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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43권, 고종 40년 10월 18일 양력 2번째기사 1903년 대한 광무(光武) 7년

전 비서원 승 곽종석을 소견하다

전 비서원 승(前祕書院丞) 곽종석(郭鍾錫)을 소견(召見)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발돋움하며 기다리던 끝에 오늘 풍채를 보니 짐(朕)의 마음이 확 트인다. 순수함으로 가득한 기상이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름지기 평생에 배운 바를 말하여 짐의 정사를 도움으로써 크나큰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보잘것없는 신이 그저 허명(虛名)을 도적질하여 폐하(陛下)께서 잘못 아시게 하였으니 지극히 황송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야인의 복장으로 등연(登筵)하는 것은 드문 예이다. 현자를 예우하는 입장에서 이미 바라는 것은 반드시 따라 주었으니, 또한 마땅히 속마음을 숨김없이 개진(開陳)하여 짐의 마음에 보답하도록 하라."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신은 본래 산야의 비부(鄙夫)로서 학식이 얕고 재주가 졸렬하여 애당초 숨기거나 내놓아 말할 만한 것이 없으니 시골로 돌아가 미천한 분수에 편안한 것이 신에게는 다행한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학문이 깊고 도량이 넓어 몸은 초야에 있어도 명성이 조야(朝野)에 퍼져 실컷 들어온 지 오래다. 어째서 겸손한 말을 하는가?"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한갓 허명이 알려졌으니 더욱 죄송합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법은 이미 폐하께서 환히 밝게 아시는 바이니, 어찌 신의 아룀을 기다리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천하의 국가를 다스림은 중용의 9경(九經)과 대학의 8조목(八條目)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별다른 도리가 없다. 책의 절반만 사용해도 시국의 어려움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폐하께서 지난날 내리신 칙유(勅諭)를 읽어보니, ‘내가 밤낮으로 훌륭한 정치를 구한 지 40년이 되나 국사(國事)가 날로 잘못되어간다.’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의혹이 없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훌륭한 정치를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찌 40년 동안 훌륭한 정치를 구해 왔는데 아직도 훌륭한 정치의 효험이 없었겠습니까? 대개 임금의 마음이 매양 어려운 시기에는 깨우치고 훈계하지만 편안한 시기에는 안일해져서 심법(心法)이 끊기고 정령(政令)이 무상(無常)하여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날로 어렵게 되어 갑니다. 그러니 나라의 흥망이 어찌 ‘심(心)’ 한 글자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폐하께서 오직 마음에 돌이켜 구하시기를 엎드려 바랄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훌륭하구나, 그 말이여! 참으로 치국(治國)의 좋은 약이로다."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신이 ‘심’이라는 글자로 시작하였습니다만, 요(堯)·순(舜)의 훌륭한 정치도 또한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이라는 16자(字), 즉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한결같아야 그 중도를 잡을 수 있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심’은 하나지만 그것이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충효경자(忠孝敬慈)에서 발현되는 것이 도심(道心)이며, 음식 의복(飮食衣服)과 성색 화리(聲色貨利)의 사사로움에서 발현되는 것이 인심(人心)입니다. 폐하께서는 하나의 생각에서도 반드시 인심과 도심의 공사(公私)의 단서를 살펴서 그것이 도심의 공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면 반드시 확충시켜 밀고 나가고, 그것이 인심의 사적이라는 것을 알면 반드시 억제하여 없앤다면, 요·순의 정치를 아마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진술한 것을 들으니 말이 의미가 깊어 마음이 환하게 개발(開發)된다. 시국을 건질 요체도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마땅히 가슴에 새기고 힘써 시행할 것이다."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성유(聖諭)가 이러하니 신민(臣民)들의 크나큰 다행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세상을 구제할 방책을 깊이 품고 임금께 충성하고 백성들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선비의 일이다. 