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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부록17권, 순종 19년 6월 11일 양력 4번째기사 1926년 일본 대정(大正) 15년

순종 황제의 애책문

애책문(哀冊文)에,

"유세차 병인년(1926) 3월 신미(辛未) 삭(朔) 14일 갑신에 황형(皇兄), 순종(純宗) 황제(皇帝)께서 창덕궁(昌德宮)의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昇遐)하셨다. 이해 5월 경오삭(庚午朔) 초2일 신미(辛未)에 영구히 유릉(裕陵)에 옮겼으니, 예(禮)이도다. 임금의 대여(大輿)가 장차 출발하게 되니 상여꾼의 걸음이 일치되었습니다. 만 백성(百姓)이 우레처럼 통곡하니 수많은 용이 구름 속에서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구중(九重) 엄숙한 궁궐을 하직하고 저 어두운 현궁(玄宮)으로 가셨습니다. 임금을 따르고 싶어도 미치지 못하니 아득히 제향(帝鄕)만 우러러 봅니다. 생각건대, 우리 사왕 전하(嗣王殿下)께서는 의(義)에서는 계체(繼體)를 중히 여기시고 성심(誠心)으로는 두터운 밤에 새벽이 오는 것을 애통해하며 영신(靈辰)을 가릴 수가 없으니 어찌 하겠습니까. 이에 옥에 드러내어 깊고 아름다운 덕을 밝게 펴고자 합니다. 혁혁한 성조(盛朝)가 거듭 빛나서 갑년에 세자(世子)가 되시었네. 오성(五星)에 상서로움이 모여서 제왕(帝王)의 기상이 빼어나게 드러나네. 팔도(八道)가 목을 빼고 바라보니, 진실로 우리의 세자라네. 영고(靈考)께서 자애로우시어 몸소 가르쳐서 만물이 깨우쳤네. 일찍이 세자의 지위를 바로하고 엄숙한 모습을 갖추었네. 어린 나이에 학문을 배우니 보고 듣는 것이 많았네. 온화하고 문아(文雅)하며 밝게 빛나니 천 년에 한 번이나 나올 분이었네. 태실(太室)에서 대신 강신제(降神祭)를 지냈으며 색동옷입고 부모님을 즐겁게 하였네. 금물를 쓴 옥책(玉冊)에서 공덕을 드러냈네. 백성의 칭송이 사방에서 일어나니 도모하지 않아도 다시 일어나네. 덕을 기르는 것이 오래되니 중외에서 미덥게 여겼네. 선왕(先王)께서 정사에 지치시니 세자께서 도우셨네. 선양을 굳게 사양하며 두세 번 울며 호소하였네. 백성의 찬양이 모이니 마지못해 대업(大業)을 이었네. 신과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정일(精一)한 도를 지켰네. 크게 어려운 시기이니 그 때가 정미년(1907)이였네. 부지런히 정무를 보시며 마음이 편할 겨를이 없었네. 포용력을 베푸니 신료가 조정에 가득 하네. 팔짱끼고 남면하며 대도(大道)를 힘써 따랐네. 시끄러운 소리와 화려한 색을 눈과 귀에 가까이 하지 않았네. 백성들이 소생하기를 자신이 아픈 것처럼 여겼네. 현인(賢人)을 높이고 허물을 용서해주었으며 윤음(綸音)을 밝게 선포하였네. 친잠(親蠶)과 친경(親耕)은 선왕과 비견되게 보이네. 혹한도 꺼리지 않고 지방을 순방하며 돌아다녔네. 남쪽으로는 동래(東萊)에 이르렀고 서쪽으로는 의주에 이르렀네. 천자의 수레를 멈추고는 백성의 사정을 묻고 덕음을 반포하였네. 사녀(士女)들이 만세를 부르고 흔쾌히 용안을 우러렀네. 지극한 덕이 탕탕(蕩蕩)하고, 기수(氣數)가 망망(茫茫)하네. 공경하고 한가하니 어진 소문이 오히려 드러났네. 진진(振振)하여 속적하니 은혜가 비상하였네. 덕이 시신(侍臣)에게 미치고 옛 신하들도 잊지 않았네. 을미년(1895)의 애통한 일에 와신 상담(臥薪嘗膽)의 마음을 품은 지 30년에 하늘이 뉘우치지 않았고 태황(太皇)이 돌아가시니 여막에서 깊은 슬픔에 잠기니 전후가 일치하네. 궁중에 걸어놓은 어진을 휘장으로 가리고 차마 보지 못하네. 영정에 임하는 것에도 살아계신 분 섬기는 도리로 하여 날마다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을 반드시 세세하게 보고하였네. 능에 뵙고 하직할 때에는 경건하게 말로 고하니 천자로서 증자, 민자건 같은 효성이 진실로 여기에 있네. 옛날 서루(西樓)를 영수각이라 부르고 네 명의 임금께서 글을 쓰셨는데 후손이 실천하셨네. 지팡이 짚은 머리 희끗한 노인들에게 좌우에서 술잔을 올리네. 이미 계술하고 오래 사시기를 기원하였네. 그런데 어찌하여 병이 드시어 갑자기 하늘이 재앙을 알리는가. 어지러이 동모(同瑁)에서 당황하고 아니 돌아가셨네. 오호라. 슬프도다. 임금은 이미 돌아가시고 그 곳에 휘장으로 둘러있네. 인생은 이슬같고 보의(黼扆)에는 먼지만이 쌓이네. 옥 같은 말씀은 어제런듯하고 면류관(冕旒冠) 쓰신 모습은 어디서 뵙겠는가. 슬프고 애절함만 첩첩 쌓이고 하늘에 불러도 그 모습 찾을 수 없네. 오호라. 슬프도다. 머무실 곳 찾으니 홍릉(洪陵) 가까운 곳이었네. 길지(吉地)로 판명되었으니 신리(神理)에 의지하여 유명(幽明) 간에 알았으니 아마도 문안을 빠뜨리지 않고 살아 생전의 효도를 실천하시니 엄숙하게 옥란(玉欄)에서 함께 즐기시리. 오호라. 슬프도다. 동루(銅漏)가 새벽을 재촉하고 붉은 기가 바람에 흔들리니 제기(祭器)를 거두고 장지로 떠나심을 고하네. 화려한 도성을 뒤로 하고 동쪽으로 향하니, 대여(大輿)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시냇물도 느릿느릿 흐르네. 의장(儀仗)은 쓸쓸한 기색을 띠고 아득한 신유(神遊)를 어찌 따르리오. 오호라. 슬프도다. 물도 굽이 돌고 구름도 막히며 만상(萬象)이 차고 이지러지면 수명의 장단(長短)을 헤아리면 실로 고금이 같다네. 90수명을 꿈꾸어도 징험(徵驗)할 수 없고 세상의 괴로움을 다스려주니 누구를 탓하리오. 그러나 성한 덕(德)이 두루 미쳤으니 백서의 마음에서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훌륭한 덕을 보잘것없는 말로 쓰지만 영원히 남겨지리라. 오호라. 슬프도다."

