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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3권, 순종 2년 1월 31일 양력 4번째기사 1909년 대한 융희(隆熙) 3년

숭령전, 숭인전, 을지문덕의 사당 등에 치제하도록 하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나온 성인인데 사당의 모습이 고요하다. 숭령전(崇靈殿)에 평안남도 관찰사(平安南道觀察使)를 보내어 치제(致祭)하도록 하라. 듣건대 의복과 신발은 강동(江東)에 보관하고 있으며 지금 그것을 가리켜 단군릉(檀君陵)이라고 하는데, 잡초가 우거진 채로 거두지 않고 있다고 하니 높이 받드는 예차가 전혀 없다. 이제부터 관리하고 수호하는 절차를 마련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어진 성인의 8가지 가르침은 인류의 문화를 열어놓아 만대토록 그 덕을 입게되었다. 숭인전(崇仁殿)에 평안남도 관찰사를 보내어 치제하게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여기는 고구려의 옛 강토이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웅대한 계책을 써서 적의 공격을 꺾고 나라의 위력을 떨쳤으니 천년이 지난 먼 훗날에도 그 영명한 기개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무덤을 찾아보고 보수하며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스승을 계승한 것이 이미 바르고 학문이 특히 심오하여 평안도 사림(士林)들의 모범이 되었으니 증 판서(贈判書) 선우협(鮮于浹)에게 특별히 시호를 내려주는 은전을 베풀 것이다. 경서를 연구하고 행실이 독실하여 근래 선비들의 모범으로 되었으니 고(故) 집의(執義) 박문일(朴文一)과 고 군수 박문오(朴文五)에게 모두 벼슬을 더 추증하는 은전을 베풀 것이다."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양의공(襄毅公) 김경서(金景瑞)양무공(襄武公) 정봉수(鄭鳳壽)는 충성과 용맹이 특출하여 의연히 평안도의 명망을 나타내었으니 그들의 무덤에 각각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하였다.


  • 【원본】 4책 3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28면
  • 【분류】
    풍속-예속(禮俗) / 역사-전사(前史)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

    詔曰: "東方首出之聖, 廟貌有侐。 崇靈殿, 遣平安南道觀察使致祭。 聞衣履之藏, 在江東地, 至今指點謂檀君陵, 而無沒不治, 殊欠崇奉之禮。 其自今封植守護之節, 磨鍊擧行。" 又詔曰: "仁賢八條之敎, 肇啓人文, 萬世永賴。 崇仁殿, 遣平安南道觀察使致祭。" 又詔曰: "此高麗舊疆也。 緬懹乙支文德, 雄圖摧敵, 國威用張, 千載雖遠, 英氣不昧。 其墓地訪問修治, 令地方官致祭。" 又詔曰: "師承旣正, 學問尤邃, 爲關西士林之所矜式, 贈判書鮮于浹, 特施節惠之典。 窮經篤行, 爲近來人士之模楷, 故執義朴文一、故郡守朴文五, 竝施貤贈之典。" 又詔曰: "襄毅公 金景瑞襄武公 鄭鳳壽, 忠勇尤著, 毅然爲西山之望, 各其墓, 遣地方官致祭。"


    • 【원본】 4책 3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28면
    • 【분류】
      풍속-예속(禮俗) / 역사-전사(前史)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