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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33권, 태종 17년 6월 26일 庚戌 3번째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진헌할 별마 30필을 준비시키다. 나례의 채색에 대해 무익한 비용을 줄이도록 명하다

명하여 진헌(進獻)할 별마(別馬) 30필을 갖추게 하였다. 임금이 병조 참판 이춘생(李春生)에게 이르기를,

"별마(別馬)를 각도에서 추쇄(推刷)한다니 그 계책이 늦었다. 탄신(誕晨)·정조(正朝) 때에 있어 미리 진헌할 말[馬]을 얻었다 해도 쓸 만한 것이 없는데, 하물며 공물(貢物)에 충당할 천구마(天廐馬)573) 를 어찌 쉽게 얻겠는가? 내가 이미 내구(內廐)의 양마(良馬) 20여 필을 가려 놓았으니, 병조에서 늦었다."

하니, 이춘생이 대답하기를,

"날마다 2품 이상에게 말을 독납(督納)합니다만, 모두 ‘없다.’고 대답하고, 겨우 납부한 말이라 해도 혹은 늙고 혹은 수척합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였다.

"재상(宰相)에게 말이 있다면 비록 값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찌 바치지 아니할리가 있겠는가? 하물며 말 1필의 값을 2필의 값으로 쳐주는데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것은 실지로 없는 것이다. 황제가 비록 상사(賞賜)도 없이 처녀(處女)를 구한다 하더라도 내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신[使介]이 있을 때마다 곧 하사(下賜)함이 있었고, 또 지금 양전(兩殿)에 모두 상사가 있었으며, 또 권씨(權氏)에 대하여는 ‘이비(二妃)’라 일컬어 또한 상사(賞賜)가 있었다. 황제의 권고(眷顧)가 이와 같으니 감히 성심으로 사대(事大)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금년에는 사신[使介]이 없었으니 모름지기 양마(良馬) 30필을 바쳐야겠다. 중국에서는 말의 노소(老少)를 가리지 않고 다만 장실(壯實)한 것을 구할 뿐이니, 병조에서 즉시 널리 구하여 보라."

여양군(礪良君) 송거신(宋居信)이,

"신에게 말 1필이 있으나 실은 숨기고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상교(上敎)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신은 마땅히 바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태조(太祖) 때에 고황제(高皇帝)정도전(鄭道傳) 등의 표사(表辭)574) 가 공순하지 못한 데 노하여 조칙을 내려 ‘장자(長子)·차자(次子)중 1인을 부경(赴京)하게 하라.’고 하였다. 나는 장자도 차자도 아니었지만, 태조께서 나를 보내었다. 그 때에는 양마(良馬)가 많지 아니하여 불용마(不用馬)575) 20필만을 끌고 갔는데, 요동(遼東)들에 이르자 좋은 말은 죽어 버리고, 천정(天庭)에 이르러서는 심히 피로해져서 부행(副行) 남재(南在)조박(趙璞) 등이 우려하였다. 그러나 황제가 너그럽게 이를 받아들이고, 말하기를, ‘이런 험난한 때에 조선왕(朝鮮王)이 어찌 친자식을 보냈겠는가? 실로 이것은 허사(虛事)이다’하고, 몰래 사람을 보내어 나의 동정을 엿보게 한 뒤에 친자식임을 알고, 중조(中朝)576) 에서도 태조께서 사대(事大)하는 정성에 모두 감복하였다."

공조 판서 김여지(金汝知)가 아뢰기를,

"사신을 영접할 때, 나례(儺禮)577) 에 드는 주홍(朱紅) 등의 물건은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옛날에 대신(大臣)들이 까다롭게 살핀 것도 불가하였는데, 하물며 임금이야 말해 무엇하는가? 이 같은 일은 내 실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전에 나례(儺禮)에 소용되는 채색을 보았더니, 모두 금은(金銀)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심히 무익한 일이다. 더구나 금은은 우리 나라의 소산(所産)도 아니니, 모름지기 긴요하지 아니한 비용은 없애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6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76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풍속-풍속(風俗)

  • [註 573]
    천구마(天廐馬) : 중국의 황제에게 진헌(進獻)할 말.
  • [註 574]
    표사(表辭) : 표문(表文)의 글 내용.
  • [註 575]
    불용마(不用馬) : 쓰지 못할 말.
  • [註 576]
    중조(中朝) : 중국 조정.
  • [註 577]
    나례(儺禮) : 고려 정종(靖宗) 이후 음력 섣달 그믐 밤에 민가와 궁중에서 마귀와 사신(邪神)을 쫓기 위하여 베풀던 의식. 원래 중국의 주(周)나라 때부터 유래된 풍습으로, 새해의 악귀를 쫓을 목적으로 행해졌는데, 차츰 중국 칙사(勅使)의 영접, 왕의 행행(行幸), 인산(因山) 때에도 앞길의 잡귀를 물리치는 의미로 행해졌음.

○命備進獻別馬三十匹。 上謂兵曹參判李春生曰: "別馬各道推刷, 其計晩矣。 於誕晨、正朝, 預得所獻之馬, 無有可用, 況充貢天廐, 豈易得乎? 予旣擇內廐良馬二十餘匹, 兵曹緩矣。" 春生對曰: "日督二品以上納馬, 皆答以無有, 纔所納馬, 或老或瘠。" 上曰: "宰相有馬則雖不給價, 安有不納之理? 況一馬之價, 直二馬乎? 是實無也。 皇帝雖無賞賜而求處女, 予何不從? 然每有使介, 輒有所賜。 又今兩殿皆有賞賜, 又於權氏稱二妃, 亦有賞賜。 帝眷若此, 敢不誠心事大? 且今年無使介, 須以良馬三十匹獻焉。 中國不擇馬之老少, 但以壯實而已, 兵曹須卽廣求。" 礪良君 宋居信曰: "臣有一馬, 實匿而不現。 今上敎至此, 臣當納之。" 上曰: "在太祖時, 高皇帝鄭道傳等表辭不恭, 勑送長子、次子中一人赴京, 予非長且次, 太祖遣予。 其時良馬不多, 唯不用馬二十匹帶去, 至野善馬死焉。 及至天庭, 甚爲羸憊, 副行南在趙璞等憂慮焉。 然帝優納之以謂: ‘如此險亂時, 朝鮮王豈送親子? 實是虛事。’ 潛遣人伺予動止, 然後乃知親子, 中朝皆伏太祖事大之誠。" 工曹判書金汝知啓使臣迎接時, 儺禮所入朱紅等物, 上曰: "古者大臣苛察, 猶爲不可, 況人君乎? 如此之事, 予實不知, 然昔者見儺禮所用彩色, 皆用金銀, 是甚無益也。 況金銀非我國所産, 須除不緊之費。"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6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76면
  • 【분류】
    교통-육운(陸運) /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