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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44권, 고종 41년 4월 27일 양력 1번째기사 1904년 대한 광무(光武) 8년

서부에 숭의묘를 새로 세우다

숭의묘(崇義廟)를 봉심(奉審)한 대신(大臣) 이하를 소견(召見)하였다.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 이근명(李根命), 장례원 경(掌禮院卿) 이근수(李根秀), 비서원 경(祕書院卿) 이용직(李容稙)이다.】 숭의묘(崇義廟)를 봉심한 뒤 복명(復命)하였기 때문이었다. 상이 이르기를,

"사당 건물이 남관왕묘(南關王廟)에 비해 어떻던가?"

하니, 이근명(李根命)이 아뢰기를,

"넓게 트인 것이 남관왕묘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세 사람의 결의가 천 년 변치 않을 큰 의리여서 짐(朕)이 흠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당을 새로 세웠다."

하니, 이근명이 아뢰기를,

"화본(畵本)을 보았는데 영웅호걸의 기품이 늠름한 것이 살아있는 듯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청(淸) 나라에서는 상(象)을 만들어 금번에 화상(畵像)을 보내왔다. 소상(塑像)이나 화상이 모두 어느 시대에 시작되었는가?"

하니, 이근명이 아뢰기를,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문묘(文廟)에도 소상을 모셨었는데, 명(明) 나라 재상 계악(桂萼)이 주달(奏達)하여 소상을 없애고 신위를 만들었습니다. 화상은 경전(經傳)에 은(殷) 나라 부열(傅說)이 똑같은 모습이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하였다.


  • 【원본】 48책 44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26면
  • 【분류】
    건설-건축(建築) / 왕실-종사(宗社) / 예술-미술(美術)

二十七日。 召見奉審大臣以下。 【宮內府特進官李根命、掌禮院卿李根秀、秘書院卿李容稙】 崇義廟奉審後復命也。 上曰: "廟宇比諸南關王廟何如也?" 根命曰: "其弘敞, 不下於南廟矣。" 上曰: "三人結誼, 千載大義, 朕所欽慕, 故創建此廟也。" 根命曰: "瞻審畫本, 英烈之氣, 澟然如生矣。" 上曰: "淸國則塑像, 而今番以畫像摹來矣。 塑像、畫像, 皆昉於何代也?" 根命曰: "雖未詳知, 文廟亦是塑像, 而之宰臣桂萼奏, 撤其塑像, 仍造位版。 而畫像則見於經傳者, 有 傅說惟肖之像矣。"


  • 【원본】 48책 44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26면
  • 【분류】
    건설-건축(建築) / 왕실-종사(宗社) / 예술-미술(美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