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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11월 12일 丙辰 1번째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황엄 등이 경사에 돌아가다. 진헌 처녀 5명을 경사에 보내는 주문

황엄(黃儼) 등이 처녀(處女)를 데리고 경사(京師)로 돌아가니, 임금이 모화루(慕華樓)에서 전송하였다.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이문화(李文和)로 진헌사(進獻使)를 삼아 순백 후지(純白厚紙) 6천 장을 싸 가지고 경사(京師)에 가게 하였다. 부주(附奏)에 이르기를,

"영락(永樂) 6년 4월 16일에 흠차(欽差)하신 태감(太監) 황엄(黃儼) 등 관원이 본국에 도착하여 선유(宣諭)를 전(傳)해 받들었사온데, ‘네가 조선국(朝鮮國)에 가서 국왕(國王) 【이휘(李諱).】 에게 말하여 잘 생긴 여자가 있거든 몇 명을 선택하여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臣) 【휘(諱).】 이 흠의(欽依)하여 본국의 서울과 각도(各道) 부(府)·주(州)·군(郡)·현(縣)에서 문무(文武)·군민(軍民)의 집 여자를 간택(揀擇)하여, 흠차관(欽差官) 등과 함께 여자 5명을 선택해서, 배신(陪臣) 이문화(李文和)를 보내어 흠차 태감 황엄 등을 따라 경사에 가게 하고, 각 여자의 생년월일과 아비의 직명(職名) 및 적관(籍貫)을 낱낱이 기록하여 삼가 갖추어 주문(奏聞)합니다. 한 명은 가선 대부(嘉善大夫) 공조 전서(工曹典書) 권집중(權執中)의 딸인데 나이 18세로서 신미(辛未) 10월 26일 사시(巳時)에 낳았고, 적관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이며, 현재 한성부에 살고 있습니다. 한 명은 통훈 대부(通訓大夫) 인녕부 좌사윤(仁寧府左司尹) 임첨년(任添年)의 딸인데, 나이 17세로서 임신 10월 26일 술시(戌時)에 낳았고, 적관은 충청도 회덕현(懷德縣)이며, 현재 한성부에 살고 있습니다. 한 명은 통덕랑(通德郞) 공안부 판관(恭安府判官) 이문명(李文命)의 딸인데, 나이 17세로서 임신 10월 18일 술시(戌時)에 낳았고, 적관은 기내 좌도(畿內左道) 인주(仁州)입니다. 한 명은 선략 장군(宣略將軍) 충좌 시위사 중령 호군(忠佐侍衛司中領護軍) 여귀진(呂貴眞)의 딸인데, 나이 16세로서 계유 11월 초2일 사시(巳時)에 낳았고, 적관은 풍해도(豐海道) 곡성군(谷城郡)이며, 현재 한성부에 살고 있습니다. 한 명은 중군 부사정(中軍副司正) 최득비(崔得霏)의 딸인데, 나이 14세로서 을해 10월 초8일 오시(午時)에 낳았고, 적관은 기내 좌도 수원부(水原府)입니다.

따라가는 자[從者]는 여사(女使) 16명, 화자(火者) 12명입니다."

하였다.

이문화(李文和)는 곧 문명(文命)의 형이다. 일찍이 황제가 십분(十分) 순결(純潔)하고 광채가 좋으며 가는 백지[細白紙]를 우리에게 요구하였으므로, 이미 안노생(安魯生)·홍서(洪恕)·설미수(偰眉壽)를 시켜 차례로 2만 1천 장을 진공(進貢)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처녀(處女)를 진헌(進獻)한다고 이름지어 말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문화(李文和)로 하여금 지차(紙箚)를 진헌(進獻)하는 것같이 한 것이었다. 문명(文命)·귀진(貴眞)·득비(得霏)집중(執中)의 아들 영균(永均)을 모두 압물(押物)212) 에 충당하고, 첨년(添年)만은 병(病)으로 가지 못하였다. 이번 행차에 그 부모 친척의 울음소리가 길에 연하였다.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이 그들을 위하여 시(詩)를 지어 이르기를,

"구중(九重) 궁궐에서 요조 숙녀(窈窕淑女)를 생각하여

만리 밖에서 미인(美人)을 뽑는다.

적불(翟茀)은 멀리 행하고

제잠(鯷岑)은 점점 아득하여진다.

부모(父母)를 하직하니 말이 끝나기 어렵고,

눈물을 참자니 씻으면 도로 떨어진다.

슬프고 섭섭하게 서로 떠나는 곳에

여러 산(山)들이 꿈속에 들어와 푸르도다."

하였다. 이보다 먼저 동요(童謠)가 있었는데, 권근이 또 시를 지어 다음과 같이 해설(解說)하였다.

"보리가 익으면 보리를 구하여야 하고,

해가 저물면 계집아이를 구한다.

나비도 오히려 눈이 있어

아직 꽃피지 않은 가지를 와서 택한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63면
  • 【분류】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12]
    압물(押物) : 사행(使行)길의 물품을 관리하는 사람.

○丙辰/黃儼等以處女還京師, 上餞于慕華樓。 以藝文館大提學李文和爲進獻使, 齎純白厚紙陸千張赴京。 附奏曰:

永樂六年四月十六日, 欽差太監黃儼等官到國, 傳奉宣諭: "恁去朝鮮國, 和國王 【李諱。】 說, 有生得好的女子, 選揀幾名將來。" 欽此。 臣諱欽依, 於本國在城及各道府州郡縣, 選揀到文武幷軍民家女子, 與同欽差官等選揀女子五名, 差陪臣李文和, 根同欽差太監黃儼等官赴京外, 今將各女子生年月日幷父職名籍貫, 一一開坐, 謹具奏聞。 一名, 嘉善大夫工曹典書權執中女, 年一十八歲, 辛未十月二十六日巳時生, 籍貫慶尙道 安東府, 見住漢城府。 一名, 通訓大夫仁寧府左司尹任添年女, 年一十七歲, 壬申十月二十六日戌時生, 籍貫忠淸道 懷德縣, 見住漢城府。 一名, 通德郞恭安府判官李文命女, 年一十七歲, 壬申十月十八日戌時生, 籍貫畿內左道仁州。 一名, 宣略將軍忠佐侍衛司中領護軍呂貴眞女, 年十六歲, 癸酉十一月初二日巳時生, 籍貫豐海道 谷城郡, 見住漢城府。 一名, 中軍副司正崔得霏女, 年一十肆歲, 乙亥十月初八日午時生, 籍貫畿內左道水原府。 從者女使一十六名, 火者一十二名。

文和, 卽文命之兄也。 帝嘗求十分純潔光姸好細白紙于我, 已使安魯生洪恕偰眉壽節次齎進二萬一千張。 至是, 上不欲名言奏進處女, 故使文和若齎進紙箚然。 文命貴眞得霏執中之子永均皆充押物, 獨添年以疾未行。 是行也, 其父母親戚, 哭聲載路。 吉昌君 權近爲賦詩云:

九重思窈窕, 萬里選娉婷。 翟茀行迢遞, 鯷岑漸杳冥。 辭親語難決, 忍淚拭還零。 惆悵相離處, 群山入夢靑。

先是有童謠, 又作詩以解之曰:

麥熟當求麥, 日曛求女兒。 蝶猶能有眼, 來擇未開枝。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63면
  • 【분류】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