시골에 묻혀 자기 몸만 선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신에게 진실로 세상을 구제할 방책이 있다면 어찌 티끌만큼이라도 도와드려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아뢴 데에서 이미 속생각을 털어놓았습니다. 더는 남아있는 말이 없으니 향리(鄕里)에 돌아가 본분이나 지키는 것이 소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어려운 때를 당하여 위태로움이 조석 간에 있는데 적임자를 구하지 못하면 누구와 더불어 정치를 하겠는가? 옛날 유현(儒賢) 가운데는 시국을 걱정하고 출사(出仕)한 사람들이 많았다. 어찌하여 본래의 분수를 고집하고 사직하고 돌아가겠다고만 하는가? 밤낮으로 짐의 걱정하며 애쓰는 뜻에 대해서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면 어찌 의리와 명분에 허물이 아니겠는가?"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설령 신에게 한두 가지 천박한 소견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폐하께서 다 아는 바이고, 그 밖에는 만 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기이한 묘책이 더는 없습니다. 단지 영화를 탐내고 녹을 바라서 조정의 반열을 더럽힌다면 또한 성세(聖世)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임자가 있으면 그 말을 쓸 것이다. 말해도 쓰지 않는다면 짐이 무엇 때문에 먼 곳의 사람을 불렀겠는가?"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시무(時務)에 대해서는 만의 하나라도 신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는 대경(大經)과 대법(大法)이 오직 마음에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앞서 진술하였습니다. 오늘의 걱정거리는 외환(外患)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정(內政)이 닦여지지 않은 데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밤낮으로 이에 근념(勤念)하시고 정신을 가다듬어 정치에 힘쓴다면 외환은 족히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짐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적임자를 얻지 못하면 짐이 혼자 무엇을 하겠는가? 방책을 다 진술하여 시국의 어려움을 함께 구제하고 국사(國事)를 함께 걱정함으로써 구구한 소망에 부합되게 하라."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신이 진술한 하나의 ‘심’이란 글자는 별건(別件)의 일이 아니라 전대 성현들의 글에 갖추어 실려 있는 것입니다. 글은 이 마음을 유지하고 지혜를 증익(增益)시켜 주는 것입니다. 천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글을 읽지 않으면 속마음이 띠처럼 폐색되고 일에 임해서는 미혹되어 모든 것이 절도에 맞지 않게 됩니다. 하물며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의 큰 정치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폐하께서 경연(經筵)에 나가시지 않은 지 이미 오래이고 황태자(皇太子)의 서연(書筵)도 따라서 해이해졌다고 하니, 혹 국사가 다난하여 겨를이 없는 탓이어서입니까? 글이란 치국(治國)의 근본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유신(儒臣)을 초치(招致)하여 경연(經筵)에 두어 득실(得失)을 묻고 의리를 강구하여 폐하의 덕을 돕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박식하고 도덕이 높은 선비를 뽑아 원자를 보도(輔導)하는 책임을 맡겨서 보고 듣고 익히는 것들이 하나라도 올바른 것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게 하면 국가의 근본이 튼튼해지고 영명(永命)을 간구할 수 있으니, 이는 실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끝없는 복입니다. 근본을 튼튼히 하고 말단(末端)을 다스리면 어떤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연(經筵)과 서연(書筵)은 근래에 과연 일 때문에 열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마땅히 힘쓰도록 하겠다. 지금 국사가 위급하여 마땅히 할 말이 있을 것이나 그 방책을 말하지 않으니 짐의 마음이 울적하다. 말을 하면 짐이 마땅히 반드시 따를 것이니 짐의 좌우에서 날마다 치국 안민(治國安民)의 방책을 올려라."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신에게 만일 치국 안민의 방책이 있으면 어찌 아뢰지 않겠습니까? 치국의 요체는 비록 옛날의 명신(名臣)과 뛰어난 재상이라도 부지런히 힘쓴 것이 ‘심’ 한 글자뿐이었습니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안으로 법을 지키는 세신(世臣)과 보필하는 어진 선비가 없고, 밖으로 적국이나 외환이 없으면 나라는 항상 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국사가 어렵고 위태로운 것은 바로 하늘이 우리 폐하께 경고를 보여 우리나라를 크게 진작(振作)시키는 기회로 삼아서입니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신을 가다듬어 정치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현인(賢人)을 등용한 연후에 바야흐로 정치를 말할 수 있다. 