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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 8월 21일 辛酉 4번째기사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각품에 따른 과전을 예전대로 지급하게 하고 경외의 용관을 도태시키다

명하여 각 품(品)의 과전(科田)을 옛날 그대로 하고 경외(京外)의 용관(冗官)255) 을 도태(淘汰)하였다. 임금이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대간(臺諫) 등을 광연루(廣延樓) 아래에 인견(引見)하고 말하였다.

"내가 조운(漕運)하다가 사람이 상(傷)하는 것을 염려하여 각 품(品)의 과전(科田)을 하도(下道)에 옮기고자 하였으나, 어젯밤에 생각하니, 태조(太祖)의 성헌(成憲)을 다시 고치는 것은 심히 미편(未便)하다. 또 생각하니, 전지(田地)는 한(限)이 있는데 새로 와서 종사(從仕)하는 자는 끝이 없으므로 진실로 균등하게 지급할 수 없는 것이다."

하윤(河崙)이 대답하기를,

"과전(科田)을 절급(折給)하는 것을 중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장관(主掌官)이 남의 칭찬과 저주를 싫어하여 아뢰지 않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이제 적국(敵國)의 외환(外患)이 없으니, 갑사(甲士)의 수가 비록 적더라도 가하다. 마땅히 감하여 1천 명으로 만들고 1년마다 5백 명씩 녹(祿)을 받고 시위(侍衛)하되, 번(番)을 나누어 교대하는 것이 편한데, 어찌 반드시 3천 명을 두겠느냐? 그 하번 갑사(下番甲士)와 직임을 감당할 만한 자를 제외하고 뽑아서 별패(別牌) 3천명을 만들어 윤번(輪番)으로 시위(侍衛)하도록 하라. 또 고제(古制)를 상고하면, 경(卿)·대부(大夫)의 채전(采田)256) 은 모두 기내(畿內)에서 주었고 기외(畿外)에는 없었던 것이 고제(古制)였다. 내가 또 경외(京外)의 용관(冗官)257) 을 도태시켜서 늠록(廩祿)을 감하고자 하니, 경 등이 상량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이에 자문(紫門)258) 에 모여서 정부에서 상량 의논하여 아뢰었다.

"삼군(三軍) 동지총제(同知摠制) 각각 1명, 공안부 윤(恭安府尹)·인녕부 윤(仁寧府尹)·한성부 윤(漢城府尹) 각각 1명을 없애고, 의용 순금사(義勇巡禁司)를 고쳐서 의금부(義禁府)로 하고 녹관(祿官)을 파(罷)하여 구전관(口傳官)259) 을 두되, 당상(堂上)을 제조(提調)라 칭하고 진무(鎭撫) 2명은 정3품으로, 부진무(副鎭撫) 2명은 종3품으로, 지사(知事) 2명은 4품으로, 도사(都事) 4명은 5, 6품으로 하며, 충순 호위사(忠順扈衛司)를 고쳐서 충호위(忠扈衛)로 하여 녹관(祿官)을 파하고 구전관(口傳官)을 두어 진무(鎭撫) 2명은 3품으로, 부진무(副鎭撫) 2명은 4품으로 하고, 5품 이하 녹관(祿官)을 그대로 두며, 십사(十司)260) 의 호군(護軍) 각각 1명을 없애고, 갑사(甲士) 2천 명을 없애어 별패(別牌)라 칭하여 번상(番上)하여 시위(侍衛)하고, 정예(精銳)한 자 1천 명을 뽑아서 갑사(甲士)로 하여 2번(番)으로 하소서.

용구(龍駒)처인(處仁)을 병합하여 용인(龍仁)으로 하고, 금천(衿川)·과천(果川)을 병합하여 금과(衿果)로 하고, 교하(交河)원평(原平)에 붙이고, 김포(金浦)·양천(陽川)을 병합하여 김양(金陽)으로 하고, 연천(漣川)·마전(麻田)을 병합하여 마련(麻漣)으로 하고, 장단(長湍)·임강(臨江)을 병합하여 장림(長臨)으로 하고, 광주(廣州) 임내(任內)인 주계(朱溪)·고안(高安)양지(陽智)에 붙이고, 삭녕(朔寧)·안협(安峽)을 병합하여 안삭(安朔)으로 하고, 황간(黃澗)·청산(靑山)을 병합하여 황청(黃靑)으로 하고, 연기(燕岐)·전의(全義)를 병합하여 전기(全岐)로 하고, 온수(溫水)·신창(新昌)을 병합하여 온창(溫昌)으로 하고, 이산(尼山)·석성(石城)을 병합하여 이성(尼城)으로 하고, 계림(雞林) 임내(任內)인 해안(解顔)대구(大丘)에 붙이고, 합천(陜川) 임내(任內)인 가수(加守)삼기(三岐)에 붙이고, 거제(巨濟)·거창(居昌)을 병합하여 제창(濟昌)으로 하고, 하동(河東)·남해(南海)를 병합하여 하남(河南)으로 하고, 부령(扶寧)·보안(保安)을 병합하여 부안(扶安)으로 하고, 풍천(豐川)·은율(殷栗)을 병합하여 풍은(豐殷)으로 하고, 장연(長淵)·영강(永康)을 병합하여 연강(淵康)으로 하고, 덕천(德川)·맹산(孟山)을 병합하여 덕맹(德孟)으로 하고, 자산(慈山)·은산(殷山)을 병합하여 자은(慈殷)으로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르고, 또 명하여 검교(檢校)가 녹(祿)을 받는 것은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서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이르기까지 10명으로 수를 정하고, 환관 검교(宦官檢校) 20명, 상의원(尙衣院) 사직(司直) 2명을 없애고, 각도 도절제사도(各道都節制使道)261) ·수군 도절제사도(水軍都節制使道)에 수령관(首領官)을 없애고 삼군 녹사(三軍錄事)로 차임(差任)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2면
  • 【분류】
    농업-전제(田制)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통-수운(水運)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재정-국용(國用)

