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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3권, 태종 12년 4월 25일 己卯 1번째기사 1412년 명 영락(永樂) 10년

원윤 이덕근의 졸기. 원윤·정윤을 장사지내는 예를 예조로 하여금 상고하게 하다

원윤(元尹) 이덕근(李德根)이 죽으니, 조회(朝會)를 3일 동안 정지하고, 부의(賻儀)로 쌀과 콩 30석을 내려 주고 또 사제(賜祭)하였으니, 이덕근(李德根)진안군(鎭安君) 이방우(李芳雨)의 얼자(孼子)였다. 처음에는 원윤(元尹)·정윤(正尹)이 죽으면 종친 하등(宗親下等)의 예로 장사지냈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부(政府)에 명령하기를,

"종실이 친하고 먼 것이 있으니, 어찌 범연히 하등(下等)의 예로 장사지낼 수 있겠는가? 옛제도를 상고하여 아뢰라."

하니, 정부에서 상언(上言)하였다.

"원윤(元尹)·정윤(正尹)을 장사하는 예를 예조로 하여금 상고하게 하니, ‘한(漢)나라 제도에는 다만 황형제(皇兄弟)071) ·황자(皇子)를 왕으로 봉한다고 칭하였고, 당(唐)나라·송(宋)나라 제도도 또한 그와 같고, 전조(前朝)에서도 또한 왕형제(王兄弟)·왕자(王子)를 군(君)으로 봉하였으며, 원윤·정윤을 예장(禮葬)하는 등차(等差)는 기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빌건대, 태조(太祖)의 자손 중에서 즉위한 임금의 적비(嫡妃)의 아들은 대군(大君)으로 봉하고, 빈잉(嬪媵)의 아들은 군(君)으로 봉하고, 친형제(親兄弟)는 대군으로 봉하고, 친형제의 적실(嫡室)의 장자(長子)는 군으로 봉하고, 중자(衆子)는 원윤(元尹)으로 봉하고, 그 장사하는 예는 마땅히 하등(下等)을 따라야 합니다."

정부에서 또 말하였다.

"즉위한 임금의 궁인(宮人)의 소생은 정윤(正尹)이 되고, 친형제와 친자(親子)의 양첩(良妾)의 아들은 또한 정윤이 되는 것을 허락하는데, 또 장유(長幼)가 분별이 없을 수 없으니 원윤(元尹)으로 종2품을 삼고, 부원윤(副元尹)으로 정4품을 삼고, 정윤으로 종3품을 삼고, 부정윤으로 정4품을 삼아서 항식(恒式)으로 삼으소서."

예조에서 상서(上書)하였다.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에 간대부(諫大夫) 양흥(楊興)·박사(博士) 사승(駟勝) 등이 말하기를, ‘고조(高祖)의 약속에 공신(功臣)이 아니면 후(侯)로 봉하지 않는데, 지금 태후(太后)의 여러 아우가 모두 공(功)이 없으면서 후(侯)가 되었으니, 외척(外戚)에서 일찍이 없던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조(本朝)에서 의논하기를, 한나라 이래로 외척을 후로 봉하여 충성하고 근신하여 스스로 지킨 자는 대개 적었으며, 국가의 근심이 된 자가 심히 많았으니, 고조의 법은 참으로 만세의 좋은 법입니다. 우리 조정의 법도가 반드시 고전(古典)을 따르면서, 외척 한 가지 일에 있어서는 오히려 역대의 잘못을 따르는 것이 가하겠습니까? 이제부터 고조의 약속을 법 받아서 공신이 아니고 중궁(中宮)의 부친(父親)을 제외하고, 군(君)으로 봉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그 재품(才品)에 따라서 쓰고 버리소서. 옛날부터 후척(后戚)의 집에서 권세를 잡아 용사(用事)하면 좋게 끝을 마치는 것이 적었으니, 비록 재능이 쓸만하더라도 중요한 관직을 제수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또한 군으로 봉하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

모두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3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33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종친(宗親)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註 071]
    황형제(皇兄弟) : 황제의 형제.

○己卯/元尹德根卒, 輟朝三日, 賜賻米豆三十石, 又賜祭。 德根, 鎭安君 芳雨之孽子也。 初, 元尹正尹卒, 則以宗親下等例葬之, 至是, 命政府曰: "宗室有親疏, 何泛以下等之例葬之! 稽古制以聞。" 政府上言: "元尹正尹葬之之禮, 令禮曹考之, 曰: ‘制只稱皇兄弟皇子封王, 之制亦同。 前朝亦以王兄弟王子封君, 其元尹正尹禮葬等差, 則不錄。’ 乞於太祖子孫內, 卽位之主嫡妃之子封大君, 嬪媵之子封君, 親兄弟封大君, 親兄弟嫡室長子封君, 衆子封元尹, 其葬之之禮, 宜從下等。" 政府又言: "卽位之主宮人所出爲正尹, 親兄弟及親子良妾之子, 亦許爲正尹。 且其長幼不可無別, 以元尹爲從二品, 副元尹爲正三品, 正尹爲從三品, 副正尹爲正四品, 以爲恒式。" 禮曹上書曰:

成帝時, 諫大夫楊興、博士駟勝等言: "高祖之約, 非功臣不侯。 今太后諸弟, 皆以無功爲侯, 外戚未曾有也。" 本曹議得: 自以來, 以外戚封侯, 而忠謹自守者蓋寡, 爲國家患者甚衆, 高祖之法, 誠萬世之良法也。 我朝法度, 必遵古典, 其於外戚一事, 尙循歷代之失可乎? 自今體高祖之約, 非功臣除中宮父親外, 不許封君, 隨其才品而用舍之。 自古后戚之家, 得權用事, 則鮮有令終, 雖才能可用, 不許除機要之職, 亦不許封君。

皆從之。


  • 【태백산사고본】 10책 23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33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종친(宗親)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