겸양하지 말고 짐의 불민함을 도우라."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만일 인재를 등용하신다고 하면 초야에 현량한 사람과 방정한 선비가 적다고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신과 같이 어리석고 용렬한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줄곧 겸손하게 사양하니 끝내 짐의 목마른 듯한 기대에 부합되지 않는다. 고집부리는 것이 어찌 이와 같은가? 오늘 이미 접견을 하였으니 짐이 제수한 관직을 어찌 버리고 간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재삼 내리는 성유(聖諭)가 이토록 정중한데 신이 어찌 감히 속이겠습니까? 하늘이 내린 지위와 관직은 천하의 공기(公器)이니 폐하께서 사적으로 쓸 것이 아닙니다. 재목이 못 되는 신이 지위와 관직을 탐내어 앉아 있으면 어진 이를 등용하는 길이 이 때문에 막히고 사방의 선비들이 틀림없이 발을 싸매고 멀리로 달아날 것입니다. 사적인 분수도 편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진 이를 가로막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에 더욱 의당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감히 받들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관작이란 하나의 명기이니, 적임자가 아니면 줄 수 없다. 내가 어찌 마땅히 주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주겠는가?"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성교(聖敎)가 이와 같으니 더욱 황공함을 이길 수 없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나 말, 사슴은 제각기 본성이 있으니 사슴을 몰아 밭을 갈게 하거나 개나 말을 놓아 산에 있게 하면 모두 그 본성을 잃어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에 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성인의 덕은 하나의 사물이라도 그 마땅한 바를 얻지 않음이 없게 하니, 폐하께서는 성찰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말이 진실로 옳다. 적당한 재목이 아니면 어디에 쓰겠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사양하지 말고 치국과 안민의 방책을 진술하도록 하라"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옛날의 현인들은 모두 가슴 속에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할 방책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출사하여 정치를 돕는 것은 진실로 사양하지 않을 바입니다. 진(晉) 나라의 은호(殷浩)와 같은 사람은 세상에 허명(虛名)을 날려 마침내 나라를 그르쳤고 한(漢) 나라의 번영(樊英)은 스스로 무능함을 알고 힘써 청하여 시골로 돌아갔으니, 두 사람이 모두 애석한 일이지만 신은 번영의 과오가 작고 은호의 죄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유자(儒者)의 복장으로 접견하는 것은 상례(常例)가 아니라서 관복(官服)을 내려준 것이니 입도록 하라."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단지 신의 몸만을 영화롭게 하려고 편벽되게 큰 은혜를 베푸니, 폐하께서 공기를 아끼지 않는 이유를 신은 실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찌 잘못이라는 말인가? 마땅한 인물임을 알고 마땅한 관직을 제수하는 것이다. 무슨 사양할 것이 있겠는가?"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신은 스스로를 잘 압니다. 산야에 퇴거하여 미천한 분수라도 굳게 지킨다면 성은(聖恩)을 만 분의 일이라도 갚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처럼 고집을 부리지만 짐의 뜻은 이미 정해 졌으니 결코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하니, 곽종석이 아뢰기를,

"부모의 은혜는 언제나 두루 미치지 않는 적이 없지만 갓난아이의 마음에는 혹 뜻에 맞지 않는 때도 있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울고 원망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미천한 저의 정성을 살펴 성교를 빨리 중지시켜 신의 분수를 편하게 해주어 원망하고 울지 않도록 해 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여러 날 객지 생활에 의당 피곤할 것이니, 물러가 휴식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

하였다. 곽종석이 아뢰기를,

"성교가 이러하니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하였다.


