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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2월 4일 己亥 1번째기사 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정안공을 왕세자로 책립하여 군국의 일을 맡기다. 전국의 죄수들을 사유하다

임금의 아우 정안공(靖安公) 【휘(諱).】 을 책립(冊立)하여 왕세자(王世子)로 삼아 군국(軍國)의 중사(重事)를 맡게 하였다.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저이(儲貳)017) 를 세우는 것은 국본(國本)을 정하는 것이요, 위호(位號)를 높이는 것은 인심을 정하는 것이다. 이에 전장(典章)에 따라서 책례(冊禮)를 거행한다. 너 정안공 【휘(諱).】 은 자질이 문무(文武)를 겸하고, 덕이 영명(英明)한 것을 갖추었다. 태상(太上)께서 개국(開國)하던 처음을 당하여 능히 대의(大義)를 주장하였고, 과형(寡兄)이 정사(定社)하던 날에 미치어 특히 큰 공을 세웠다. 하물며, 구가(謳歌)의 돌아가는 것이 있으니, 마땅히 감무(監撫)를 맡겨야 하겠다. 이로써 너에게 명하여 왕세자로 삼는다. 아아! 사람 알아보기가 쉽지 않고, 자식노릇하기도 또한 어렵다. 지친(至親)으로 택현(擇賢)으로 이미 대통(大統)을 잇는 자리에 처하였으니, 오직 충성하고 오직 효도하여 이로써 정사하는 방도를 도우라. 그러므로, 이에 교시(敎示)하는 바이니, 마땅히 다 알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하여 경내(境內)에 사유(赦宥)하였는데,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왕노릇하는 자가 저이(儲貳)를 세우는 것은 종사(宗祀)를 높이고 국본(國本)을 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문(禮文)을 상고하면, 적자(嫡子)와 동모제(同母弟)를 세운다는 말이 있는데, 혹은 세대(世代)로 하든지 혹은 차제(次弟)로 하든지 오직 지당하게 할 뿐이었다. 내가 덕이 적고 우매한 몸으로 큰 통서(統緖)를 이어받아, 공경하고 근신하여 다스리기를 생각한 지가 이제 2년이 되었다. 돌아보건대, 적사(嫡嗣)가 없고 다만 서얼(庶孽)이 있는데, 혼매하고 유약하여 지혜스럽지 못하니,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편안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동기(同氣)의 지친을 생각하여 우우(友于)018) 의 의를 두터이 하였더니, 생각지도 않게 방간이 간교하고 사곡한 말을 곧이 믿고, 망령되게 의심하고 꺼리는 마음을 품어 군사를 내어 난을 꾸며서, 화가 불측한 데에 있었는데, 다행히 천지 종사(宗社)의 도움에 힘입어서, 이내 곧 평정되어 하루도 못되어 청명하여졌다. 오히려 상우(象憂)019) 의 정을 불쌍히 여기고 관벽(管辟)020) 에 이르도록 차마 하지 못하여, 이미 방간을 사사 전장(田莊)에 안치하고, 당여(黨與) 사람들은 각각 죄의 경중에 따라 처결하였다.

대개 국본(國本)이 정해지지 못하고 인심이 흔들리기 쉬움으로 인하여, 화란이 발생하여 이처럼 지극함에 이르렀다. 말이 여기에 미치니, 깊이 슬프도다. 마땅히 어진 모제(母弟)를 세워 굳건한 국본을 정해야만 하겠다. 정안공 【휘(諱).】 은 기운이 영명(英明)하게 빼어나고, 자질은 용맹과 지혜를 온전히 하였다. 문무(文武)의 도략(圖略)은 생지(生知)로부터 가졌고, 효제(孝悌)의 정성은 지성(至性)에서 나왔다. 시서(詩書)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정교(政敎)의 방법을 통달하였다. 태상왕을 보좌하여 개국의 공을 세웠고, 과인의 몸을 호위하여 정사(定社)의 공을 이루었다. 종사에서 길이 힘입은 것은 신민(臣民)이 함께 아는 바이다. 공과 덕이 이미 높으니, 구가(謳歌)하는 것이 모두 돌아간다. 그러므로, 책명하여 왕세자를 삼아서 여망(輿望)을 위로한다. 생각하건대, 저부(儲副)의 임무는 반드시 감무(監撫)의 권한을 겸하므로, 이에 군국(軍國)의 중사(重事)를 맡도록 명한다.

아아! 너희 종친(宗親)·기로(耆老)·재보(宰輔)·신료(臣僚)와 중외 인민(中外人民)은 모두 내 뜻을 몸받아서 각각 너희 직책에 이바지하고, 원량(元良)의 덕에 공경하고 순종하여, 내 덕을 도우라. 이에 책명을 행하니, 마땅히 너그러운 법전을 반포하여야 하겠다. 건문(建文) 2년 2월 초4일 새벽 이전에 모반(謀叛)하고 대역(大逆)한 것, 조부모·부모를 죽인 것, 처첩이 남편을 죽인 것, 노비가 주인을 죽인 것, 고독(蠱毒)021) 하고 염매(魘魅)022) 한 것, 강도를 범한 것, 고의로 살인(殺人)을 꾀한 것과, 방간(芳幹)의 당여(黨與)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발각되었거나 발각되지 않았거나, 이미 결정되었거나 결정되지 않았거나, 죄의 경중이 없이 모두 용서하여 면제하라. 감히 유지(宥旨) 전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하여 말하는 자는 그 죄로 죄를 주겠다. 아아! 아비와 자식이 되었으니, 더욱 자효(慈孝)의 마음을 두텁게 하고, 가까운 데로부터 먼 데에 미치기까지 함께 태평의 낙을 누리리라."

