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추사 공부의 졸기
하천추사(賀千秋使) 인녕부 윤(仁寧府尹) 공부(孔俯)가 경사(京師)에서 졸(卒)하였다. 서장관(書狀官) 전 예조 정랑(禮曹正郞) 박조(朴藻)가 돌아와서 아뢰기를,
"7월 29일에 공부(孔俯)가 남경(南京) 회동관(會同館)413) 에서 병들어 죽었는데, 황태자(皇太子)가 치제(致祭)하기를, ‘조회를 받는 날에 예의(禮儀)가 엄숙하고 공손하였다. 여차(旅次)에서 죽었으니, 불쌍하도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아뢰어 영지(令旨)를 받들어서 뼈를 불살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하니, 임금이 불쌍히 여기어 쌀·콩 50석과 종이 1백 권을 부의(賻儀)하고 중사(中使)를 보내어 사제(賜祭)하고, 인하여 명하기를,
"이제부터 북경(北京)에 가서 죽은 자는, 정2품은 60석을 부의하고 종2품은 50석을 부의하여 예(例)를 삼으라."
하였다. 공부(孔俯)는 감음현(感陰縣) 사람인데, 자(字)는 백공(伯共)이요, 자호(自號)는 어촌(漁村)이다. 시(詩)를 잘하고 더욱 초서(草書)와 예서(隷書)에 공교하여 그 필적(筆蹟)을 얻는 자는 보화(寶貨)로 여기었다. 홍무(洪武) 병진년(丙辰年) 과거에 합격하여 차자방 필도치(箚子房必闍赤)414) 가 된 지 9년이고, 문서 응봉사(文書應奉司) 별감 제조(別監提調)가 된 지 30여 년이었다.
일찍이 전의부령(典儀副令)이 되어 옛 재상 이인임(李仁任)의 시호(諡號)를 황목(荒繆)이라고 정하니, 그 종당(宗黨)이 이[齒]를 갈았으나, 공부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인년(戊寅年)에 고황제(高皇帝)가 우리 나라의 사명(辭命)에 잘못이 있는 것에 노하여 글을 지은 사람인 정도전(鄭道傳)을 불렀으나, 정도전이 병을 칭탁하고 가지 않으니, 황제는 공부가 글씨를 썼다고 하여 불렀다. 공부가 아무렇지 않은 듯 길에 올라서 휘파람을 불고 시를 읊기를 태연자약하게 하여 사생(死生)을 개의하지 않았다. 마침 사(赦)함을 받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공부가 성품이 너그럽고 솔직하고 우스갯소리[詼諧]를 좋아하였으나, 청렴하고 조용하고 욕심이 적어 물건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없어 세상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오직 도가(道家)를 몹시 좋아하여서 병이 심하자, 도사(道士)를 청하여 초제(醮祭)를 베풀었는데, 명등(命燈)415) 이 꺼지매, 도사가 탄식하기를, ‘병이 낫지 못하겠다.’ 하였다. 뼈를 태우자 갑자기 풍우(風雨)가 급히 이르니, 사람들이 모두 이상히 여기었다. 아들은 공달(孔達)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35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도교(道敎) / 외교-명(明)
- [註 413]회동관(會同館) : 중국 명(明)나라 시대에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사(館舍). 원(元)나라 시대 1272년에 설치되어, 명나라 시대에는 우역(郵驛)의 일도 아울러 맡아 보았음.
- [註 414]
차자방 필도치(箚子房必闍赤) : 정방(政房)의 지인(知印)을 말함. 몽고 때에 문선(文選)·무선(武選)의 전주(銓注)를 맡은 정방(政房)을 차자방(箚子房)이라 하였고, 이 일을 맡아 보던 문사(文士)를 필도치(必闍赤)라 하였음.- [註 415]
명등(命燈) : 초제(醮祭)를 지낼 때 병자(病者)의 운명을 가늠하기 위하여 켜놓는 등(燈).○賀千秋使仁寧府尹孔俯卒于京師。 書狀官前禮曹正郞朴藻還啓曰: "七月二十九日俯病卒于南京 會同館, 皇太子致祭云: ‘受朝之日, 禮儀肅恭, 死於旅次, 哀哉!’ 臣等啓奉令旨, 燒骨而還。" 上惻然, 賻米豆五十石、紙一百卷, 遣中使賜祭。 仍命自今赴京身沒者, 正二品賻六十石, 從二品五十石以爲例。
〔○〕 俯 (減陰縣)〔感陰縣〕 人, 字伯共, 自號漁村。 善爲詩, 尤工草隷, 得其筆蹟者以爲寶。 中洪武丙辰科, 爲箚子房必闍赤者九年, 文書應奉司別監、提調者三十餘年。 嘗任典儀副令, 諡故相李仁任爲荒繆, 其宗黨切齒, 俯不爲動。 歲戊寅, 高皇帝怒我國辭命有失, 徵撰文人鄭道傳, 道傳托疾不行。 帝謂俯寫字徵之, 俯怡然就道, 嘯詠自若, 不以死生介懷, 會遇赦得還。 俯性坦率, 好恢諧, 然廉靜寡欲, 與物無競, 爲世所重, 惟酷好道家。 及病, 請道士設醮而命燈滅, 道士嘆曰: "不起矣。" 旣燒骨, 忽風雨驟至, 人皆異之。 子達。
- 【태백산사고본】 14책 3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35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도교(道敎) / 외교-명(明)
- [註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