에 출유(出遊)하여 다행히 문과(文科) 제2명(第二名)에 합격하였습니다. 국조(國朝)에서는 신이 조금 문자(文字)를 안다 하여 직임을 겸 예문관(兼藝文館)을 겸하게 하고, 화질(華秩)을 천력(踐歷)하여, 신이 매양 녹(祿)을 받는 날에는 처자(妻子)에게 고하기를, ‘나는 봉호(蓬藁)144) 의 천한 선비로서 특별히 성은(聖恩)을 입어, 녹봉으로 경작을 대신하여, 위로는 족히 어버이를 섬기고 아래로는 족히 처자를 양육하니, 장차 무엇으로 성덕(聖德)의 만(萬)의 하나라도 보효(報效)하겠느냐? 너희들은 마땅히 나를 섬기기를 해이(懈弛)하지 말고, 나도 마땅히 한 가지 신념만으로 딴 마음 없이 소심(小心)으로 봉직(奉職)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성덕에 감사히 여기는 마음은 그 세록(世祿)의 자제(子弟)보다 천(千)의 갑절이나 남음이 있고, 만(萬)에 남은 감동이 있사온데, 감히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하여 성상에게 닿는 말을 발설하겠습니까? 절대로 이럴 이치는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 전하(殿下)께서 즉위(卽位)하신 이래로 덕화가 흡족하고 인정(仁政)이 심화(深化)하며, 비가 개이고 시절이 순하여, 해마다 풍년이 들고 여러 번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정사의 피폐(疲弊)한 것을 개혁하고 법전(法典)의 빠진 것을 보충하며, 예악(禮樂)·제도(制度)에 이르러서도 더하고 덜어서, 시대와 더불어 마땅하게 하여, 백성은 편안하게 전거(奠居)함을 즐거워하고, 다스림은 태평하고 화락한 데에 이르렀습니다. 또 야인(野人)이나 일본(日本)이나, 삼도(三島)나 유구국(琉球國) 같은 사이(四夷)가 모두 내정(來庭)하였으며, 아름다운 징조와 이상한 상서가 모두 모이어 만물(萬物)이 흔쾌하게 보니, 운수가 형통하고 아름다운 데에 붙어서 오직 소국(小國)만이 왕을 사모할 뿐이 아니고, 중국이 우리 전하를 대접하는 데 이르러서도 그 예(禮)와 그 의(義)는 옛보다 융숭하고, 열국(列國)보다 성대하니, 우리 전하의 공덕(功德)이 성하지 않고서는 그럴수가 있겠습니까? 삼황(三皇)145) 도 마땅히 도(道)를 양보하고, 이제(二帝)146) 도 마땅히 덕(德)을 양보하며, 삼후(三后)147) 도 마땅히 공(功)을 양보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상의 마음에는 스스로 다스림이 되지 않았다 하여, 소의 간식(宵衣旰食)148) 하고 척려(惕厲)하시며, 오히려 하정(下情)의 옹폐(壅蔽)와 한 백성이라도 저마다 그 곳[所]을 얻지 못할까 염려하여, 혹은 궤(櫃)를 설치하고 혹은 숫가지[籌]를 잡아, 언로(言路)를 활짝 열고 간특한 것을 버리며, 곤궁한 것을 구제하고 성색(聲色)을 멀리 하여 충량(忠良)을 가까이 하며, 날로 석보(碩輔)149) 와 더불어 하늘의 찬화(贊化)에 참여하시었습니다. 좌로 대학생(大學生)을 강(講)하고 우로 우림(羽林)의 선비를 열람하여, 어진이는 방법에 구애하지 않고 세우게 하며, 재주 있는 이는 구비(求備)하지 않아도 임명한 까닭으로 진실로 한 가지 재주와 한 가지 능통함이 있는 자는 때[時]를 지우(知遇)하여 그 재주를 펴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삼대(三代)150) 이하로 인재(人才)의 나옴이 이에 성함이 되었으니, 신도 비록 재주는 없더라도 천감(天鑑)에 알게 보이려고 한 번 배운 것을 펴려고 한 지 오래였습니다.

이제 불행하게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의 참소[訴]를 입어, 옥(獄)에 구속되어 다섯 차례의 장문(杖問)을 받고, 13삭(朔)을 머물렀으니, 천재(天載)의 아래에 신이 공야장(公冶長)151) 과 그 자취가 같겠습니까? 처음에 황백동(黃白童)이 고발하여 말하기를, ‘이백필(李伯弼)이 말하기를, 「박시형(朴時衡)의 아비의 대상일(大祥日)에 아우 이근필(李勤弼)을 거느리고 박시형의 집에 이르렀는데, 내가 박시형을 향하여 처음 말의 실마리를 내기를, 삼년상(三年喪)을 마치고 높은 벼슬을 하거든 겸하여 우리 무리도 구제하여 달라고 하니, 박시형이 대답하기를, 나는 장차 시기를 기다려서 근무할 것이니 자네는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합니다.’ 하고, 이백필장성(長城)에서 추국을 보던 날에 바로 말하기를, ‘자리에 이병규(李丙奎)란 자가 있어 처음 담화(談話)의 실마리를 내기를, 「중[僧]과 같고 미친 것과 같아서 재덕(才德)이 겸하여 없는 설성(薛晟)과 같은 자가 고관(高官)을 배수(排受)하여 담양 부사(潭陽府使)가 되었으니, 우리 무리와 같은 것은 장차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다.」고 하니, 박시형이 대답하기를,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을 것인데, 어찌 황백동·이백필 2인만이 혹 높은 벼슬을 하거든 나를 구제하라 일컫고, 혹 설성(薛晟)을 재주가 없다고 일컬어 말끝을 모순(矛盾)되게 하는가?」라고 하였다.’ 합니다. 이와 같은 대옥(大獄)의 말[辭]을 이백필이 말한 것이 어찌 명백하고 자상하지 않으며, 황백동이 들은 것이 어찌 자상하고 명백하지 않겠습니까? 두 말이 서로 같지 않으니 그 실정과 그 거짓이 여기에서 가히 볼 만하며, 또 이백필이란 자는 의금부(義禁府)에서 처음 추국(推鞫)하는 날에, 황백동과 재삼 면전에서 힐난하기를, ‘황백동이 고발한 말은 전혀 내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나는 다만 방천(防川)이나 조묘(造墓)를 범람(汎濫)하게 한 것 등의 일을 고발하게 하였으니, 다른 것을 말한 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1차로 형문(刑問)하는 날은 박시형(朴時衡)이 도(道)가 있고 도가 없는 말과 설성(薛晟)을 지적하여 말하였으니, 성상께서 닿는 말이 아니었는데, 2차로 형문하는 날에도 또한 이로써 고백하게 하고, 3차로 형문하는 날은 바로 말하기를, ‘박시형설성(薛晟)을 지적하여 말하였는데, 내가 성상에게 닿는 말임을 의심한 까닭으로 황백동(黃白童)으로 하여금 고발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황백동의 말한 것이 옳으면 이백필이 말한 것이 그르며, 이백필의 말한 것이 옳으면 황백동의 말한 것이 그릅니다. 두 말이 모두 옳지 아니하고 모두 그르지 아니하니, 신의 뜻으로 생각하기에는 높은 벼슬을 하거든 나를 구제하여 달라는 말은 도(道)가 없다는 말과 서로 순함이 있으나, 설성이 재주가 없다는 말은 가깝지 아니합니다. 이백필의 말은 처음에는 듣고서 말한 것이고, 중간에는 듣지 않고서 말하는 것이며, 또 중간에 설성을 지적하여 말하고, 끝에는 그 말을 정하지 않고서 말하였으니, 처음 말한 것이 옳으면 중간에 말한 것이 그르며, 중간에 말한 것이 옳으면 또 중간에 말한 것이 그르며, 또 중간에 말한 것이 옳으면 끝에 말한 것이 그릅니다. 한 혀[舌]호써 네 번이나 그 말을 변하게 하였으니, 그 실정과 그 거짓을 또 가히 볼 만합니다.

