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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1월 14일 辛卯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매일 경연을 열자고 사간원에서 상소하니 윤허하다

간관(諫官)이 상소(上疏)하였다.

"전일에 상언(上言)한 바, 간언(諫言)을 들어주어야 된다는 설(說)은 윤허(允許)를 얻었는데, 비록 신 등이 견식이 얕고 재주가 쓸모없지마는, 어찌 감히 애매한 말로써 우러러 임금에게 듣기를 요구하겠습니까? 신 등이 듣자옵건대, 군주의 마음은 정치를 하는 근원입니다. 마음이 바르면 모든 일이 따라서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온갖 욕심이 이를 공격하게 되니, 그런 까닭으로 존양(存養)187) 성찰(省察)의 공부를 지극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제(舜帝)긍긍업업(兢兢業業)188)탕왕(湯王)문왕(文王)율율익익(慄慄翼翼)189) 은 곧 그 세상이 태평하고 화락해진 근본입니다. 한 가지라도 혹시 이에 어긋나서 아첨한 말을 달게 여긴다면 공광(孔光)190)장우(張禹)191) 의 무리들이 나아와서 마음이 날로 안일(安逸)해질 것이며, 신선(神仙)을 사모한다면 문성 장군(文成將軍)192)오리 장군(五利將軍)193) 의 무리들이 나와서 마음이 날로 방탕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하의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마음을 바로잡을 것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선유(先儒) 진덕수(眞德秀)《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지어 경연(經筵)에 올렸는데, 그 글이 맨 처음에 제왕의 정치하는 차례로 시작하고, 다음에 제왕의 학문하는 근본으로 편차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강(綱)이요, 맨 처음에 도술(道術)을 밝히고 인재(人材)를 변별(辨別)하며, 정치하는 대체(大體)를 상심(詳審)하고 민정(民情)을 살피는 일로써 시작한 것은 격물 치지(格物致知)194) 의 요령(要領)이요, 다음에 경외(敬畏)를 숭상하고 일욕(逸欲)을 경계하는 일로써 편차한 것은 성의 정심(誠意正心)의 요령이요, 그 다음에 언행(言行)을 삼가하고 위의(威儀)를 바르게 하는 일로써 편차한 것은 수신(修身)의 요령이요, 그 다음에 배필(配匹)을 소중히 여기고, 내치(內治)를 엄격히 하고, 국본(國本)195) 을 정하고, 척속(戚屬)을 가르치는 일로서 편차한 것은 제가(齊家)의 요령이니, 이것이 이른바 목(目)입니다. 맨 처음에 성현(聖賢)의 훈전(訓典)으로써 시작하고, 다음에 고금(古今)의 사실(事實)로써 편차하여 군주의 마땅히 알아야만 될 이치와 마땅히 해야만 될 일이 상세히 이에 나타나 있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잠저(潛邸)에 계실 때부터 서책(書冊) 보기를 좋아하였으며, 왕위에 오르신 후에도 날마다 강론(講論)하기를 부지런히 하시니, 그 궁리 정심(窮理正心)의 학문과 수기 치인(修己治人)의 방법에 있어서는, 진실로 이미 밝게 아시고, 자세히 강론하셨을 것입니다. 신 등은 견문이 적고 우매하니 어찌 감히 헤아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경연(經筵)을 설치하고서도 한갓 그 명칭만 있을 뿐이지 나아가 강론하는 때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전하의 생각에는 반드시 넓은 집과 큰 뜰안의 어느 곳이든지 학문이 아닌 곳이 없는데, 어찌 반드시 일정한 법도에 구속되어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간 후에야 학문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이르실 것입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군주의 학문은 한갓 외우고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날마다 경연에 나가서 선비를 맞이하여 강론을 듣는 것은, 첫째는, 어진 사대부를 접견할 때가 많으므로써 그 덕성(德性)을 훈도(薰陶)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을 가까이할 때가 적으므로써, 그 태타(怠惰)함을 진작(振作)시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창업한 군주는 자손들의 모범이 되니, 전하께서 만약 경연(經筵)을 급무(急務)로 여기지 않으신다면 뒷 세상에서 이를 핑계하여 구실로 삼아, 그 유폐(流弊)는 반드시 학문을 하지 않는 데 이르게 될 것이니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와서 《대학(大學)》을 가져와 강론하게 하여, 격물 치지(格物致知)·성의 정심(誠意正心)의 학문을 연구하여 수신 제가(修身齊家)·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의 효과를 이루게 하소서."

임금이 이를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5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註 187]
    존양(存養) : 본심을 잃지 않도록 그 착한 마음을 기름.
  • [註 188]
    긍긍업업(兢兢業業) : 삼가고 두려워하는 모양.
  • [註 189]
    율율익익(慄慄翼翼) :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모양.
  • [註 190]
    공광(孔光) : 한나라 성제(成帝) 때 사람.
  • [註 191]
    장우(張禹) : 한나라 성제(成帝) 때 사람.
  • [註 192]
    문성 장군(文成將軍) :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방사(方士).
  • [註 193]
    오리 장군(五利將軍) : 한나라 성제(成帝) 때 사람.
  • [註 194]
    격물 치지(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궁극의 지식에 도달함.
  • [註 195]
    국본(國本) : 태자(太子).

○辛卯/諫官上疏曰:

前日上言聽納之說, 獲蒙兪允。 雖臣等識淺才疎, 豈敢以曖昧之說, 仰干聰聽? 臣等聞君心, 出治之源也。 心正則萬事隨以正, 不正則衆欲得而攻之, 故存養省察之功, 不可不至。 大舜之兢兢業業, 之慄慄翼翼, 乃其泰和雍熙之本也。 一或反是, 佞諛是甘, 則孔光張禹之徒進, 而心日以逸; 神仙是慕, 則文成五利之徒出, 而心日以蕩。 然則有天下國家者, 其可不思所以正其心乎? 先儒眞德秀《大學衍義》, 以進經筵。 其書首之以帝王爲治之序, 次之以帝王爲學之本, 莫不自身心始, 此所謂綱也。 首之以明道術辨人材審治體察民情者, 格物致知之要也; 次之以崇敬畏戒逸欲者, 誠意正心之要也; 次之以謹言行正威儀者, 修身之要也; 次之以重配匹嚴內治定國本敎戚屬者, 齊家之要也, 此所謂目也。 首之以聖賢之訓典, 次之以古今之事實。 人君所當知之理、所當爲之事, 備見於此。 恭惟殿下, 自在潛邸, 好觀書史, 洎登大位, 日講孜孜, 其於窮理正心之學, 修己治人之方, 固已知之明, 講之熟矣。 臣等寡昧, 何敢有所擬議哉? 然而經筵之設, 徒有其名, 而未聞進講之時。 殿下之意, 必謂廣廈大庭, 無地非學, 何必拘於常典, 日御經筵, 然後以爲學哉? 臣等以爲人君之學, 非徒誦說, 其所以日御經筵, 迎訪採納者, 一以接賢士大夫之時多, 而薰陶其德性, 二以親宦官宮妾之時少, 而振起其怠惰。 且創業之主, 子孫之所儀刑也。 殿下若以經筵爲不急, 則後世藉以爲說, 其流必至於不學, 豈細故哉! 伏願殿下日御經筵, 進講《大學》, 以極格致誠正之學, 以致修齊治平之効。

上兪允。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5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