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웅렬이 사직을 청하고 군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다
의정부찬정 군부대신(議政府贊政軍部大臣) 윤웅렬(尹雄烈)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면직(免職)을 청하는 마당에 군무(軍務)에 대해 함부로 논해서는 안 되지만, 새로 구비한 군함(軍艦) 양무호(揚武號)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이미 구매한 것으로 다시 계약을 파기하기가 어려운 만큼 그냥 바다에 매어두는 것은 비용도 갈수록 많이 들고 배도 갈수록 파손이 될 것이니 매우 답답합니다. 이에 대해 조처할 방법을 서둘러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천하 각국이 서로 관계를 가지며 경쟁하고 있으므로 해군(海軍)과 전함(戰艦)이 제압을 하고 방어를 하는 좋은 계책이라고 여기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당당한 우리 대한제국(大韓帝國)은 삼면이 바다인데도 한 명의 해군과 한 척의 군함도 없어 오랫동안 이웃 나라에게 한심스럽다는 빈축을 사고 있으니 무엇이 이보다 수치스러운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논의하는 자들은 모두 말하기를, ‘국계(國計)에 여유 자금이 없으니 해군에 대해 갑자기 논의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스스로 한계를 짓는 견해입니다. 지금 해외의 여러 나라 중에 국토의 넓이와 백성들의 수가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 되는 나라에도 수십만의 해군과 수십 척의 전함이 있는데, 어찌 그 재물을 귀신(鬼神)이 가져다 주어서 그렇게 한 것이겠습니까? 절제하고 법도를 신중히 하여 알맞게 조치하여 성공하지 못할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애당초 힘도 써보지 않고 ‘우리는 할 수 없다.’고만 한다면 천하에 어찌 하루라도 이룰 수 있는 일이 있겠습니까?
신이 삼가 광무(光武) 2년 7월 5일의 조지(詔旨)를 보니, ‘해군에 대해 아직도 제도를 정하지 못한 것은 비록 겨를이 없어서이긴 하지만, 크게 소홀히 하는 문제인 만큼 상비군(常備軍)의 인원과 편성할 방법과 꾸려갈 계책을 군부로 하여금 충분히 의논하여 방도에 대해 미리 강구하게 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신은 이에 대성인(大聖人)의 미리 대비하는 방비와 근본을 확고하게 한다는 경계를 우러르고서 먼저 이미 해외를 두루 다녔습니다. 지금 군함을 새로 구비하는 것은 바로 성상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천리 먼 길을 가는 자는 문을 나가는 것에서 시작을 하는 것이니, 저 백만 명의 용감한 군대와 매우 많은 군함이 사해를 달리고 만국(萬國)을 능가하는 것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한 척의 군함을 사자마자 문득 다른 의견을 내세우니, 어찌 성상의 밝으신 조칙(詔勅)의 뜻을 받들 수 있겠습니까? 군함을 구매할 처음에 신이 비록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처음 있는 일이므로 널리 논의했어야 하는데, 의정부(議政府)에서 충분히 논의하게 하지 않고 군부에서만 계약을 맺게 하여 사체(事體)에 잘못되어 의견이 분분히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신은 생각건대, 우리 나라의 군제(軍制)에도 원래 수군과 전함이 있었으니 통제영(統制營)과 각 수영(水營)이 지금 비록 없어지긴 하였지만 그 당시 설치하고 꾸려갈 수 있었던 자본이 과연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때보다 땅이 더 작아지지 않고 재물이 더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겨우 한 척의 군함을 구비하려 하자 먼저 비용부터 걱정을 하니, 이 점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군량(軍糧)을 지급하지 못할 걱정이 없을 듯합니다. 이전에 해방영(海防營)이 강화(江華)와 부평(富平) 등지에 있고 통제영이 진남군(鎭南郡)에 있었는데, 이 두 영(營)의 관청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 강화와 진남의 두 진위대(鎭衛隊)를 해군영(海軍營)으로 바꾸고 그곳을 쓰게 한다면 나라에서 영(營)을 설치하는 비용을 내지 않고도 해군이 대략 갖추어질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해적(海賊)이 암암리에 나타나서 상선(商船)이 다니기 어려워 연해(沿海)의 어귀나 기슭에서 몰래 장사하는 폐단이 생긴 데이겠습니까? 