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원유관과 강사포 차림으로 근정전에서 하례를 받다
임금이 원유관(遠遊冠)과 강사포(絳紗袍) 차림으로 근정전에 나아가 왕세자 및 문무 군신들의 하례를 받았다. 인하여 교서를 내리기를,
"우리 태조 강헌 대왕께서 천운(天運)에 순응하여 개국한 뒤로부터 안으로 정치를 닦고 밖으로는 외적(外敵)을 물리쳐 동국(東國)을 편하게 하니, 북쪽의 야인들이 위엄에 눌리고 덕을 생각하여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새문(塞門)092) 안에 연화(煙火)093) 를 서로 바라보고, 사람과 짐승이 들에 펴졌으며, 닭이 울고 개가 짖는 놀램도 없었다. 태종 공정 대왕께서 대통을 이어 유업을 계승하고 널리 포용하고 보호하는 마음으로 그 무리를 굴복시켜서, 섬 오랑캐와 산 오랑캐를 모두 통솔하였다. 내가 부덕(不德)한 몸으로 조종의 법과 유훈(遺訓)을 받아 야인을 기르고 대접하는 데 특별히 구휼을 더하여 그 굶주림을 구제하였더니, 근자에 파저강 등지에 흩어져 사는 이만주 등이 중국의 반적(叛賊) 양목답올(楊木答兀)과 결탁하여 요동·개원 지방의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노비로 삼았는데, 고생을 이기지 못하여 본국으로 도망해 오는 자가 적지 않으므로, 내가 대국을 섬기는 정성으로 모두 중국에 보냈더니, 어찌 야인들이 원망과 분함을 품을 것을 뜻하였으리오, 우리의 경계를 엿본 지 여러 해 동안이며, 선덕 7넌 11월 사이에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강계와 여연 구자(口子)에 침입하여 군민(軍民)을 살해하고 인축과 재산을 겁탈하였으니, 은혜를 저버리고 지극히 흉악한 짓을 범한 죄는 베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도리어 거짓으로 이르기를 ‘홀라온이 멀리서 와서 도둑질하였으므로, 약탈해 가는 인구를 빼앗아서 돌려보내고 짐승을 머물러 두었다. ’고 하여, 중국 조정을 속였다. 이미 적의 정상을 자세히 기록하여 궐하(闕下)에 치주(馳奏)하고, 금년 4월에 장수에게 명하여 그 죄를 토벌하게 하고, 길을 나누어 함께 나아가 적의 소굴을 찔렀으나, 오히려 싸움을 그치려고 하는 생각과 죽이지 아니하는 인덕(仁德)을 품고 깊이 제장들을 경계하여, 저들이 만일 손을 들고 항복하면 곧 받아들이고 특별히 위엄을 보여서 뉘우치고 두려움을 알게 하며, 보복 행동으로써 무고한 인명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더니, 저들은 악독한 성품을 고치지 아니하고 짐승 같은 마음이 여전하여 벌[蜂]과 개미처럼 모여서 감히 항거하므로, 우리들은 잠깐 토벌하였는데, 이르는 곳마다 승리하여 목을 베고 생포한 것이 5백여 명이고, 죽음을 벗어난 무리들이 모두 도망하여 적의 무리가 평정되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군사는 비록 어지러움을 구제하고 사나움을 토벌하는 공기(公器)이나, 겨울과 여름은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무리를 움직이는 시기가 아니다. 그러나 주 선왕(周宣王)의 6월 정벌(征伐)은, 험윤(獫狁)의 사나움이 치열했기 때문에 일이 매우 위급하였으므로, 누구든지 이를 폭거라고 하지 아니하였다. 무지한 야인들은 지방이 험한 것을 믿고 천리(天理)를 거스려 우리 변경 백성을 죽였으니, 저들은 화(禍)를 스스로 취한 것이다. 내가 어찌 노여워하지 않으랴. 출병(出兵)은 명분(名分)이 있어야 하고, 군사는 바르고 장해야 한다. 조종의 영령(英靈)이 하늘에 계심을 힘입어, 사졸들이 용감하게 길을 떠나 적을 무찌른 공을 아뢰고, 전군(全軍)이 무사히 돌아왔다. 아아, 적의 소굴을 소탕하였으니 추악한 무리가 모두 사라질 때이며, 국경을 숙청하였으니 한번 움직여 영구한 평화를 거두었도다. 중외에 포고하여 모두 다 듣고 알게 하노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60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7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외교-야(野) / 역사-고사(故事)
○丁卯/上以遠遊冠絳紗袍, 御勤政殿, 受王世子及文武群臣賀。 仍下敎曰:
自我太祖康獻大王應運開國, 內脩外攘, 撫寧東土, 北邊野人畏威懷德, 搖尾乞憐。 由是塞門之內, 烟火相望, 人畜布野, 無雞鳴狗吠之驚。 太宗恭定大王繼統遵業, 以幷容徧覆, 擾服異類, 島夷山戎, 罔不率俾。 予以否德, 仰承祖宗謨訓, 畜待野人, 特加優恤, 濟其飢乏。 近有婆猪江等處散住李滿住等, 交結上國叛賊楊木答兀, 其所係累遼東、開元地面人物以爲奴婢者, 不勝荼毒, 逃來本國, 比比有之。 予以事大之誠, 悉遣上國, 豈期野人輒生怨憤? 窺伺我疆, 積有年歲。 至宣德七年十一月間, 乘虛突入江界、閭延口子, 殺害軍民, 刦掠人畜財産, 其背施負恩, 窮兇極惡, 罪不容誅。 顧乃詐道"忽剌溫遠來作賊, 已反奪下搶去人口頭匹留住。", 欺罔朝廷, 已具賊情, 馳奏闕下。 今年四月, 命將討罪, 分道竝進, 擣賊窟穴, 尙軫止戈之念, 永懷不殺之仁, 深戒諸將, 彼如束手, 卽使納降, 特以示威, 使知悔懼, 毋庸報復, 戮及無辜。 彼猰性不移, 獸心自若, 蜂屯蟻聚, 敢行抗拒, 我乃薄伐, 所至克捷, 斬級生擒, 摠五百餘口。 其脫死遊魂, 悉皆奔潰, 賊徒以平。 予惟戎兵, 雖救亂討暴之器, 冬夏非勞民動衆之時, 然周宣六月之征, 爲玁狁孔熾之故, 事迫於危急, 人不以爲暴。 蠢爾犬戎, 憑恃險阻, 違天逆理, 噬我邊氓, 禍實彼之自求, 怒豈予之得已! 兵出有名, 師直爲壯。 賴祖宗威靈之如在, 致士卒勇銳而啓行, 敵愾奏功, 全軍入境。 於戲! 窮廬蕩盡, 正群醜畢熸之秋, 疆場肅淸, 收一動久安之効。 布告中外, 咸使聞知。
- 【태백산사고본】 19책 60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7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외교-야(野)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