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왕 은을 황태자로 책봉하다
태황제(太皇帝)를 배봉(陪奉)하고 중명전(重明殿)에 나아가 원임 의정(原任議政) 이근명(李根命)·민영규(閔泳奎),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 이윤용(李允用), 내부 대신(內部大臣) 임선준(任善準), 탁지부 대신(度支部大臣) 고영희(高永喜), 군부 대신(軍部大臣) 이병무(李秉武), 법부 대신(法部大臣) 조중응(趙重應), 학부 대신(學部大臣) 이재곤(李載崑), 농상공부 대신(農商工部大臣) 송병준(宋秉畯), 중추원 의장(中樞院議長) 서정순(徐正淳), 부의장(副議長) 성기운(成岐運), 장례원 경(掌禮院卿) 신기선(申箕善), 부경(副卿) 조충하(趙忠夏), 시종원 경(侍從院卿) 민병석(閔丙奭), 특진관(特進官) 이중하(李重夏)를 소견(召見)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짐(朕)이 종묘 사직(宗廟社稷)의 큰 계책을 묻고 의논하기 위하여 이렇게 소접(召接)한 것이다."
하였다. 이어서 하교하기를,
"요즘 태황제의 밝은 명을 받들고서 황제의 자리를 이어 정사를 보니 조심스러운 마음이 날로 깊어만 간다. 국가의 영원한 계책은 바로 나라의 대를 이을 사람을 일찌감치 정하는 데 있다. 그러나 짐은 나이가 마흔에 가까운 데다가 겸하여 또 병이 많아 뒤를 이을 아들을 볼 가망이 점점 없어져간다. 그러므로 이미 태황제에게 여쭈어 공손히 처분을 받았다. 장차 황태자를 세워 종묘 사직에 관한 큰 계책을 정하려고 하는데,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이완용이 아뢰기를,
"이번에 이 성상의 하교는 실로 종묘 사직을 억만년토록 보전하기 위한 큰 계책입니다. 그러나 폐하의 나이가 한창이고 곤전(坤殿)의 덕의(德儀)가 드러났으니 많은 자손을 보게 될 경사를 바야흐로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이제 갑자기 이런 하교를 받들게 되니 신들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원임 의정에게 하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의 의견은 과연 어떠한가?"
하니, 이근명이 아뢰기를,
"어진이를 선택하여 미리 세우는 것은 역대와 우리 왕조에 비록 상고할 만한 것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은 몇 년 만 지나면 장차 많은 자손을 볼 경사가 있게 될 것이므로 신하와 백성들이 바야흐로 이것을 크게 축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뜻밖의 하교를 받드니 신들은 당황해서 서로 돌아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민영규가 아뢰기를,
"신은 이 특진관(李特進官)이 아뢴 것과 과연 다름이 없습니다. 다시 연석에 나온 여러 신하들에게 하문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고, 임선준이 아뢰기를,
"신의 의견도 달리 여쭐 것이 없습니다."
하고, 신기선이 아뢰기를,
"세자를 반드시 일찌감치 정하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황자(皇子)가 아직 없는데 세자를 정하라는 명을 내린 것은 바로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본 조에도 비록 고사(故事)가 있기는 하지만 국초의 일은 원례(援例)로 삼기 어렵고 중엽에 경종(景宗)과 영조(英祖) 때에 물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황태자를 정하는 일이 더디다고 하교하셨지만 신하와 백성들은 바야흐로 전하가 많은 자손을 보는 경사를 바라고 있으니, 이번의 조치는 너무나 이른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짐이 벌써 헤아린 것이 있으니 경들은 고집할 필요가 없다. 국조의 고사를 살펴보면 어진이를 택하는 예가 있었다. 지금 두 친왕(親王) 가운데서 어진이를 택하여 황태자로 정해야 하겠으니, 경 등은 모름지기 어진이를 택해서 보고하라."
하니, 이완용이 아뢰기를,
"아들을 알고 신하를 아는 데에는 임금과 아버지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니, 폐하께서 태황제에게 여쭈어 간택하여 하교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고, 이근명이 아뢰기를,
"오직 성상의 뜻에 달려 있는데 신이 어찌 감히 망령되게 대답하겠습니까?"
하고, 민영규가 아뢰기를,
"덕량(德量)과 기량(器量)이 어떤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먼저 굽어 살피고 계실 것이니, 어진이를 선택하는 것은 오직 폐하의 간택에 달렸습니다."
하였다. 태황제가 하교하기를,
"영왕(英王)은 타고난 자질이 의젓하고 효성과 우애가 일찍이 소문났으며 나라 사람들도 다 기대하고 있으니 지금 황태자로 정할 수 있다."