신의 뜻으로 생각하건대 이백필(李伯弼)이 처음에 들은 것으로써 말하였다는 것은 그 혐의와 원망으로써 소신(小臣)을 해치고, 또 공상(功賞)을 요구하려고 말한 소이(所以)이니, 그 실정은 옳되 그 말은 그르며, 중간에 듣지 않은 것으로써 말하였다는 것은 하늘을 멍에하여 말을 세워서 말을 꾸미기가 어려운데다, 신의 얼굴을 면대하고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서 말한 소이이니, 그 말은 옳되 그 실정은 그르며, 또 중간에 설성을 지적하여 말한 것으로써 말하였다는 것은 이치가 굽히고 말이 궁하여, 그 말한 것을 숨길 수 없어서 말한 소이이니, 그 말이 그르고 그 실정도 또한 그르며, 끝에 그 말을 정(定)하지 못한 것으로써 말한 것은 또 듣고 또 듣지 않고서 그 말을 놀려서 말한 소이이니, 그 말은 교묘하되 그 실정은 굽으러졌습니다.

신이 어찌 이백필을 꾀어서 듣지 못하였다고 일컬으며, 진퇴(進退)를 설성(薛晟)에게 속하였다고 일컫게 시킬 수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천금(千金)을 주고서 꾀었다 하더라도 이백필은 이미 지휘(指揮)하는 원정(元情)이 있고, 또 망령되이 고발하는 것은 반드시 반좌(反坐)152) 가 됨을 알 터인데, 즐겨 신이 꾀이는 말을 따르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통곡하여 눈물을 흘리는 소이입니다.

도(道)가 있고 도(道)가 없다는 말은 신이 만약 정녕(丁寧)하게 말하고, 이백필이 만약 정녕히 들어서 충심(忠心)으로 고발하였다면, 즐겨 3년이 지난 뒤에 사람의 혀를 빌어서 고발하겠습니까? 그 실정과 그 거짓을 또 가히 볼 만합니다. 또 이백필의 사람됨이 문자(文字)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매양 추문(推問)할 때면 추국한 문안(文案)을 해독(解讀)하여 볼 수가 없으므로, 당리(堂吏)로 하여금 읽게 한 뒤에 그 이름을 썼습니다. 문자를 알지 못하면서 도(道)가 있고 없다는 말을 깨우쳐 들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이상함이 있으니, 그 실정과 그 거짓을 또 가히 볼 만합니다. 《노론(魯論)》에 말하기를, ‘나라[邦]에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道)가 없으면 숨는다.’ 하였는데, 이제 이백필의 말에는 나라 방(邦)자가 없으니, 그 실정과 그 거짓을 또 가히 볼 만합니다. 유사(有司)의 관리가 추문(推問)하는 뜻은 반드시 유자(儒者)는 경박(輕薄)하다고 여김이니 진실로 그것이 마땅하며, 말이 기필하나, 그러나 이백필이란 자는 소신(小臣)을 해치려는 마음이 중하고 또 크며, 또 공(功)을 요구하는 마음이 또 따라서 깊었습니다. 고금 천하(古今天下)에 오직 이(利)만을 구하고, 오직 분(忿)한 것만을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그 말을 꾸며대는 것이 어찌 족히 괴이하겠습니까? 신은 듣건대 주(周)나라 관제(官制)에서는 향(鄕)153)8형(八刑)154) 으로써 만백성을 다스렸으되, 조언(造言)의 형벌을 그 하나로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거짓된 말을 하고, 새로 말을 꾸며대는 자로 예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니, 지금만이 유독 어찌 그런 사람이 없겠습니까?

생각건대 유사(有司)에서 그것을 신이 숨겼다고 하나, 신은 숨긴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르기를, ‘설성(薛晟)이란 자가 후하게 접대하면 보고, 박하게 접대하면 보지 않는다.’고 한다면, 설성이란 자는 담양부(潭陽府)의 수령이며, 박시형(朴時衡)·이병규(李丙奎)장성현(長城縣)에 사는 백성입니다. 설성이란 자는 박시형·이병규의 성주(城主)가 아니며, 박시형·이병규설성의 풍화(風化)를 입는 백성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박시형·이병규설성의 후하고 박하게 대접하는 말을 헤아려서 수군(數郡)의 경계를 넘어 위하여 나아가고 위하여 물러가겠습니까? 하물며 박시형·이병규담양(潭陽)에 한 이랑[頃]의 전토나 한 구(口)의 노예도 없으니, 그 실정과 그 거짓을 또 가히 볼 만합니다. 또 말하기를, ‘박시형이 대청(大廳)을 꾸몄다고 하는 것은, 한유(閑遊)를 계교함이다.’ 하니, 이백필이 말을 꾸며댄 것은 교묘하다고 이를 만합니다. 사람이 세간(世間)에 나서 누가 집을 경영하지 않고서 살겠습니까? 더구나 신의 아비는 평일(平日)에 대청(大廳)을 꾸미려고 구촌(鳩村)에 터[基]를 세웠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청을 꾸미는 것은 아비의 뜻이옵고, 신의 뜻이 아닙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그 아들이 곧 집터[堂]고 닦으려 하지 않고 있다면 어찌 집이 얽어 만들어지는가?’ 하였고, ‘사람의 자식된 자는 그 아비의 뜻을 능히 계술(繼述)한다.’고 하였으니, 어찌 불사(不仕)의 계교를 하였겠습니까?

