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조말생에게 세자의 불의를 말하다
이보다 먼저 임금이 조말생(趙末生)에게 비밀히 이르기를,
"세자(世子)가 지난 정유년에 전 중추(中樞) 곽선(郭璇)의 첩으로 어리(於里)라고 하는 자를 빼앗아 전(殿) 안에 들이었다가 일이 발각되어 쫓겨났었다. 어느날 청평군 궁주(淸平君宮主)163) ·평양군 궁주(平壤君宮主)164) 등이 와서 중궁(中宮)을 보는데, 내가 마침 이르니, 평양군 궁주가 말하기를, ‘세자전(世子殿)에서 유모(乳母)를 구하여 부득이 이를 보내었습니다.’고 하므로, 중궁(中宮)이 놀라서 말하기를, ‘이게 어떤 유아(乳兒)이냐?’고 하니, 궁주가 말하기를, ‘어리(於里)의 소산(所産)입니다.’고 하였다. 그 까닭을 들으니, 김한로(金漢老)의 처가 김한로의 말을 따라서 종비(從婢)라 칭탁하고 데리고 들어가 바쳤다는 것이다."
하고, 이어서 조말생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세자가 어려서 체모(體貌)가 장대하여 장차 학문(學問)이 이루어지면 종묘 사직(宗廟社稷)을 부탁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항상 가르치고 깨우치는 방도에 부지런히 하였는데, 이제 이미 수염(鬚髥)이 방불(髣髴)하며, 또한 이미 자식이 있으나 학문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황음(荒淫)하기가 날로 심하다. 역대의 인주(人主) 가운데 태자(太子)에게 사의(私意)를 가지고 이를 바꾼 자가 있었고, 참언(讒言)을 써서 이를 폐(廢)한 자도 또한 있었다. 내가 일찍이 이를 거울삼아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나, 세자의 행동이 이와 같음에 이르렀으니 어찌하겠는가? 어찌하겠는가? 태조(太祖)게서 관인(寬仁)한 큰 그릇으로서 개국(開國)한 지 오래되지 아니하여 그 손자에 이르러 이미 이와 같은 자가 있으니, 장차 어찌하겠는가?"
하고, 인하여 비 오듯이 줄줄 눈물을 흘리고,
"죽은 자식 성녕(誠寧)은 우리 가문(家門)에서 얼굴을 바꾼 아이였다. 매양 중국의 사신에게 술을 청(請)할 때에는 중국 사신 황엄(黃儼) 등은 주선(周旋)하는 사이에 주의하여 보고 심히 그를 사랑하였었다. 장차 성취(成就)시켜서 노경(老境)을 위로하려 생각하였는데, 불행하게 단명(短命)하였으니 무엇으로써 마음을 잡겠느냐?"
하니, 조말생이 대답하기를,
"세자가 학문(學問)을 일삼지 아니하고 소인(小人)을 가까이 하니, 대소 신료(大小臣僚)가 실망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이제 또 이와 같으니, 진실로 작은 연고가 아닙니다. 마땅히 김한로를 죄 주어서 후래(後來)를 경계하소서."
하므로, 임금이 말하였다.
"세자가 불의(不義)한 연고 때문에 죄를 받은 자가 하나둘이 아니니, 내가 실로 부끄럽다. 우선 오로지 이를 가르쳐서 스스로 새 사람 되기를 기다리고, 이 일을 마땅히 누설하지 말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0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先是, 上密謂趙末生曰: "世子去丁酉年, 奪前中樞郭璇之妾名於里者, 入殿內, 事覺見黜。 一日, 淸平君宮主、平壤君宮主等來見中宮, 予適至, 平壤君宮主曰: ‘世子殿求乳母, 不得已送之。’ 中宮驚曰: ‘是何乳兒?’ 宮主曰: ‘於里之産。’ 聞其所以, 是漢老之妻, 從漢老之言, 託以從婢, 率入納之也。" 仍敎末生曰: "世子自幼體壯, 謂將學問有成, 可託宗社, 常勤敎誨之方。 今已鬚髥髣髴, 亦旣有子, 不好學問, 荒淫日甚。 歷代人主之於太子, 以私意易之者有之; 用讒言廢之者亦有之, 予嘗鑑此, 誓不爲之。 然世子之行, 至於如此, 奈何奈何? 以太祖寬仁之大器, 開國未久, 至其孫已有如此, 其將奈何?" 因潛然下淚曰: "亡息誠寧, 予家門洗面子也。 每於天使請酒之時, 天使黃儼等屬視周旋之間, 甚愛之, 謂將成就, 以慰老境, 不幸短命, 何以爲心?" 末生對曰: "世子不事學問, 押〔狎〕 昵小人, 大小臣僚罔不缺望, 今又如此, 誠非細故。 宜罪漢老, 以戒後來。" 上曰: "以世子不義之故, 被罪者非一, 予實有慙。 姑惟敎之, 以待自新, 此事宜勿宣洩。"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0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