이때에 대신으로서 헌의하는 자가 말하기를,

"옛날부터 제왕이 동모제(同母弟)를 세우면 모두 황태제(皇太弟)를 봉하였고, 세자를 삼은 일은 없었습니다. 청하건대, 왕태제(王太弟)를 삼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나는 직접 이 아우로 아들을 삼겠다."

하였다. 이저(李佇)로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좌군 도절제사(左軍都節制使)를, 이거이(李居易)로 중군 절제사(中軍節制使)를, 조영무(趙英茂)로 우군 절제사(右軍節制使)를 조온(趙溫)으로 지중군절제사(知中軍節制使)를, 이천우(李天祐)로 지우군절제사(知右軍節制使)를 삼고, 이숙번(李叔蕃)으로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동지좌군절제사(同知左軍節制使)를, 이원(李原)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삼았다. 이때부터 1품(品)이하를 모두 대성(臺省)에서 다시 서경(署經)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65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017]
    저이(儲貳) : 세자.
  • [註 018]
    우우(友于) : 형제의 우의.
  • [註 019]
    상우(象憂) : 상(象:순임금의 아우)이 근심하면 순(舜)임금이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순임금이 기뻐하였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 [註 020]
    관벽(管辟) : 주공(周公)이 관숙(管叔)을 대벽(大辟:死刑)에 처한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 [註 021]
    고독(蠱毒) : 뱀·지네·두꺼비 등의 독기(毒氣)가 든 음식을 남에게 몰래 먹여 복통·가슴앓이·토혈(吐血)·하혈(下血) 등의 증세를 일으켜 죽게 하는 것.
  • [註 022]
    염매(魘魅) : 주문(呪文)이나 저술(詛術)로 남을 저주(詛呪)하여 죽게 만드는 것. 염(魘)은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쇠꼬챙이로 심장을 찌르고 눈을 후벼파고 손·발을 묶는 것이고, 매(魅)는 나무나 돌로 귀신을 만들어 놓고 저주를 비는 것임. 압승술(壓勝術).

○己亥/冊立弟靖安公 【諱】 爲王世子, 句當軍國重事:

王若曰, 建儲貳, 所以正國本; 崇位號, 所以定人心。 玆遵典章, 庸擧冊禮。 惟爾靖安公 【諱】 , 資全文武, 德備英明。 當太上開國之初, 克倡大義; 及寡兄定社之日, 特立膚功。 矧謳謌之有歸, 宜監撫之是任。 用命爾爲王世子。 於戲! 知人不易, 爲子亦難。 以親以賢, 旣處承祧之位; 惟忠惟孝, 用裨爲政之方。 故玆敎示, 想宜知悉。

仍宥境內:

王若曰, 自古王者之建儲, 所以尊宗祀, 而重國本也。 稽諸禮文, 有立嫡子同母弟之說, 或世或及, 惟其至當而已。 予以寡昧, 嗣守景緖, 嚴恭思治, 于玆二年, 顧無嫡嗣, 只有庶孽, 昏弱不慧, 夙夜兢惕, 罔敢遑寧。 惟念同氣之親, 庸篤友于之義, 不期芳幹, 崇信奸回, 妄生疑忌, 稱兵構亂, 禍在不測。 幸賴天地宗社之佑, 旋卽戡定, 不日淸明。 尙憐憂之情, 不忍辟之致, 已將芳幹, 安置私莊, 儻與人等, 各以輕重處決。 蓋緣國本之未定、人心之易搖, 禍亂斯生, 以至此極。 興言及玆, 深用惻然。 宜建母弟之賢, 以端國本之固。 靖安公諱, 氣挺英明, 資全勇智。 文武之略, 秉自生知; 孝悌之誠, 發于至性。 佩服詩書之訓, 識達政敎之方。 左右太上, 以建開國之功; 捍衛寡躬, 以成定社之烈。 宗社之所永賴, 臣民之所共知。 勳德旣隆, 謳歌悉歸。 是用冊命爲王世子, 以慰輿望。 載惟儲副之任, 必兼監撫之權, 仍命句當軍國重事。 咨爾宗親耆老宰輔臣僚中外人民! 咸體予懷, 各(共)〔供〕 爾職, 祗順元良之德, 以補予德。 玆行冊命, 宜布寬條。 自建文二年二月初四日昧爽以前, 除謀叛大逆、殺(父祖母父母)〔祖父母父母〕 、妻妾殺夫、奴婢殺主、蠱毒魘魅、但犯强盜、謀故殺人、芳幹儻與人外, 已發覺未發覺、已結正未結正, 罪無輕重, 咸宥除之, 敢以宥旨前事相告言者, 以其罪罪之。 於戲! 爲父與子, 益敦慈孝之心; 由邇及遐, 共享隆平之樂。

時大臣獻議者以爲: "自古帝王立母弟, 則皆封皇太弟, 未有以爲世子者也。 請立爲王太弟。" 上曰: "今予則直以此弟爲子。" 以李佇判三軍府事、左軍都節制使, 李居易中軍節制使, 趙英茂右軍節制使, 趙溫知中軍節制使, 李天祐知右軍節制使, 李叔蕃爲中樞院副使、同知左軍節制使, 李原爲右副承旨。 自是一品以下, 皆復署經臺省。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9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65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