이백필이 그 아우 이근필(李勤弼)로써 마을 사람 김의순(金義順)과 공증(公證)을 하였는데, 김의순은 장(杖)을 여섯 차례나 받고도 오히려 듣지 못하였다고 말하였으니, 설령 들은 것이 있다면 용렬하게 숨김이 있겠습니까? 김의순박시형에게 비록 부형(父兄)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차마 할 수 없었거든, 더구나 일가가 아닌 데이겠습니까? 그 아우 이근필이라는 자도 또한 1차의 형문(刑問)하는 날은 곧 말하기를, ‘나는 취(醉)했기 때문에 듣지 못하였다.’ 하고, 바로 2차의 형문하는 날에는 형의 꾀임을 들어 말하기를, ‘나도 또한 함께 들었다.’ 하였으니, 저번때 듣지 못한 것으로써 일컬은 것은 이병규(李丙奎)라는 자가 서울에 나아갈 때에 양재역(良才驛) 노차(路次)에 이르러서 말하기를, ‘너는 서로 용은(容隱)155) 이 되니, 마땅히 취(醉)함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하고, 또 다시 형문(刑問)하는 날에는 바로 말하기를, ‘이병규라는 자가 행원(行院) 노차(路次)에 이르러 나를 달래기를, 「너는 서로 용은(容隱)이 되므로, 의금부(義禁府)에서는 반드시 네 말을 청리(聽理)하지 않을 것이니, 나머지는 말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합니다. 대개 여기에 이르러 이병규가 꾀인 바의 취(醉)함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였다고 말하게 한 것은, 곧 스스로 거짓된 말을 지은 까닭으로 갑자기 잊어버린 것이니 그 실정과 그 거짓을 또 가히 볼 만합니다. 혹은 양재(良才) 길 가운데서 꾀였다고 일컫고, 혹은 행원(行院) 도중(途中)에서 꾀였다고 일컬으니, 대저 행원(行院)·양재(良才)의 상거(相距)가 몇 백리이기에 어찌 전후의 말끝이 어그러짐이 있는 것입니까? 처음에 그 형 이백필은 장(杖) 1차례를 받고서, 그 말을 들은 것으로써 황백동(黃白童)을 지휘(指揮)하여 고하였다고 말하고, 그 아우 이근필(李勤弼)은 장(杖) 1차례를 받고 듣지 못한 것으로써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이근필이란 자는 이병규(李丙奎)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 형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 골육(骨肉)을 미워하는 것입니까? 그 이웃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까? 어찌 그 형은 장형(杖刑)을 받고 들었다 하였는데, 그 아우는 장형을 받고 듣지 못하였다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 실정과 그 거짓을 또 가히 볼 만합니다.

더구나 이백필·이근필·황백동의 말이 자못 거짓의 실마리가 역력(歷歷)하게 추국한 문안(文案)에 있는데도 유사(有司)의 관리는 이것은 살피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이백필 형제의 말이 옳다 하고 율(律)로 신(臣)만을 중죄(重罪)하려 하니, 신이 민망하게 여기는 것은 천지(天地)에 다하였습니다. 말의 시비(是非)와 일의 진위(眞僞)는, 부관(府官)은 당상(堂上)에 앉고, 낭청(郞廳)은 당중(堂中)에 서고, 사령(使令)은 당하(堂下)에 모였으며, 헌부(憲府)·간원(諫院)도 또한 함께 청리(聽理)하였으니, 보기를 반반히 하고 듣기를 소소히 하며, 일일이 올리고 전폐(殿陛)의 아래에서 추문(推問)하게 하였으니, 추국한 문안을 겸하여 상고하면 그 실정을 알 만합니다.

더구나 신은 비록 불초(不肖)한 자식이라 하더라도 망부(亡父)의 대상(大祥) 날에 조석(朝夕)의 전(奠)드리는 것을 파(罷)하고 모시던 무덤 곁을 떠나며, 길이 황천(黃泉)에서 상견(相見)하기를 기약하였습니다. 그러나 황천에서 서로 보기를 기약했으나 볼 수 없으니, 그 보고 그 보지 못하는 것도 또한 기필할 수 없습니다. 신은 고성(高聲)으로 대곡(大哭)한 뒤에 육아(戮莪)156) 를 지은 소이(所以)를 알게 되니, 안으로는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 통곡이 격동하고, 밖으로는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잠겨서, 비록 이웃 사람이 설호(挈壺)157) 를 가지고 오는 이가 있더라도 이미 응하여 얻지 못할 것인데, 어느 겨를에 옷깃을 헤치어 회포를 토론하며, 좌우와 더불어 담화(談話)하면서 공명(功名)의 일을 논(論)하였겠습니까? 하물며 신은 성현(聖賢)의 글을 읽어 조금은 부자(父子)의 정(情)을 아는 자이며, 또 절대로 이런 이치가 없으니, 공손히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살피소서.

또 신의 성품은 본시 말이 적어, 평시에 집에 있으면 침중(忱重)함이 너무 많은 까닭으로 처자(妻子)가 엄하다 여기고, 노복(奴僕)이 엄하다 여기며, 이웃 사람도 또한 엄하다 여겨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습니다. 관직에 있을 때에도 또한 오히려 이와 같이 하여, 일찍이 한 말[一語]이라도 알지 못하는 것은 입밖에 내지 않았는데 그 감히 성상에게 닿는 말을 많은 사람이 보고 듣는 데서 크게 부르짖겠습니까? 또 절대로 이런 이치는 없습니다. 무릇 어리석은 무리[徒]에게 지혜로운 자가 있다 하더라도 감히 부자(父子)·형제(兄弟)의 사이에도 난언(亂言)을 하지 못할 것인데, 더구나 그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하겠으며, 더구나 그 조금 이치를 살필 수 있는 자에게 하겠습니까?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살피소서.

신은 벼슬에 오른 이래로부터 한 번도 정사(呈辭)158) 하지 아니하고, 아침 저녁으로 봉직(奉職)한 지가 이에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더러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는 자라 하고, 신더러 도(道)가 없으면 숨는 자라는 말입니까.? 신이 도(道)가 없으면 숨는 자가 아니라면, 비록 신이 말한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이 어찌 숨기겠습니까? 또 정사(呈辭)하지 않았을 뿐만 아나라, 신이 조략(粗略)하게 질병을 일컬어 조참(朝參)에 나태하거나 벼슬에 나가는데 태만함이 없었으니, 소신(小臣)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이와 같았는데, 어찌 이런 말을 발설하겠습니까? 또 절대로 이런 이치가 없습니다.

대저 말[言]이라는 것은 마음의 소리입니다. 마음에 있는 연후에야 말이 나타나는 것인데, 신이 스스로 간폐(肝肺)를 더듬어도 일찍이 한 터럭의 다른 마음을 두지 않았으니, 이 말과 이 소리가 무엇을 따라 나왔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또 통곡(痛哭)하고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중니(仲尼)159) 의 말에, ‘사람의 삶은 곧게 마련인데, 곧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요행히 난을 면하고 있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신이 만약에 말하고서도 숨겼다면 몸은 비록 천지(天地) 사이에 용납한다 하더라도 안으로는 곧지 못한 것이 존재할 것이니, 어찌 마음에 편안한 것이 있겠으며, 어찌 죽은 뒤엔들 편안하겠습니까?

