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비를 황귀비로 봉할 것을 청하다
의정부 의정(議政府議政) 윤용선(尹容善)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요즘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 조병식(趙秉式), 의정부 참정(議政府參政) 김성근(金聲根), 내부 대신(內部大臣) 이건하(李乾夏) 등 여러 신하들이 순비(淳妃)를 황귀비(皇貴妃)로 올려 봉할 것을 청한 상소에 내리신 비지(批旨)를 보니, 아직도 윤허하는 명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예로부터 제왕들이 벼슬을 만들고 등급을 나누어 공로와 덕에 보답하는 것은 안팎이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순비는 참으로 한결같은 덕을 지니고서 지난번 나라가 간고한 때에 폐하를 돕고 황태자를 보호하느라고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경효전(景孝殿)의 제사를 받드는 데에 이르러서는 공경심을 한껏 다하였으며, 이미 폐하의 총애를 받고 황자까지 낳음으로써 자손이 끝없이 번성할 경사를 열어 놓았으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치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이미 신하와 백성들의 소원을 따라 여러 후궁들 중에서 뽑아 비(妃)로 높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이것은 일시적인 조치일 뿐, 그 훌륭한 공로와 덕을 다 보답해 주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지금 영친왕(英親王)이 총명하고 빨리 성숙하여 뒷날 하간왕(河間王)이나 동평왕(東平王)과 같은 명예를 기대할 수 있으니 폐하의 보답이 어찌 이 정도에 그치고 말 수 있겠습니까?
명(明) 나라 제도를 삼가 상고하건대 후궁의 직위를 흔히 비라고 불렀는데, 그중 공로와 덕이 있거나 황자(皇子)를 낳았을 경우에는 황귀비로 봉한 규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폐하가 순비에게 베풀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로 인해서 귀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공통된 의리이니, 아들이 황제의 아들인데, 자신이 황제의 귀비가 되지 못하는 이치는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지금 하늘의 보살핌과 도움으로 나라에 경사가 겹쳐 온 나라가 기뻐서 춤추며 여러 나라에서도 축하하러 오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지난날의 간난신고(艱難辛苦)가 바뀌어 오늘날의 복으로 된 것을 한번 생각하신다면 응당 순비가 도와준 공로가 있음을 인정하고 보답해 줄 생각을 해야 하며, 더구나 나라의 체통을 존중하는 의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옛 제도를 상고해 보아도 그렇고 또 사리로 따져 보아도 이러하기에 감히 번거롭게 구는 것을 무릅쓰고 말씀을 올리니,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즉시 명을 내려 순비를 황귀비로 올려 봉함으로써 나라의 체통을 높이고 여러 사람들의 바람에 부응해 주신다면 더없이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경(卿)이 진술한 것은 역대로 근거할 만한 규례가 있는 것이지만 급한 일이 아니니, 오늘이 아니라도 어찌 할 만한 날이 없겠는가? 그러나 경처럼 노숙하고 예법을 아는 사람이 이처럼 간절하게 아뢰므로, 예의로 대우하는 원칙에서 거절만 할 수는 없다. 특별히 경의 청에 부응하여 응당 행해야 할 예(禮)에 대해 처분을 내리겠다. 경은 그리 알라."
하였다.
- 【원본】 46책 42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68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二十四日。 議政府議政尹容善疏略: "臣於日者, 得伏見宮內府特進官趙秉式、議政府參政金聲根、內部大臣李乾夏諸臣之疏請進封淳妃爲皇貴妃, 批旨下者, 尙靳兪音, 不降成命。 臣竊以爲自古帝王, 所以設爵分等, 以酬賞功德, 外內一也。 伏念, 淳妃秉德誠壹, 當國家往年艱難之際, 左右聖躬, 保護東宮, 勤勞積多。 以至景孝殿享祀之奉, 克致虔敬, 旣又荷蒙聖祉, 以生皇子, 以啓麟趾之慶於無窮, 海內群生, 莫不欣悅。 故陛下旣已順臣民之願, 拔諸嬪御之中, 而陞之爲妃矣。 然臣以爲此一時之擧, 未足以盡其功德之美。 況今英親王聰明夙茂, 他日河間、東平之令譽, 可以想望, 則陛下之所以酬賞者, 豈可止此而已哉? 謹按有明之制, 後宮之職, 多稱爲妃, 而其有功德及生皇子者, 嘗有進封爲皇貴妃之例。 則今陛下之所當施之於淳妃者, 可知矣。 母以子貴, 古今通誼, 子爲皇之子, 而身不得爲皇之貴妃, 恐無是理也。 且今皇天眷佑, 邦慶荐臻, 四方歡欣鼓舞, 萬國亦將來賀, 陛下試念昔日之艱虞者轉而爲今日之豐亨, 則固當以淳妃爲有贊助之功, 而思所以酬報。 況在尊國體之義, 有所當行者乎? 攷之於古制, 旣如彼, 揆之以事理, 又如此, 玆敢冒煩仰陳, 伏望陛下淵然深思, 卽下成命, 進封淳妃爲皇貴妃, 以尊國體, 以副輿願, 千萬幸甚。" 批曰: "卿之所陳, 寔是歷代可援之典禮, 而事係不急, 雖非今日, 豈無可爲之日? 第以卿老成識禮, 陳懇如此, 其在禮遇之地, 不可靳持。 特副卿請, 禮所應行, 當有處分矣。 卿其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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