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태조실록 1권, 총서 49번째기사

동북면을 공격하고 나하추 등이 있는 곳에 방을 붙여 기새인첩목아의 행방을 탐문하다

12월, 태조는 친병(親兵) 1천 6백 명을 거느리고 의주(義州)에 이르러 부교(浮橋)를 만들어 압록강을 건너는데, 사졸(士卒)이 3일 만에야 다 건넜다. 나장탑(螺匠塔)에 이르니 요성(遼城)과의 거리가 2일 길이었다. 군대의 짐[輜重]은 그냥 남겨 두고 7일 양식만 가지고 행진하였다. 비장(裨將) 홍인계(洪仁桂)·최공철(崔公哲) 등을 시켜 빠른 기병[輕騎] 3천 명을 거느리고 요성을 습격하게 했는데, 저들은 우리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는 이를 얕보아 싸웠으나, 많은 군사들이 잇달아 이르니 성중(城中) 사람이 바라보고는 간담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그 장수 처명(處明)이 날래고 용감함을 믿고 그래도 항거해 싸우므로, 태조이원경(李原景)을 시켜 타이르기를,

"너를 죽이기는 매우 쉽지만, 다만 너를 살려서 쓰고자 하니 빨리 항복하라."

했으나, 따르지 않았다. 원경(原景)이 또 말하기를,

"네가 우리 장군님의 재주를 알지 못하는구나. 네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한 번에 쏘아서 네 몸을 꿰뚫을 것이다."

하였으나, 그래도 항복하지 않았다. 태조는 짐짓 그 투구를 쏘아 벗기고는 또 원경을 시켜 그에게 타일렀으나, 또 따르지 않으므로, 태조는 또 그 다리를 쏘니, 처명(處明)이 화살에 맞아 물러가 달아나더니, 조금 후에 다시 와서 싸우려고 하므로, 태조는 또 원경을 시켜 그에게 타이르기를,

"네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즉시 네 얼굴을 쏘겠다."

고 하니, 처명은 마침내 말에서 내려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하였다. 한 사람이 성(城)에 올라 외치기를,

"우리 무리들은 대군(大軍)이 온다는 말을 듣고 모두 투항(投降)하고자 하였으나 관원(官員)이 강제로 항거해 싸우게 했으니, 만약 힘을 써서 성을 공격한다면 빼앗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성은 매우 높고 가파르며, 화살이 빗발처럼 내려오며 또 나무와 돌까지 섞여서 내려오는데, 우리의 보병(步兵)들이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 것을 무릅쓰고 성에 가까이 가서 급히 공격하여 마침내 성을 함락시켰다.

새인첩목아(賽因帖木兒)는 도망하므로 백안(伯顔)을 사로잡아 군사를 성 동쪽에 물리치고, 나하추(納哈出)야산불화(也山不花) 등지에 방문(榜文)을 포고하기를,

"기새인첩목아(奇賽仁帖木兒)는 본국(本國)의 미천한 신하로서 황제의 조정에 친근(親近)하여 별다른 은혜를 지나치게 입어 관위(官位)가 1품(品)에 이르렀으니, 의리상 나라와 함께 기쁨과 근심을 같이해야 될 것이며, 천자(天子)가 밖에 피난(避亂)했으니, 의리상 마땅히 전후 좌우에서 보좌하여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고 가버리지 않아야 될 것인데, 그는 은혜를 저버리고 의리를 잊고서 동녕부(東寧府)에 몸을 도망쳐 와서, 본국(本國)에 원수를 가지고 몰래 모반(謀反)을 도모하고 있다. 두서너 해 전에 국가에서 군사를 보내어 뒤쫓아 습격했으나, 도망하여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는데, 또 행재소(行在所)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물러와 동녕성(東寧城)을 지키면서, 김백안(金伯顔) 평장(平章) 등과 결탁하여 심복(心腹)이 되어 송보리(松甫里)·법독하(法禿河)·아상개(阿尙介) 등지에서 군사와 말을 단결(團結)시켜 또 본국을 침해하고자 하니, 죄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지금 의병(義兵)을 일으켜 문죄(問罪)하니, 그 새인첩목아(賽仁帖木兒)김백안(金伯顔) 등은 소민(小民)들을 유혹 협박하고 성벽을 굳게 지켜 명령을 거역[逆命]하므로, 초마(哨馬) 전봉(前鋒)이 김백안 외에 합라파두(哈剌波豆)·덕좌불화고(德左不花高)의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대도총관(大都摠管) 등 대소 두목(大小頭目)을 모두 잡아 죽였으나, 새인첩목아는 또 다시 도망 중에 있으니, 새인첩목아가 가서 접(接)하는 각채(各寨)에서는 즉시 잡아서 빨리 보고할 것이며, 만약 이를 숨기고 자수(自首)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감계(鑑戒)가 동녕부(東寧府)에 있을 것이다."

하였다.