이 군함으로 바다 여기저기를 순찰하게 한다면 비적(匪賊)들을 막아서 국경을 보호할 수가 있으니, 어찌 쓸모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군함에 필요한 1년치 비용이 매우 적지 않으니 별도로 재물을 모아야 합니다. 이전 해방영이 있을 때에는 이른바 각 포구(浦口)의 영업세(營業稅)라는 것을 해당 영에 소속시켜서 경비로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영이 폐지된 뒤에는 그대로 객주(客主)들이 이익을 보는 창구가 되고 말았으니 지금 도로 해군영에 소속시켜야 합니다. 그 밖의 해세(海稅)와 선세(船稅) 등의 항목도 본래는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 이것도 다시 영의 비용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또 통영(統營)과 수영(水營)에 속한 경비에 대해서도 더욱 더 샅샅이 조사하여 본영(本營)에서 쓰게 한다면 여유 자금이 생길 것이니, 군사를 모집하고 군함을 만드는 것을 점차 증가시켜 확장시켜 나가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우매한 신이 감히 이 일이 옳은지 시행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에 군함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경솔히 진술하였으니 더욱 더 송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굽어 살피셔서 신의 상소를 의정부에 속히 내리셔서 회의(會議)하고 품처(稟處)하게 해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제수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찌 갑자기 사직하는가? 말미(末尾)에 진술한 것은 의정부로 하여금 충분히 의논하여 품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 【원본】 47책 43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군사-지방군(地方軍) / 재정-잡세(雜稅) / 재정-군자(軍資) / 인사-임면(任免) / 군사-군정(軍政)
軍部大臣尹雄烈疏略:
臣於丐免之地, 不宜妄論戎務, 而至若新備軍艦揚武號, 旣經購來, 更難罷約, 則虛縻海灣, 費日積而船日朽, 甚可悶也。 其措處之方, 不得不急之講究者也。 方今宇內各國聯絡競爭, 莫不以海軍戰艦爲控制捍禦之長策。 而顧以堂堂帝國, 三面濱海, 而無一水兵, 無一軍艦, 久爲隣國之所寒心, 則可恥孰甚? 爲今之議者, 咸曰: "國計無裕筭, 海軍不宜遽議"此自劃之見也。 今海外列邦, 其地方民數, 不及我國之半者, 猶有數十萬水兵、數十艘戰艦, 豈其財用能神輸鬼運而致之哉? 爲其制節謹度, 措置得宜, 未有不可成之理矣。 若初不用力, 而但曰我不能焉, 則天下寧有可成之一日乎? 臣伏覩光武二年七月五日詔旨, 若曰: "海軍之尙未有定制, 雖屬未遑, 太涉疎虞, 其常備之額、編制之方、接濟之策, 令軍部爛商豫究經紀。" 臣於是有以仰大聖人綢繆之備、苞桑之戒, 先已周行於海外矣。 今此新備軍艦, 卽成就聖志之日。 而適千里者, 始於出門, 安知夫百萬豼貅、千里舳艫, 馳騁乎四海, 凌駕乎萬國者, 不由此而成乎? 但纔購一艦, 便惹異議, 是豈奉承明詔之意哉? 第其購買之初, 臣雖不得與聞, 而事關創始, 論貴廣博, 不令政府爛議, 而獨自臣部契約, 恐欠事體, 所以致紛紜之論耳。 臣愚以爲我國兵制, 原有水軍、戰船, 如統制營、各水營, 今雖廢止, 而其時設施接濟之資, 果何從而出也? 地不加小, 財不加損, 而僅具一艦, 先憂經用, 此臣之所未解也。 以臣而慮, 恐無籌餉不給之患也。 曾年, 海防營在江華、富平等地, 統制營在鎭南郡, 而營廨尙存。 今以江華、鎭南兩鎭衛隊, 變作海軍營而居之, 則國無設營之費, 而水兵粗可備矣。 況今水賊竊發, 商舶難通, 沿海口岸, 潛商爲弊; 以此軍艦, 巡綽海面, 足以詗戢匪類, 保護國境, 豈可曰無其用哉? 軍艦一年之費, 數頗不尠, 則不可無別般鳩財。 前海防營時, 有所謂各浦口營業稅者, 屬之該營, 以爲經費。 該營廢後, 仍爲客主輩之利竇, 今宜還屬於海軍營。 其外海稅、船稅等項, 本爲軍餉設也, 亦令移付於營費。 又其統、水各營所屬經用, 更加査櫛, 以付本營, 則足以有贏餘。 募兵、造艦漸次增加, 以圖擴張, 何難之有哉? 而臣以愚昧, 不敢知玆事之是否可行, 而惟幸其國有軍艦, 率爾妄陳, 滋甚悚惶。 伏望聖上俯垂鑑諒, 亟下臣疏於政府, 以爲會議稟處之地, 千萬幸甚。
批曰: "授纔未幾, 豈遽言辭? 尾陳, 令政府爛商稟處。"
- 【원본】 47책 43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군사-지방군(地方軍) / 재정-잡세(雜稅) / 재정-군자(軍資) / 인사-임면(任免)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