아아, 사람이 몸을 쉽게 얻지 못하면 대장부(大丈夫)의 몸도 또 쉽게 얻지 못할 것이고, 대장부의 몸을 쉽게 얻지 못하면 대장부의 마음도 또 쉽게 얻지 못할 것이며, 대장부의 마음을 쉽게 얻지 못하면 성명(聖明)한 때에도 또 쉽게 얻지 못할 것입니다. 신은 이제 얻기 어려운 몸과 얻기 어려운 마음과 얻기 어려운 때를 얻었는데, 중도에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의 혀[舌]에 꺾이었으니, 신의 타고난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유하건대 준마(駿馬)가 백락(伯樂)160) 의 마구간에서 자랐으되, 그 재주를 발휘하지 못하고 중도에 야직(野稷)의 손에 죽고, 큰 나무가 장석(匠石)의 동산에서 생장하였으되, 그 재목을 팔지 못하고 중도에 착공(斲工)의 도끼에 꺾인 것과 같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이백필(李伯弼)의 혀는 야직(野稷)의 손이나 착공(斲工)의 도끼보다 혹독할 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그러나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삶[生]은 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천지(天地)의 운명에 맡긴 것이며, 몸은 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천지의 준 형상이니, 생명은 신(臣)의 것이 아니고 천지(天地)의 운명에 맡긴 것입니다. 사대(四大)161) 가 가합(假合)하여 형상이 되고 흩어져서 변화하니, 그 합(合)함과 그 흩어짐의 그 지극함을 알지 못합니다. 합한다 하여 진실로 어찌 족히 기뻐하며, 흩어진다 하여 진실로 어찌 족히 슬퍼하며, 생(生)이라 하여 진실로 어찌 족히 즐거워하며, 사(死)라 하여 진실로 어찌 족히 근심하겠습니까? 합(合)함이 있으면 흩어짐이 되어 이어지고, 생(生)이 있으면 사(死)가 되어 대신하며, 전등자(傳燈者)는 앞을 밝히고 뒤를 밝히는 것이 아니며, 비형자(比形者)는 지금의 나이며 예전의 내가 아니니, 비록 잡아서 머무르게 하려 하여도 모두 스스로 알 수 없는 가운데 가버립니다. 그 이런 형상을 잡아서 훔쳐 사사롭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 신이 어찌 삶이 즐겁다는 미혹함에 빠지지 않을 줄 알겠으며, 신이 어찌 죽음이 싫다는 나약함에 빠지지 않을 줄 알겠으며, 죽어서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하는 자이겠습니까?

예전에 여희(驪姬)162) 가 봉인(封人)의 아들을 기르다 바야흐로 그가 진(晉)나라 헌공(獻公)에게 시집가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근심하였는데, 그 진(晉)나라에 이르러 왕(王)과 상(床)을 한가지로 하여 추환(芻豢)163) 을 먹게 된 뒤로는 그 울은 것을 후회하였으니, 신(臣)이 어찌 죽는 것을 알겠으며 그 처음을 후회하고 생(生)을 구하겠습니까? 신이 과거업(過去業)의 선악(善惡)을 살필 수 없지마는, 신이 금생(今生)에 처(處)하여 안으로는 간사하고 거짓된 마음이 없고 밖으로는 거칠고 도리에 벗어난 행실이 없으며, 악하고 장애되는 것을 제거(除去)한 지가 오래이었으니, 어찌 그 지금을 후회하여 생을 구하는 것을 알겠습니까? 신은 듣기를, ‘꿈에 술을 마시는 자는 아침에 울고, 꿈에 우는 자는 아침에 사냥한다.’ 하니, 대개 바야흐로 그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인 줄을 알지 못하며, 꿈을 꾸는 중에 또 그 꿈을 점(占)치다가 깬 뒤에야 그것이 꿈인 줄을 압니다. 장주(莊周)164) 가 꿈에 허허연(栩栩然)165) 히 나비가 되니, 나비만을 인정하였지 어찌 장주(莊周)를 알았겠으며, 거거연(籧籧然)166)장주가 된 것을 깨달았으니, 장주만 잡았지 어찌 나비를 알았겠습니까? 공자(孔子)가 꿈에 주공(周公)을 보고 어찌 주공의 참[眞]이 아님을 면대하여 알았겠으며, 깨어서 주공을 보지 않고 어찌 주공의 허망되지 않음을 알았겠습니까? 그런 까닭으로 크게 깨달음이 있은 뒤에야 큰 꿈을 알게 되는데, 이제 신은 혼(魂)이 뒤섞이고 몸이 같혀서 꿈을 깨달을 수 없으니, 어찌 꿈을 꾸는 것은 허망함이 되고, 깨닫는 것은 옳음이 되며, 사는 것은 변화가 되고, 죽는 것은 참[眞]이 되는 것을 알겠습니까? 열자(列子)의 말에 이르기를, ‘진인(眞人)이 있은 뒤에 진지(眞知)가 있다.’고 하였는데, 신은 진인(眞人)이 아니니, 오늘날에 한하는 것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들으니, 《대아(大雅)》167) 의 시(詩)에 말하기를, ‘날마다 여기 있는 것을 감독한다.’ 하였고, 이백(李白)의 시(詩)에 이르기를, ‘위에는 밝은 해가 있으니, 천심(天心)이 마땅하고, 비추어서 명주(明主)를 섬김이 옳다.’고 하였으니, 신의 머리 위에는 밝은 해가 바르게 임(臨)하였는데, 신의 폐간(肺肝)을 비칠수 없으니, 장차 무엇으로 이 마음을 천지(天地) 사이에 변명하여 밝히겠습니까? 만약 변명하여 밝힐 수 없다면 끝내 우리 명주(明主)를 섬길 수 없는 것이 명백하니, 이것이 신이 옥중(獄中)에서 크게 통곡하는 것입니다. 신이 또 들으니, 대혜(大慧)의 송(頌)에 이르기를, ‘불일(佛日)168)삼계(三界)169) 를 비치니, 중생(衆生)은 말광(末光)을 좇는다.’고 하였으니, 신이 성명(聖明)한 시대에 나서 만겁(萬劫)170) 에 만나기 어려운 덕화를 만나, 의지하여 따르지 못하고 몸이 허물이 아닌데에 떨어지니, 이것이 신이 또 통곡하여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옛날에 아난(阿難)171) 이 잠시 세존(世尊)172) 을 떠나 음란한 집의 총애에 빠졌는데도 오히려 슬퍼하여 울었거든, 하물며 이제 소신은 영원히 지존(至尊)을 어긴 악명(惡名)으로써 죽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울어도 슬픔이 그치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데 이르러서는 눈물 흐르는 것이 그치지 않아서 통곡하기에 이르니, 몹시 슬픕니다. 사람이 누가 죽지 않으리오마는, 난언(亂言)의 이름으로써 요절하는 자는 그것이 민망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누가 혀[舌]가 없으리오마는, 난언의 말을 지어내어 흔드는 자는 그것이 엄(嚴)하지 않겠습니까?