  • 【원본】 47책 43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9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인사-선발(選拔) / 의생활-관복(官服)

召見前祕書院丞郭鍾錫。 上曰: "翹企之餘, 今見風儀, 朕心豁然。 而粹盎之氣, 可見存中而著外矣。 須說平生所學, 助朕爲理, 無孤厚望焉。" 鍾錫曰: "以臣無狀, 徒竊虛名以誤天聽, 極爲惶悚。" 上曰: "野服登筵, 罕例也。 禮賢之地, 旣爲有願必從, 亦當開陳啓沃, 無或有隱, 庸答朕心可矣。" 鍾錫曰: "臣本山野鄙夫, 學識淺短, 才智鹵劣, 初無隱顯之可言, 則歸伏畎畝之間, 以安微分, 於臣幸矣。" 上曰: "學問邃密, 器宇恢弘, 身處林樊, 名顯朝野, 厭聞之日久矣。 安用巽辭爲也?" 鍾錫曰: "徒以虛名聞達, 尤爲罪悚。 而治天下之法, 則已有聖鑑之所燭矣, 豈待臣之仰達乎?" 上曰: "爲天下國家, 不外乎九經、八條, 別無他箇道理。 只用半部書, 可以開濟時艱矣。" 鍾錫曰: "臣竊伏讀頃日聖諭, 有曰: ‘朕宵旰求治四十年矣, 而國事日非’臣之愚見, 不能無疑。 陛下苟有求治之心, 則豈有四十年求治而尙無治效乎? 蓋人主之心, 每箴戒於艱虞之日, 而或逸豫於宴安之時, 以致心法間斷, 政令無常, 自不覺其日趨於艱絀。 然則國之興替, 其不在於心之一字乎? 伏願陛下惟反求諸心而已。" 上曰: "旨哉言乎! 眞治國之藥石也。" 鍾錫曰: "臣旣以一心字發端矣。 之治, 亦不過‘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十六字而已。 心, 一也, 而其發於仁義、禮智、忠孝、敬慈者, 道心也, 發於飮食、衣服、聲色、貨利之私者, 人心也。 陛下於一念之間, 必審其人道、公私之端, 知其爲道心之公也, 則必擴充而推行之, 知其爲人心之私也, 則必克制而遏絶之, 則之治, 庶可以致矣。" 上曰: "今聞所陳, 言甚有味, 渙然開發。 救時之要, 亦不出於此, 當佩服而力行矣。" 鍾錫曰: "聖諭如是, 臣民幸甚。" 上曰: "蘊抱開濟之策, 致君澤民, 儒者之事也。 其或固守東岡, 獨善其身, 則未知其可矣。" 鍾錫曰: "臣苟有開濟之策, 豈不願報效涓埃以答萬一也? 今此所奏, 旣陳衷曲, 更無餘蘊, 則還歸鄕里以守本分, 是所伏望也。" 上曰: "當此艱虞, 危在朝夕, 不得其人焉, 則孰與爲治乎? 古之儒賢, 多有憂時出仕者。 何乃固執素守, 徒言辭歸? 若未有念及於宵旰憂勤之意, 玆豈非義分之攸欠乎?" 鍾錫曰: "使臣或有一二芻蕘之見, 已在聖鑑之所畢燭, 其他則更無奇謀異策裨益萬一者。 若徒貪榮戀祿, 玷汙朝班, 則亦不爲聖世之累乎?" 上曰: "有其人, 則用其言; 言如不用, 朕何招擧遠方乎?" 鍾錫曰: "時務之萬一, 臣實不知。 然治天下之大經、大法, 惟在於心, 則已悉於前陳。 而今日之憂, 不在外患, 在於內政之不修矣。 惟陛下宵旰勤念於此, 勵精圖治, 則外患不足慮也。" 上曰: "朕非不知, 不得其人, 朕獨何爲? 可極陳方策, 同濟時艱, 分憂國事, 以副區區之望。" 鍾錫曰: "臣所陳一心字, 不是別件事, 備載於前聖賢書。 