금주(金州)복주(復州) 등지에 방문(榜文)을 포고하기를,

"본국은 요제(堯帝)와 같이 건국(建國)했으며, 주 무왕(周武王)기자(箕子)조선에 봉후(封侯)하여 영토(領土)를 주어 서쪽으로 요하(遼河)에 이르렀으며 대대로 강토를 지켰는데, 원(元)나라중국을 통일하자 공주(公主)에게 요동(遼東)·심양(瀋陽)의 땅을 내려 주어 탕목읍(湯沐邑)027) 으로 삼게 하고, 그로 인하여 분성(分省)을 설치하였다. 말세(末世)에 와서 덕망(德望)을 잃고 천자가 밖에서 피란(避亂)했는데도, 요동·심양의 두목관(頭目官) 등이 들은 체하지 않고 나아가지 않았으며, 또 본국(本國)에도 예의(禮儀)를 닦지 않고서, 곧 본국의 죄인 기새인첩목아와 결탁하여 복심(服心)이 되어 무리를 모아 백성들을 침해했으니, 불충(不忠)의 죄는 모면할 수가 없다. 지금 의병(義兵)을 일으켜 문죄(問罪)하는데 새인첩목아 등이 동녕성(東寧城)에 웅거하여 강성함을 믿고 명령을 거역하므로, 초마(哨馬) 전봉(前鋒)이 이를 모두 잡아 죽일 것이므로,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같이 재액(災厄)을 당할 것이니 후회하여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개 요하(遼河) 이동(以東)의 본국 강토내의 백성과 대소(大小) 두목관(頭目官) 등은 속히 와서 조회하여 작록(爵祿)을 함께 누릴 것이며, 만약 조회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감계(鑑界)가 동경(東京)에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튿날 군대가 성 서쪽 10리(里)에 유숙했는데, 이날 밤에 붉은 기운[赤氣]이 군영(軍營)을 내리쏘는데 성하기가 불길과 같았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이상한 기운이 군영에 내리쏘니 옮겨서 둔치면 크게 좋을 것입니다."

하였다. 드디어 군사를 돌려 들에서 유숙하고, 사졸(士卒)들로 하여금 각기 변소(便所)와 마구(馬廐)를 만들도록 하였다. 나하추가 뒤를 쫓아 온 지 2일 만에 말하기를,

"변소와 마굿간을 만들었으니 군대의 행진이 정제(整齊)할 것이므로 습격할 수 없다."

고 하면서 그만 돌아갔다. 이때 중국 사람이 말하기를,

"성(城)을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게 됨은 고려와 같은 나라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역사(歷史)

  • [註 027]
    탕목읍(湯沐邑) : 그 읍(邑)에서 거두는 구실로 목욕의 비용에 충당하는 읍이라는 뜻으로, 천자(天子)·제후(諸侯)의 사유(私有)의 영지(領地).

〔○〕十二月, 太祖以親兵一千六百人至義州, 造浮橋, 渡鴨綠江, 士卒三日畢濟。 至螺匠塔, 去遼城二日程, 留輜重齎七日糧以行。 使裨將洪仁桂崔公哲等, 領輕騎三千, 襲遼城, 彼見我師少, 易之與戰, 大軍繼至, 城中望見膽落, 其將處明恃驍勇猶拒戰。 太祖使李原景喩之曰: "殺汝甚易, 但欲活汝收用, 其速降也。" 不從。 原景曰: "汝不知我將之才也。 汝若不降, 則一射洞貫矣。" 猶不降。 太祖故射拂其兜牟, 又使原景喩之, 又不從, 太祖又射其脚, 處明中箭退走。 旣而復來欲戰, 又使原景喩之曰: "汝若不降, 卽射汝面。" 處明遂下馬叩頭而降。 有一人登城呼曰: "我輩聞大軍來, 皆欲投降, 官員勒使拒戰, 若力攻城, 可取也。" 城甚高峻, 矢下如雨, 又雜以木石, 我步兵冒矢石, 薄城急攻, 遂拔之。 賽因帖木兒遁, 虜伯顔, 退師城東。 張牓納哈出也山不花等處曰:

奇賽因帖木兒, 本國微臣, 昵近天庭, 過蒙殊恩, 位至一品, 義同休戚。 天子蒙塵于外, 義當左右先後, 効死勿去。 爾乃背恩忘義, 竄身東寧府, 挾讎本國, 潛圖不軌。 年前國家, 遣兵追襲, 逃不血刃, 又不赴於行在, 退保東寧城, 與金伯顔平章等, 結爲心腹, 松甫里法禿河阿尙介等處, 團結軍馬, 又欲侵害本國, 罪在不原。 故今擧義兵以問, 乃其賽因帖木兒金伯顔等誘脅小民, 堅壁逆命。 哨馬前鋒, 生擒金伯顔哈刺波豆德左不花高達魯花赤、大都摠管等大小頭目, 盡行勦捕, 賽因帖木兒, 又復在逃。 仰賽因帖木兒去接各寨, 卽便捕捉飛報。 如有隱匿不首者, 鑑在東寧

又牓復州等處曰:

本國與竝立, 武王箕子朝鮮, 而賜之履西至于遼河, 世守疆域。 朝一統, 釐降公主, 地面, 以爲湯邑, 因置分省。 叔季失德, 天子蒙塵于外, 頭目官等, 罔聞不赴, 又不修禮於本國, 卽與本國罪人奇賽因帖木兒, 結爲腹心, 嘯聚虐民, 不忠之罪, 不可逭也。 今擧義兵以問, 賽因帖木兒等據于東寧城, 恃强方命。 哨馬前鋒, 盡行勦捕, 玉石俱焚, 噬臍何及? 凡遼河以東本國疆內之民, 大小頭目官等速自來朝, 共享爵祿。 如有不庭, 鑑在東京

翌日, 師次城西十里。 是夜, 有赤氣射營, 熾如火, 日官曰: "異氣臨營, 移屯大吉。" 遂班師野宿, 令士卒各作溷廁、馬廐。 納哈出躡後行二日曰: "作廁與廐, 師行整齊, 不可襲也。" 乃還。 時中國人曰: "攻城必取, 未有如高麗者也。"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