대저 인주(人主)가 신하를 보는 것은 그 마음을 볼 따름입니다. 진실로 한 터럭이라도 인군을 속이는 마음이 있다면 비록 주공(周公)의 재주의 아름다움이 있더라도 나머지는 족히 볼 것이 없습니다. 돌아보건대 신은 바탕이 화려하지 못하고 말이 문채롭지 못하며, 성품이 둔(鈍)하지 않음이 없고 재주가 용렬하지 않음이 없어, 볼 만하고 쓸 만한 것이 없는 자이오나, 그러나 인주(人主)를 사모하는 진정한 마음이야 신이 어찌 옛날의 명신(名臣)에게 양보하겠습니까? 신이 전일에 경국(經局)173) 에서 성상을 가까이 모시기를 바랐는데, 엎드려 금중(禁中)174) 의 경계하고 꺼리는 것을 들으면, 신이 공직(公職)에 있다 물러가 집에 이르러서도 망연(茫然)히 즐겁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신의 처자(妻子)가 신의 얼굴을 보고 이르기를, ‘오늘은 무슨 즐겁지 않은 일이 있었기에, 어찌 그 안색이 유쾌하지 않느냐?’ 하여도, 신은 잠잠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조참(朝參)하여 신이 전계(殿階)의 아래에 서서 천일(天日)175) 의 빛을 우러러 보는데 미쳐서는 사사로이 스스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족도(足蹈)하며 사배(四拜)하고 곧 물러났으니, 신의 몸이 비록 미천하더라도 인군(人君)을 사랑하는 마음은 대신(大臣)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또 신의 재주는 비록 날로 계교하는 데는 부족한 것 같으나, 달로 계교하면 신이 또 어찌 남에게 양보하겠습니까?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 신을 시험한 뒤 신을 아신 까닭으로, 오늘에 있어서의 신(臣)은 그윽이 우리 전하의 염려하시는 자가 되었습니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의 말을 믿으시고 한 우직(愚直)한 신하를 잃으심이니, 신은 홀연히 오늘 옛적의 추양(鄒陽)176) 으로 더불어 옥중(獄中)에서 상서(上書)하여, 하늘의 대덕(大德)을 입으면 신은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보고 그 재주를 크게 기특하게 여기고, 즉시 승정원(承政院)을 불러오게 하여 가쇄(枷鎖)177) 를 풀어 주고, 중사(中使)로 하여금 빈청(賓廳)에서 먹이게 하였다. 또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로 하여금 전교하기를,

"처음 네가 수금(囚禁) 당하였을 때는 이백필(李伯弼)의 호소를 내가 진실로 의심하였으나, 다만 네가 혹 말하고서도 숨기는 것인가 의심하여, 감히 도(道)가 있고 도(道)가 없는 말을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네가 비록 말하였더라도 무슨 죄가 있으며, 또 네가 비록 진실로 죄가 있더라도 너의 재주를 죽일 수 없으니, 내가 너를 임용하려 한다. 다만 네가 옥중(獄中)에 오래 있었으니, 어찌 병이 들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이 없겠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신은 병이 없고 또 건강하니, 근무할 만합니다."

하므로, 즉시 명하여 후일에 직임(職任)을 주게 하고, 아울러 공사(供辭)에 관련된 사람인 이병규(李丙奎)를 석방하였다. 여러 재신(宰臣) 등이 사정전(思政殿)에 모여 박시형(朴時衡)의 글을 보고, 차탄(嗟嘆)하여 마지 않으니,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가 말하기를,

"이것을 삶을 구하였으되 말이 아첨하지 아니하고, 죄를 송사(訟事)하였으되 실정이 더욱 나타나며, 그 사이의 사의(辭義)가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反覆)하고 종횡(縱橫)으로 드나들어서 일찍이 막히고 거리낌이 없으니, 문장(文章)이 남음이 있을 뿐 아니라, 실로 이것은 경제(經濟)의 재사(才士)이니, 3백 년 동안을 양육(養育)하였으되 어찌 이와 같은 인재를 얻겠는가? 비록 큰 일을 맡기더라도 또한 감당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45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8책 172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인물(人物) / 정론-정론(政論)

  • [註 142]
    병자년(丙子年) : 1456 세조 2년.
  • [註 143]
    장옥(場屋) : 과거 시험장.
  • [註 144]
    봉호(蓬藁) : 가난한 집을 비유.
  • [註 145]
    삼황(三皇) : 중국 전설상에 나타난 세 임금. 곧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황제 유능씨(黃帝有能氏), 또는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를 일컫는 말.
  • [註 146]
    이제(二帝) :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
  • [註 147]
    삼후(三后) : 하(夏)나라의 우왕(禹王), 은(殷)나라와 탕왕(湯王), 주(周)나라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통틀어 일컫는 말. 문왕과 무왕은 부자(父子)이므로 하나로 침.
  • [註 148]
    소의 간식(宵衣旰食) :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정복을 입고 해가 진 후 저녁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임금이 정사(政事)에 부지런함을 비유한 말.
  • [註 149]
    석보(碩輔) : 어질고 착한 보좌의 신하.
  • [註 150]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 [註 151]
    공야장(公冶長) : 공자(孔子)의 제자.
  • [註 152]
    반좌(反坐) : 무고(巫告)하여 죄가 없는 사람을 죄에 빠뜨리는 자에 대하여 피해자가 입은 만큼의 형벌을 주는 제도.
  • [註 153]
    향(鄕) : 주(周)나라 제도에, 5가(家)를 1비(比)로 하고, 5비를 1려(閭)로 하고, 5려를 1족(族)으로 하고, 5족을 1당(黨)으로 하고, 5당을 1주(州)로 하고, 5주를 1향(鄕)으로 하였는데, 향(鄕)은 1만 2천 5백 가(家)를 1향(鄕)으로 하였음.
  • [註 154]
    8형(八刑) : 주(周)나라 시대의 여덟 가지 형벌. 곧, 불효(不孝)·불목(不睦)·불인(不婣)·불제(不弟)·불임(不任)·불휼(不恤)·조언(造言)·난민(亂民)의 여덟 가지 비행(非行)에 대한 형벌을 말함.
  • [註 155]
    용은(容隱) : 친속(親屬)이 죄인을 숨겨 주던 일. 《세종실록》 제52권에 의하면, "율문(律文)의 친속 상위 용은조(親屬相爲容隱條)에 이르기를, ‘무릇 동거하는 대공(大功:9개월 동안 상복을 입은 복제(服制)를 말함) 이상의 친속 및 외조부모·외손·처부모·사위와 손부(孫婦)·남편의 형제 및 형제의 아내가 죄가 있을 때 서로 숨겨 주는 것을 용서하고, 노비와 고공인(雇工人)이 가장(家長)을 위하여 숨겨 주는 것은 모두 논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였음.
  • [註 156]
    육아(戮莪) :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 양친을 봉양하고자 하여도 봉양할 길이 없는 효자(孝子)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것임.
  • [註 157]
    설호(挈壺) : 병의 일종(一種). 들기에 편하게 만들어져 있음.
  • [註 158]
    정사(呈辭) : 관리가 사직(辭職)·청가(請暇) 등의 원서를 관청에 제출하던 일.
  • [註 159]
    중니(仲尼) : 공자(孔子).
  • [註 160]
    백락(伯樂) : 옛날 손양(孫陽)이란 사람. 말이 좋고 나쁨을 잘 간변하였다고 함.
  • [註 161]
    사대(四大) :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 요소.
  • [註 162]
    여희(驪姬) : 주(周)나라 여융(驪戎)의 딸.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폐비(嬖妃)가 되어 아들 혜제(奚齊)·탁자(卓子)를 낳자, 태자 신생(申生)을 모살(謀殺)하고 자기 소생을 왕위에 앉혔음.
  • [註 163]
    추환(芻豢) : 육류(肉類) 음식. 아주 잘 차린 음식을 가리키는 말.
  • [註 164]
    장주(莊周) : 장자(莊子). 중국 초(楚)나라 몽(蒙)의 사람.
  • [註 165]
    허허연(栩栩然) : 기뻐하는 모양.
  • [註 166]
    거거연(籧籧然) : 스스로 깨닫는 모양.
  • [註 167]
    《대아(大雅)》 : 《시경(詩經)》의 편명.
  • [註 168]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 광명(光明).
  • [註 169]
    삼계(三界) : 삼천 세계의 약어. 이세상.
  • [註 170]
    만겁(萬劫) : 지극히 오랜 세월.
  • [註 171]
    아난(阿難) : 석가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
  • [註 172]
    세존(世尊) : 석가 세존.
  • [註 173]
    경국(經局) : 경연(經筵).
  • [註 174]
    금중(禁中) : 궁중.
  • [註 175]
    천일(天日) : 임금을 가리킴.
  • [註 176]
    추양(鄒陽) : 한(漢)나라 때의 문학자(文學者).
  • [註 177]
    가쇄(枷鎖) : 항쇄(項鎖)·족쇄(足鎖) 따위의 형구.