하였다. 【전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 민영휘(閔泳徽)가 제술하였다.】


  • 【원본】 8책 17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3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哀冊文曰: 維歲次丙寅三月辛未朔十四日甲申, 皇兄純宗文溫武寧敦仁誠孝皇帝昇遐于昌德宮大造殿。 以是年五月庚午朔初二日辛未, 永遷于裕陵, 禮也。 鳳馭將啓, 蜃衛旣同, 萬姓雷號, 百龍雲從。 辭九重之靚穆, 就玄宮之冥漠, 攀龍髯而莫及, 望帝鄕而愈邈。 恭惟我嗣王殿下, 義重繼體, 誠篤因心。 慟厚夜之難晨, 柰靈辰之不淹。 爰徵徽於瑤鐫, 冀布昭於崇深。 其辭曰: 於赫晠朝, 奕葉重光。 甲年震夙, 五曜凝祥。 天日其表, 岐嶷克彰, 八域延頸, 寔我元良。 寧考止慈, 身敎物誨, 蚤正貳極, 顒顒瑜佩。 沖齡齒學, 觀聽有藹, 溫文緝熙, 一有千載。 攝祼太室, 舞綵長樂, 金泥玉檢, 揄揚灝噩。 頌四重, 不圖復作, 毓德斯久, 中外孚若。 勤始勌, 華方協。 固讓內禪, 再三籲泣, 謳歌攸屬, 勉承鴻業。 神人胥依, 精一允執, 維大維艱, 厥時適丁。 衣宵食旰, 心不遑寧, 推赤包荒, 臣隣盈廷。 垂拱面南, 懋循大經, 紛聲華色, 耳目不邇。 元元其蘇, 若恫在己, 崇賢宥過, 渙宣綸旨。 親耕與蠶, 先王觀比, 不憚祁寒, 巡方轍環。 南至于萊, 西至于灣, 鑾蹕所停, 有詢有頒。 士女呼嵩, 欣瞻天顔, 至德蕩蕩, 氣數茫茫。 穆然頣閒, 仁聞猶揚, 振振屬籍, 恩渥非常。 爰及暬御, 簪履不忘, 旃蒙之慟, 薪膽三紀。 天心靡悔, 太上憑几, 滕廬深墨, 前後一揆。 庭開紫黃, 障面不視, 璇幀如臨, 事生有道。 日用百爲, 巨細必報。 朝陵曁辭, 亦虔口告, 萬乘曾閔, 玆焉允蹈。 自昔西樓, 號曰靈壽, 四聖題牒, 乃趾厥後。 黃髮鳩杖, 獻醻左右, 旣欽繼述, 亦蘄悠久。 胡臺駘之爲祟, 遽馮相之告祲? 紛蒼黃於同琩, 徒延佇於弓劍。 嗚呼哀哉! 宮車已晏, 綴衣肆陳, 金薤零露, 黼扆生塵。 象玉音兮如昨, 瞻珠旒兮安在? 慘衰絶之纍纍, 籲九天而莫採。 嗚呼哀哉! 筮彼鮒隅, 密邇洪陵。 星土旣叶, 神理足憑。 知幽明之一致, 倘晨昏之無曠。 仍昭寢之魯祔, 儼玉欄之共賞。 嗚呼哀哉! 銅漏催曉, 丹旐引風, 撤祖斝而告遷, 背綺城而向東。 龍驂兮卷跼, 川原兮委遲。 澹仙仗之寡色, 杳神遊之曷追? 嗚呼哀哉! 水逝雲徂, 萬象盈缺。 諒脩短之有數, 固今古之同轍。 夢九齡而無驗, 理糾錯而孰詰? 然盛德之浹淪, 詎人心之可諼。 托微辭於琬琰, 窮萬劫以長存。 嗚呼哀哉! 【前奎章閣提學閔泳徽製】


    • 【원본】 8책 17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3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