하니, 이완용이 아뢰기를,
"성상의 간택이 이미 정해졌으니 하늘의 뜻에도 진실로 부합할 것입니다. 신들은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고, 이근명이 아뢰기를,
"영친왕(英親王)은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으며 온화하고 점잖아서 좋은 소문이 일찍이 드러났는데, 폐하의 뜻이 정해졌으니 실로 종묘 사직과 백성들의 복입니다. 몹시 경사스럽고 다행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제왕의 집에는 국통(國統)을 중시하기 때문에 옛날 정종조(定宗朝)에도 태종 대왕(太宗大王)을 세자로 책봉하였으니 마음으로 전수하는 법을 징험할 수 있다. 지금은 영왕을 황태자로 책봉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완용이 아뢰기를,
"황통(皇統)은 인륜의 계통보다 중합니다. 때문에 열성조(列聖朝)에서도 이미 이런 전례가 있었으니 성상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하고, 이근명이 아뢰기를,
"왕국 초의 일은 매우 오래되어서 상고하기 어려워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선대의 사업을 잘 이어나가는 의리로 볼 때 어찌 다시 아뢸 것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신기선(申箕善)이 아뢰기를,
"처분은 이미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조서를 내리는 것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예를 행한 뒤에 하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 같습니다."
하고, 이완용이 아뢰기를,
"비록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예식을 행하기 전이라도 이미 반포하였고 또 연호(年號)도 고쳤으니, 황태자를 정하는 조서를 내려도 안 될 것이 없을 듯합니다."
하니, 태황제가 하교하기를,
"비록 오늘 조서를 내리더라도 책봉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예식을 한 뒤에 거행해도 안 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 【원본】 2책 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8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七日。 陪奉太皇帝, 御重明殿, 召見原任議政李根命·閔泳奎、內閣總理大臣李完用、宮內府大臣李允用、內部大臣任善準、度支部大臣高永喜、軍部大臣李秉武、法部大臣趙重應、學部大臣李載崐、農商工部大臣宋秉畯、中樞院議長徐正淳、副議長成岐運、掌禮院卿申箕善、副卿趙忠夏、侍從院卿閔丙奭、特進官李重夏。 上曰: "朕以宗社大計, 欲爲詢議, 有此召接矣。" 仍敎曰: "近奉太皇帝明命, 踐位聽政, 兢惕日深。 惟是國家長遠之計, 乃在於早定國本, 而朕年近四十, 兼又多病, 嗣續之望漸退。 故已稟白于太皇帝, 恭承處分。 將欲建儲, 以定宗社大策矣, 卿等之意何如?" 完用曰: "今此聖敎, 寔爲宗社萬億年大計, 而陛下春秋方富, 坤殿德儀彰著, 麟趾螽斯之慶, 顒俟方深, 而今怱承此下敎, 臣等無以仰對矣。 下詢于原任議政, 恐好矣。" 上曰: "卿等之意, 果何如耶?" 根命曰: "擇賢豫建, 歷代及國朝, 雖多有可稽, 蓋出於不得已也。 今則差過數年, 將有螽斯之慶, 臣民方以是顒祝。 忽伏承意外下敎, 臣等瞠然相顧, 不知所以仰對矣。" 泳奎曰: "臣與李特進所奏, 果無異同。 更爲下詢于登筵諸臣, 恐好矣。" 善準曰: "臣之意, 亦無他仰稟矣。" 箕善曰: "建儲必早, 從古伊然。 然今未有皇子, 而下建儲之命, 則乃非常之典也。 本朝雖有故事, 國初事, 難以援例。 中葉景宗、英祖時, 固有是擧。 然陛下雖以嗣續之遲爲敎, 而臣民則方仰企螽斯之慶, 此擧恐太早矣。" 上曰: "朕已有斟量矣, 卿等不必持難也。 謹按國朝古事, 有擇賢之禮。 今二親王中, 當爲擇賢而建儲矣。 卿等須擇賢以聞。" 完用曰: "知子知臣, 莫如君父。 陛下仰稟于太皇帝, 簡心下敎, 不勝顒祝矣。" 根命曰: "惟在聖意, 臣何敢妄對乎?" 泳奎曰: "德量、器度之如何, 必先下燭, 擇賢惟在聖簡矣。" 太皇帝敎曰: "英王天質岐嶷, 孝友夙彰, 國人亦皆屬望, 今可以建儲也。" 完用曰: "聖簡已定, 天意允合, 臣等不勝歡忭之忱矣。" 根命曰: "英親王孝悌溫文, 令聞夙著, 聖意攸定, 實爲宗社生靈之福。 不勝萬萬慶幸。" 上曰: "帝王家國統爲重, 故昔在定宗朝, 冊太宗大王爲世子。 可徵心法。 而今以英王, 冊封皇太子可也。" 完用曰: "皇統重於倫統。 故列聖朝已有此例, 聖敎至當矣。" 根命曰: "國初事, 久遠難稽, 莫詳其所以然。 仰惟紹述之義, 何容更達耶?" 箕善曰: "處分雖已定, 正詔則俟卽位行禮之後, 恐爲允合次序矣。" 完用曰: "雖卽位禮式之前, 旣已頒布, 且已改元, 建儲降詔, 恐無不可也。" 太皇帝敎曰: "雖今日降詔, 而冊封則待卽位之後, 宜無不可也。"
- 【원본】 2책 1권 7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8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