書所以維持此心、增益智慮者也。 自天子以至庶人, 不讀書則中心芧塞, 臨事迷惑, 皆不中節, 而況治平之大政乎? 臣聞陛下不御經筵已久, 東宮之書筵, 從而弛廢。 是或緣於國事多艱有所未遑者歟? 書者, 治國之本。 伏願招致儒臣, 置諸經幄以咨訪得失, 講究義理以裨益聖德。 且選博文有道之士, 以備輔導元子之責, 使見聞習服無一不出於正, 則國本固而永命可祈, 此實宗社無疆之休。 固其本而治其末, 則何難之有?" 上曰: "經筵與書筵, 則近果因事未遑。 然從今以後, 當勉之矣。 方今國事之危急, 宜有可言, 而不言其方策, 朕心庸鬱矣。 其有所言, 則朕當必從, 而在朕左右, 日進爲國安民之策。" 鍾錫曰: "臣若有爲國安民之策, 豈敢不仰達乎? 治國之要, 則雖古之名臣碩輔, 其所勤勤, 只在一心字而已。 孟子曰: ‘入而無法家拂士, 出而無敵國外患者, 國恆亡。’ 然則今日國事之艱危, 乃皇天所以示警於我陛下, 而爲我國大振作之機會也。 惟陛下無失此機, 勵精圖治焉。" 上曰: "得用賢人, 然後方可言治。 勿爲謙讓, 以補朕不聰。" 鍾錫曰: "陛下若用人才, 則山林之間, 賢良之人、方正之士, 不患不多。 如臣庸愚, 何用之有?" 上曰: "一向遜讓, 終不副朕如渴之望。 牢執固滯, 何至若是? 今已接見, 則朕授之職, 豈可言去?" 鍾錫曰: "再三聖諭若是鄭重, 臣豈敢欺罔乎? 天位天職, 是天下之公器, 非陛下之所可私也。 以臣不材, 冒縻位職, 則賢路以杜, 四方之士, 必將裹足以遠遁矣。 不惟私分之靡安, 其於妨賢病國, 尤當何如哉? 臣不敢奉膺。" 上曰: "官爵, 一名器也, 非其人則不與。 朕豈授之於不當與之人乎?" 鍾錫曰: "聖敎如是, 尤不勝惶懍, 不知措躬之地。 而犬馬、麋鹿各有其性, 則驅麋鹿而耕田, 放犬馬而在山, 則皆失其本性, 而有害於天地生物之仁矣。 聖人之德, 無一物不得其所。 惟陛下省察焉。" 上曰: "言固然矣。 若非其材, 何用之有? 更勿煩辭, 勉陳治安之策。" 鍾錫曰: "古之賢人, 皆胸抱經濟之策, 故出而佐治, 固所不辭。 至若殷浩, 負世虛名, 竟至僨國; 樊英, 自知無能, 力請還山。 二者俱可吝也, 而臣以爲樊英之過, 小, 殷浩之罪, 大矣。" 上曰: "儒服登筵, 此非常例, 故賜之官服。 著之可也。" 鍾錫曰: "但榮耀臣身, 偏垂重恩, 陛下之不惜公器, 臣實不知也。" 上曰: "一何誤也? 知其人而授其官者也。 何辭之有?" 鍾錫曰: "臣自知甚明, 退去山野, 固守微分, 則亦可謂報答聖恩之萬一也。" 上曰: "堅執雖如是, 朕志已定, 必不聽從矣。" 鍾錫曰: "父母之恩, 無時不周洽, 而赤子之心, 或有不適意而失其圖則泣之怨之。 伏願陛下俯察微悃, 亟止盛敎, 以安臣分, 毋使之怨且泣焉。" 上曰: "多日旅居, 必當勞憊, 退而休息, 更加思之也。" 鍾錫曰: "聖敎至此, 益切感激矣。"


  • 【원본】 47책 43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9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인사-선발(選拔) / 의생활-관복(官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