朴時衡獄中爲書, 令其弟訴冤, 其書曰:

時衡, 草茅賤士也。 臣所居道爲全羅, 縣爲長城, 里爲小谷。 臣早喪母, 臣父鰥居失産, 小土田奴隷, 家莫貧焉。 臣年甫踰五歲, 令學文, 七歲入小學, 一日以臣爲不能誦文, 父怒將加楚焉, 執楚而復自沮, 乃曰: "吾欲令汝, 早年成名, 喫着自裕矣。 今汝內失慈母, 而我又從而楚之, 恩其傷矣, 不忍爲也。" 仍泣下, 卽領臣尋一稍知經書僧托焉。 臣日誦百言, 習解經傳, 讀罷講餘時, 與老師談禪家事, 於臣之心, 稍稍喜焉, 不獨喜也。 惟出世爲意, 所謂久客還本住也, 所謂逃空虛者, 聞人足音, 跫然而喜也。 於是, 挾卷尋幽, 入月出山, 不見父者又五年。 臣年十五, 還家覲父, 父怒焉而不與我語, 而喜貌幷焉。 溫乎其容, 若喜其來也; 厲乎其色, 若怒其來之不早也。 向夕, 臣侍坐父之寢側, 從容乃告曰: "小子早喪母, 而家人薄, 將無以自振矣。 願脫世塵入名山, 欲成拔拯九族之緣。 今世成名, 榮孝一父, 孰若拔九族之勝因乎?" 此臣早年氣守精全, 神一志壯之時之語也。 臣父廢然乃曰: "汝之言然矣。 然吾家派系甚微, 資産頗苦。 汝之曾祖爲中郞將, 名承鳳, 祖爲甲士、司正, 名英寶, 我且以有疾, 不仕爲學生, 嗟乎! 皆不免鄕人也。 我乃慨念, 勸汝學文, 立身揚名以顯父母, 其期待之望, 不其深乎? 今汝割愛出家, 剃髮歸山, 則我之所以平日育汝長汝敎汝待汝之望缺矣。 如汝所說, 與其成未來拯族之良緣, 孰若登第立身, 親見其孝於吾目中乎?" 反復慈誨, 臣勉從父訓, 朝耕夜讀, 若經若傳若諸子之書, 靡所不閱, 粗得支流, 業勤而不精矣。 恭惟我主上殿下, 應天順人, 登極二年丙子春, 臣出遊場屋, 幸中文科第二名。 國朝以臣稍知文字, 令職兼兼藝文館, 踐歷華秩。 臣每於受祿之日, 告妻子乃曰: "我以蓬藁賤士, 特荷聖恩, 以祿代耕, 仰足以事父, 俯足以育妻子, 將何以報效聖德於萬一乎? 汝等當匪懈事我, 而我當斷斷無他, 小心奉職爾。" 臣之感荷聖德之心, 其視世祿子弟, 千有餘倍矣, 萬有餘感矣, 敢向傍人, 以發屬上之說乎? 萬萬無是理也。 況我殿下, 卽位以來, 德洽仁深, 雨暘時若, 歲稔屢登。 政之弊者革之, 典之闕者補之, 至於禮樂制度, 益之損之, 與時宜之, 民樂奠安, 治臻泰和。 若野人、若日本、若三島、若琉球國四夷, 皆來庭焉。 休祥異瑞皆駢集焉, 萬物欣覩, 運屬亨嘉, 不惟小國懷而王焉, 以至大國之待我殿下, 其禮其義, 視古隆焉, 視列國盛焉。 非我殿下功德之盛, 能然乎? 三皇當讓道矣, 二帝當讓德矣, 三后當讓功矣。 然於聖心, 不自爲治, 宵旰惕厲, 尙慮下情之壅蔽, 一民之不得其所。 或設櫃, 或執籌洞, 開言路, 去姦慝, 恤困窮, 遠聲色, 近忠良, 日與碩輔, 參天贊化。 左講大學生, 右閱羽林士, 賢不拘方而立之, 才不求備而用之, 故苟有一藝一能者, 莫不知遇於時, 展其才矣。 三代以下, 人才之出, 於斯爲盛, 臣雖不才, 欲見知於天鑑, 而一展所學者久矣。 今不幸被憸人訴, 見拘於獄, 受五次杖, 留十三朔, 千載之下, 臣與公冶長, 同其迹矣! 初, 黃白童之告言曰: "李伯弼之言曰: ‘於時衡大祥之日, 領弟勤弼時衡家, 吾向時衡, 始發語端曰: 「服闋顯仕, 兼濟我輩。」 時衡答曰: 「吾將待時而仕矣, 子勿言也。」’" 伯弼則於長城見推之日, 乃曰: "座有李丙奎者, 始發談話之端曰: ‘似乎僧, 似乎狂, 才德兼亡, 如薛晟者, 拜高官爲潭陽府使, 如吾輩將不能登顯仕矣。’ 時衡答曰: ‘有道則見, 無道則隱, 何白童伯弼二人, 或稱顯仕濟我, 或稱薛晟不才, 語端之矛盾乎?’" 如是大獄之辭, 伯弼言之, 豈不明且詳也? 白童聽之, 豈不詳且明也? 二說不同, 其情其詐, 於此可見。 且伯弼者, 於義禁府初推之日, 與白童再三面詰曰: "白童所告之言, 專非吾口出也。 吾但令告若防川、若造墓汎濫等事爾, 他無所言也。" 一次刑推之日, 則時衡有道無道之說, 指薛晟言之爾, 非屬上言之也。 於二次刑推之日, 亦以此白之, 至三次刑推之日, 乃曰: "時衡則指薛晟言之, 而吾疑屬上之言也, 故令白童告之也。" 然則白童之所言是也, 則伯弼之所言非也; 伯弼之所言是也, 則白童之所言非也。 二言非俱是也, 非俱非也。 臣之意以爲顯仕濟我之說, 則與有無道之語, 序相順也, 薛晟不才之說, 則不近也。 伯弼之言, 始焉以聞而言之, 中焉以不聞而言之。 又中焉以指薛晟而言之, 終焉不定其說而言之。 始之所言是也, 則中之所言非也; 中之所言是也, 則又中之所言非也; 又中之所言是也, 則終之所言非也。 以一舌而四變其說, 其情其詐, 又可見也。

