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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 7월 14일 丁亥 5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뇌물을 준 자와 받은 자는 모두 죄주도록 사헌부에 명령를 내리다

사헌부에서 계하기를,

"삼가 《원육전(元六典)》을 안찰(按察)하건대, 한 조목에 사대부(士大夫)가 송사(訟事)를 듣는 관리라든가 전곡(錢穀)을 출납하는 유사에게 사사로이 편지를 왕래하여, 옳고 그른 것을 뒤바꾸고, 관가의 물건을 축내고 훔쳐내는 등 그 폐단이 적지 아니하니, 지금부터는 일절 모두 엄금하고, 외관(外官)이 주고 보내는 것도 역시 모두 엄금하되, 법을 어기고 주고받는 자는 모두 청렴하지 아니한 죄로 다스리게 하소서. 이제 전조의 습관이 아직도 다 개혁되지 아니하여, 경외(京外)의 관리들이 성문(成文)된 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편지를 사사로이 왕래하여 관가의 소유물을 공공연하게 보내 주니 매우 미편한 일입니다. 지금부터는 일절 《육전》에 의하여 엄금하되, 금하는 것을 어기고 준 자나 받은 자를 모두 다 장물을 계산하여 율에 따라 죄를 판정하여, 선비의 풍습을 신칙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처음에 임금이 대신이나 조정에서 벼슬하는 선비 중에 뇌물을 받는 자가 많으므로, 엄하게 금지하는 법을 세우고자 하여 윤회(尹淮)를 시켜서 교지를 짓게 하고, 영의정 유정현성산 부원군 이직(李稷)·좌의정 이원(李原)·대제학 변계량·이조 판서 허조·예조 참판 이명덕을 부르고, 지신사 곽존중을 시켜서 전교(傳敎)하기를,

"전조(前朝)의 말년에 뇌물을 공공연하게 왕래하더니, 구습(舊習)이 아직도 남아서 경외(京外)의 관리들이 관가의 물건을 공공연하게 뇌물로 주고도 태연하게 여기면서 조금도 괴이쩍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 중에 주는 것을 받으려고 하지 아니하는 자는 도리어 기롱과 조소를 받으니, 이로 말미암아 장죄(贓罪)를 범하는 관리들이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니, 내가 매우 민망하게 여기는 바이다. 법률 조문을 보면, 다만 관가의 소유물을 남에게 준 죄만 있고, 보내 준 것을 받은 죄에 대한 율이 없으므로, 이제 법을 세워, 준 자나 받은 자에게 다 같이 죄를 주고자 하니 특별히 교지를 내려야 할 것인가, 유사(攸司)를 시켜 아뢰게 하여 법을 세울 것인가."

하니, 정현 등이 계하기를,

"이와 같은 일을 아뢰어서 법을 세우는 것이 유사의 직책입니다."

하니, 이원이 아뢰기를,

"이제 헌부에서 신더러 남이 준 뇌물을 받았다고 하므로, 신은 이 일에 대해서 감히 가부를 말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정현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나같은 늙은 자가 음식이나 향포(香脯)를 받는 것이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겠소."

하고, 계량허조도 또한 말하기를,

"먹는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하필 모두 금할 것이 있겠소."

하니, 존중이 들어가 아뢰고 나와서 에게 이르기를,

"공의 말씀도 모두 다 아뢰어서 이미 다 아셨습니다."

하니, 이원이 감사(感謝)를 드리고 나갔다. 그 때에 조진(趙瑨)·왕효건(王孝乾)·최세온(崔世溫)·이지실(李之實)이 장물을 범한 죄로 탄핵당하였는데, 대신과 조정의 관원들 중에 뇌물을 받아 연루(連累)된 자가 매우 많았는데, 좌의정 이원세온에게 표피(豹皮)와 지실에게 표지(表紙)를 받았으므로 역시 헌부의 탄핵을 받고 있는 중이라, 이 의논을 올릴 때에 자진하여 말해서 풀게 한 것이었다. 이에 헌부에 명령을 내려 뇌물을 준 자와 받은 자는 모두 죄주도록 엄중하게 고시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14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왕실-국왕(國王)

○司憲府啓: "謹按, 《元六典》一款, 士大夫於聽訟之官、出納錢穀之司, 私通書狀, 顚倒是非, 耗竊官物, 其弊不小, 一皆痛禁, 外官贈遺, 亦皆痛禁, 違法授受者, 皆不廉論。 今前朝之習, 猶未盡革, 京外官吏不遵成憲, 私通書狀, 將官物公然贈送, 甚爲未便。 乞自今一依《六典》痛禁, 違禁與者受者, 竝皆計贓, 按律科斷, 以勵士風。"

從之。 初, 上以大臣、朝士多有受賂者, 欲嚴立禁防, 令尹淮製敎, 召領議政柳廷顯星山府院君 李稷、左議政李原、大提學卞季良、吏曹判書許稠、禮曹參判李明德, 使知申事郭存中傳敎曰: "前朝之季, 賄賂公行, 舊習猶存, 京外官吏以官物公然贈賄, 恬不爲怪。 其中有不肯受贈者, 則反遭譏誚。 由是, 贓吏相繼得罪, 予甚憫焉。 觀律文內, 但有以官物與人之罪, 無受人贈遺之律, 故今欲立法, 使受者與與者同罪, 特下敎旨乎? 令攸司啓聞立法乎?" 廷顯等啓曰: "如此等事, 啓聞立法, 攸司職也。" 曰: "今憲府以臣爲受人所贈, 故臣於此事, 不敢可否。" 廷顯因戲曰: "如我老僕, 於受膳餘香脯, 何害?" 季良亦曰: "食物贈受, 似乎無妨, 何必幷禁?" 存中入啓, 出謂曰: "幷公言啓達已悉。" 謝而出。 時, 趙瑨王孝乾崔世溫李之實犯贓見劾, 大臣及朝士受賂連累者頗多。 左議政李原世溫豹皮、之實表紙, 亦被憲劾, 因擬議, 自解以謝之。 於是, 命下憲府, 申嚴贈賄與受俱罪之法。


  •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14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