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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실록1권, 정종 1년 3월 7일 戊寅 1번째기사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

유후사로 환도하다. 공후는 모두 따라가고 각사의 인원은 반씩만 따라가다

유후사(留後司)로 환도(還都)하니, 공후(公侯)는 모두 따르고, 각사(各司)에서는 반씩만 따랐다. 태상왕이 거가(車駕)를 움직이니, 회안군(懷安君) 이방간(李芳幹)과 각사의 관원 한 사람씩이 따랐는데, 길이 정릉(貞陵)025) 을 지나니, 두루 살펴보고 머뭇거리면서 또 말하기를,

"처음에 한양(漢陽)으로 옮긴 것은 오로지 내 뜻만이 아니었고, 나라 사람과 의논한 것이었다."

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갔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46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註 025]
    정릉(貞陵) : 신덕 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 능.

○戊寅/還于留後司, 公侯皆從之, 各司半焉。 太上王動駕, 懷安君 芳幹及各司一員從之。 道過貞陵, 周觀趑趄, 且曰: "初移漢陽, 非獨吾志, 與國人議之也。" 掩涕而去。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46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