臣之意以爲, 伯弼之所以始之以聞而言之者, 以其嫌怨, 欲害小臣, 且要功賞而言之爾, 其情是而其言非也。 中之所以不聞而言之者, 駕空立說, 飾辭爲難, 而面臣之面, 自有忸怩之心而言之爾, 其言是而其情非也。 又中焉所以以指薛晟爲言而言之者, 理屈辭遁, 不能隱其所言而言之爾, 其言非而其情亦非也。 終焉所以不定其說而言之者, 若聞若不聞遊其辭而言之, 其言巧而其情曲也。 臣豈誘伯弼, 能使之稱不聞, 稱屬進退於薛晟也耶? 臣雖贈之以千金而誘之, 伯弼已有指揮之元情, 而且知妄告之必反坐也, 肯從臣之誘說乎? 此臣所以痛哭流涕者也。 有道無道之說, 臣若丁寧言之, 伯弼若丁寧聽之, 而以忠心爲之告也, 則其肯歷三載之後, 借人之舌而爲之告也哉? 其情其詐, 又可見也。 且伯弼之爲人, 不識文字, 故每於推問之時, 則不能解見推文, 而使堂吏讀之而後, 書其名也。 不識文字, 而能解聽有無道之說者, 必有異也, 其情其詐, 又可見也。 《魯論》曰: "邦有道則見, 無道則隱也。" 而今於伯弼之言, 無邦字, 其情其詐, 又可見也。 有司官推問之意, 必以爲儒者輕薄, 固其宜也, 言之必矣。 然而伯弼者, 欲害小臣之心重且大, 而要功之心, 又從而深矣。 古今天下, 惟利是求, 惟忿是逞之人, 其爲造言, 何足怪也? 臣聞之, 官以鄕八刑, 治萬民, 而造言之刑, 居其一焉。 然則僞言造語者, 古有其人矣, 今獨豈無其人也耶? 惟有司其以臣爲隱乎, 臣無隱乎。 爾若曰: "薛晟者厚接則見, 薄接則不見。" 則薛晟者, 潭陽府之守也; 時衡丙奎, 長城縣之居氓也。 薛晟者, 非時衡丙奎之城主也; 時衡丙奎, 非薛晟之化氓也。 然則時衡丙奎, 量以辭厚薄之待, 而越數郡之境, 爲之進爲之退也耶? 況時衡丙奎之於潭陽, 無一頃之田, 一口之隷乎, 其情其詐, 又可見也。 且曰: "時衡之所以構大廳者, 爲閑遊計也。" 伯弼之造言, 可謂巧矣。 人生世間, 孰不營家以居者乎? 況臣父於平日, 欲構大廳, 鳩材立基, 未就而亡。 然則構大廳者, 父志也, 非臣志也。 《書》曰: "厥子乃不肯堂, 矧肯構? 爲人子者, 繼其父志爾。" 豈以不仕之計, 而爲之也耶? 且伯弼以其弟勤弼, 與里人金義順爲公證, 而義順則受杖六次, 而猶以不聞而言之, 設有聞焉, 庸有隱乎? 義順之於時衡, 雖父兄, 尙不能忍焉, 況非族乎? 其弟勤弼者, 亦於一次刑推之日, 乃曰: "我則因醉, 而不得聞也。" 乃於二次刑推之日, 聽兄之誘曰: "吾亦與聞焉。" 向之所以稱不聞者, 以丙奎者, 詣京時, 行至良才驛路次, 誘之曰: "汝則相爲容隱也, 宜以因醉不聞言之可也。" 又於更推之日, 乃曰: "丙奎者, 行至行院路次, 誘我曰: ‘汝則相爲容隱也, 義禁府必不聽理汝言也云爾, 餘無所言也。’" 蓋至此, 而丙奎所誘, 因醉而不聞之語, 乃自造詐言也, 故率爾而遺忘之矣。 其情其詐, 又可見也。 或稱良才道中誘之, 或稱行院途中誘之, 蓋行院良才相距幾百里也, 何前後語端之有違也耶? 初焉其兄伯弼, 則受杖一次, 而以聞其說, 而指揮白童告之爲言, 而其弟勤弼, 則受杖一次, 而以不聞言之。 然則爲勤弼者, 愛其丙奎乎? 愛其兄乎? 惡其骨肉乎? 惡其隣人乎? 安有其兄受杖曰聞之, 而其弟受杖曰不聞之理也哉? 其情其詐, 又可見也。 而況伯弼勤弼白童之言, 頗有詐端, 歷歷於推文, 而有司官, 不此之察, 一以伯弼兄弟之言爲是, 而律臣重辜, 臣之爲悶, 極天地也。 言之是非, 事之眞僞, 府官坐堂上, 郞廳立堂中, 使令集堂下, 憲府、諫院亦與聽理焉。 見之班班, 聞之昭昭, 令一一進, 而問之於殿陛之下, 而兼考推文, 則可知其情。 況臣雖不肖之子, 於亡父大祥之日, 罷朝夕奠, 離侍墳側, 永作黃泉相見之期。 然期於黃泉, 而可得相見乎, 不可得見乎? 其見其不見, 亦不可必也。 臣高聲大哭而後, 知蓼莪之所以作也, 內激號天之痛, 外迫涕泗之哀, 縱有隣人挈壺而來, 不獲已應之爾。 奚暇開襟吐懷, 與左右談話, 而論功名事乎? 況臣讀聖賢之書, 稍知父子之情者乎, 又萬萬無是理, 恭惟殿下鑑焉。 且臣性本寡言, 平時家居, 太多沈重, 故妻子嚴之, 奴僕嚴之, 隣人亦嚴之, 而不敢近也。 至於居官, 亦猶如是, 未嘗一語, 不知出於口也, 其敢大唱屬上之說, 於衆人之視聽乎? 又萬萬無是理也。 凡虽虽之徒, 若有智者, 尙不敢發亂言於父子、兄弟之間, 況其旁人乎? 況其稍審理者乎? 恭惟我殿下鑑焉。 臣自登仕以來, 一不呈辭, 夙夜奉職十年于玆矣。 然則謂臣爲有道則見者耶, 謂臣爲無道則隱者耶? 臣不是無道則隱者也耶, 則雖以臣爲言之而不爲罪也, 臣何隱乎哉? 且不惟不呈辭爾, 臣略無稱疾, 懶於朝參, 怠於仕進, 小臣爲國之心若是爾, 安有發此之言也哉?