  • [註 255]
    용관(冗官) : 쓸데없는 관원(官員).
  • [註 256]
    채전(采田) : 영지(領地).
  • [註 257]
    용관(冗官) : 쓸데없는 관원.
  • [註 258]
    자문(紫門) : 궁전(宮殿)을 둘러싼 자성(紫城)에 설치된 문(門). 대개 신하들끼리 나라의 일을 의논할 때 이곳에 모였음. 또 자문 안에는 선공감(繕工監)·군기감(軍器監)이 있었으므로, 뒤에 자문감(紫門監)은 여기에서 나온 말임.
  • [註 259]
    구전관(口傳官) : 《세종실록(世宗實錄)》 제 1권을 보면, "사람을 등용할 적에 해당 전조(銓曹)에서 한 번씩 임명할 때마다 쓸만한 자 3인을 써서 아뢰면 어필(御筆)로써 쓸 만한 사람의 이름 위에 점(點)을 찍는 것을 수점(受點)이라 하는데, 2품 이상을 임명할 때에 이 방법을 쓴다. 제거(提擧)·별좌(別坐)·경차관(敬差官)과 같은 유(類)는 비목(批目)을 거치지 않고 임용하는 것을 구전(口傳)이라 하는데, 3품 이하를 차임(差任)할 때 이 방법을 쓴다."고 하였음.
  • [註 260]
    십사(十司) : 의흥사(義興司)·충좌사(忠佐司)·웅무사(雄武司)·신무사(神武司)와 용양사(龍驤司)·용기사(龍騎司)·용무사(龍武司)와 호분사(虎賁司)·호익사(虎翼司)·호용사(虎勇司).
  • [註 261]
    각도 도절제사도(各道都節制使道) : 각도의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있는 군영(軍營)을 말함.

○命各品科田仍舊, 汰京外冗官。 上引見議政府、六曹、臺諫等于廣延樓下曰: "予慮漕運傷人, 欲移給各品科田於下道。 昨夜思之, 更改太祖成憲, 深爲未便。 又思田地有限, 而新來從仕者無窮, 誠不可均給也。" 河崙對曰: "科田折給, 宜其止矣。 主掌官惡人祝咀, 未之啓耳。" 上曰: "今無敵國外患, 甲士之數雖少可也。 宜減作一千名, 每一年五百名受祿侍衛, 分番更代爲便, 何必三千? 其除下甲士及可當任者, 選作別牌三千名, 令輪番侍衛。 又考古制, 卿大夫采田, 皆給於畿內, 畿外則無古制也。 予又欲汰京外冗官, 以減廩祿, 卿等擬議以聞。" 乃會于紫門, 政府擬議以聞: "除三軍同知摠制各一, 恭安、仁寧、漢城府尹各一。 改義勇巡禁司爲義禁府, 罷祿官, 置口傳官, 堂上稱提調。 鎭撫二正三品, 副鎭撫二從三品, 知事二四品, 都事四五六品。 改忠順扈衛司爲忠扈衛, 罷祿官, 置口傳官。 鎭撫二三品, 副鎭撫二四品, 仍置五品已下祿官。 除十司護軍各一, 除甲士二千稱別牌, 番上侍衛, 選精銳者一千爲甲士, 分爲二番。 龍駒處仁幷爲龍仁, 衿川果川幷爲衿果, 交河原平, 金浦陽川幷爲金陽, 漣川麻田幷爲麻漣, 長湍臨江幷爲長臨。 以廣州任內朱溪高安陽智, 朔寧安峽幷爲安朔, 黃澗靑山幷爲黃靑, 燕歧全義幷爲全歧, 溫水新昌幷爲溫昌, 尼山石城幷爲尼城。 以雞林任內解顔大丘, 以陜川任內加守三歧。 幷巨濟居昌濟昌, 河東南海河南, 扶寧保安扶安, 豐川殷栗豐殷, 長淵永康淵康, 德川孟山德孟, 慈山殷山慈殷。"

從之, 且命檢校受祿。 自議政府左參贊至工曹參議一十爲定數, 除宦官檢校二十、尙衣院司直二, 各道都節制使、水軍都節制使、道除首領官, 差三軍錄事。


  •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2면
  • 【분류】
    농업-전제(田制)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통-수운(水運)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재정-국용(國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