又萬萬無是理也。 夫言者, 心之聲也。 有詣心然後形諸言, 臣自探肝肺, 未嘗有一毫他心存焉, 此言此聲, 何從出乎? 此臣之又爲痛哭流涕者也。 仲尼之言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臣若言之而隱也, 身雖容於覆載之間, 而內有不縮者存, 庸有安於心者乎, 寧死而後安也。 嗟乎! 人身未易得也, 而丈夫之身又未易得也; 丈夫之身未易得也, 而丈夫之心又未易得也; 丈夫之心未易得也, 而聖明之時, 又未易得也。 臣今得難得之身、難得之心、難得之時, 而中道夭於憸人之舌, 則臣之賦命爲何如也? 譬如逸足, 長于伯樂之廐, 不能騁其才, 而中道死於野稷之手; 大木生於匠石之園, 不售其材, 而中道摧於斲工之斧, 豈不惜哉? 伯弼之舌, 不啻慘於野稷之手, 斲工之斧矣。 雖然臣竊惟, 生非身有, 是天地之委和也; 身非身有, 是天地之委形也。 性命非臣, 是天地之委順也。 四大假合而爲形, 散而爲幻, 其合其散, 莫知其極。 合固奚足喜, 散固奚足悲, 生固奚足樂, 死固奚足憂? 有合則散爲之繼, 有生則死爲之代, 傳燈者前熖非後熖, 比形者今吾非舊吾, 雖欲執之而留, 皆自冥冥中去矣。 攬其此形, 竊然而私之者, 不可也。 臣惡乎知悅生之非惑耶? 臣惡乎知惡死之非弱, 喪而不知歸者耶? 昔之姬, 艾封人之子也, 方其歸於也, 涕泣而憂。 及其至, 與王同床, 食芻豢而後, 悔其泣也。 臣惡乎知死者, 悔其始之蘄生乎? 臣之過去業之善惡, 未能審也, 臣處今生, 內無姦僞之心, 外無暴戾之行, 而除去惡障者久矣。 惡知夫悔其今之蘄生乎? 臣聞之曰: "夢飮酒者朝而哭, 夢哭泣者朝而田獵。" 蓋方其夢也, 不知其夢也, 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 莊周栩栩然爲蝴蝶, 但認蝶爾, 惡知莊周也? 蘧蘧然覺爲莊周, 但執莊周爾, 惡知蝴蝶也? 孔子夢見周公, 惡知面周公之非眞, 也覺而不見周公, 惡知面周公之非妄也? 故有大覺而後, 知大夢也。 今臣魂交形闔, 夢不能覺, 庸詎知夢者爲妄, 而覺者爲是, 生者爲幻, 而死者爲眞乎? 列子之說曰: "有眞人然有眞知。" 臣非眞人也, 所以不能無憾於今日者也。 臣聞《大雅》之詩曰: "日監在玆。" 李白之詩曰: "上有白日當天心, 照之可以事明主。" 臣之頭上, 白日正臨, 而不能照臣肺肝, 將何以暴白此心於天地間乎? 若不能暴白, 則終不能事我明主也明矣。 此臣之所以大爲痛哭於獄中者也。 臣又聞大彗之頌曰: "佛日照三界, 衆生依末光。" 臣生聖明之代, 遇萬刦難遭之化, 不得爲之依歸, 而隕軀於非辜, 此臣之又爲痛哭流涕者也。 昔阿難暫離世尊, 幸溺婬舍, 而尙爲悲泣, 況今小臣, 永違至尊, 以惡名而斃者乎? 此臣所以泣不止悲, 而至於流涕; 不止流涕, 而至於痛哭者也。 悲夫! 人孰無死, 以亂言之名而夭之者, 不其悶乎? 人孰無舌, 造亂言之語而掉之者, 不其嚴乎? 大抵人主之觀臣, 觀其心而已。 苟有一毫欺君之心, 則雖有周公之才之美, 餘無足觀。 顧臣質不華言不文, 性莫飩焉, 才莫劣焉, 無所可觀可用者矣。 然戀主丹心, 臣何讓於古之名臣乎? 臣於日者, 昵侍經局, 幸而伏聞禁中戒忌, 則巨然在公, 至於退私, 茫然不樂者有之矣。 臣之妻子見臣之容曰: "今日有何不樂事存焉, 何其色之不愉也?" 臣默不言爾。 及其朝參, 臣立殿階之下, 仰瞻天日之光, 則私自欣忭足蹈, 四拜乃退, 臣身雖微, 愛君之心, 無異大臣矣。 且臣之才, 雖於日計似不足者, 而月計則臣又何讓於人乎? 恭惟我殿下, 試臣而後知臣也, 故臣於今日, 竊爲我殿下念之者, 信憸人之言, 而失一愚直臣也。 臣倘於今日, 與古之鄒陽, 上書於獄中, 而蒙天大德, 則臣之幸也。

上覽之, 大奇其才, 卽召致承政院, 解加鎖, 令中使饋之于賓廳。 又令永順君 傳曰: "初汝之被囚也, 伯弼之訴, 予固疑之, 但疑汝或言之而隱之敢鞫。 有道無道之言, 汝雖言之, 有何罪焉, 且汝雖實有罪, 汝才不可殺, 予欲用汝。 但汝久在獄中, 無柰嬰疾不堪任乎?" 對曰: "臣無疾且健, 可仕。" 卽命後日授職, 幷釋辭連人李丙奎。 諸宰等會思政殿, 觀時衡書, 嗟嘆不已。 高靈君 申叔舟曰: "此求生而辭不諂, 訟罪而情益見, 其間辭義反覆抑揚, 縱橫出入, 曾無滯礙。 非徒文章有餘, 實是經濟之才, 養育三百年之間, 安得如此人才乎? 雖委以大事, 亦可堪也。"


  • 【태백산사고본】 17책 45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8책 172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인물(人物)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