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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42권, 고종 39년 10월 19일 양력 1번째기사 1902년 대한 광무(光武) 6년

중화전이 완성되어 축하를 받고 대사령을 반포하다

중화전(中和殿)에 나아가 축하를 받고 대사령(大赦令)을 반포하였다. 반조문(頒詔文)에,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듣건대, 제왕들의 궁실 규모는 웅장하고 화려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황제의 위엄으로 큰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이렇게 해야만 임금의 지위가 더없이 엄하여 높고 낮은 구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황제(黃帝)의 합궁(合宮)이나 주(周) 나라의 명당(明堂)은 제왕이 정사하는 곳으로서, 천자가 제후들의 조회를 받을 때 도끼 모양의 그림이 있는 병풍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서 선 곳이 바로 이곳이었으니, 이런 곳이라야 여러 나라의 관원들로 하여금 돌아가며 절을 하고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다.

9개의 실(室), 7개의 자리〔筵〕, 4개의 문〔戶〕, 8개의 창〔牖〕, 총장(總章)과 청양(靑陽)의 곁방〔偏室〕의 수와 백관들의 반열도〔玉帶之圖〕를 지금 고증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경복궁(景福宮)근정전(勤政殿)창덕궁(昌德宮)인정전(仁政殿)은 바로 군주가 정사를 하고 조회를 받고 회동을 하는 곳이다.

짐은 하늘의 도움과 조종(祖宗)의 도움으로 오래된 나라를 새롭게 하여 모든 문물과 제도를 완비하였다. 그러나 짐이 경운궁(慶運宮)에 임어(臨御)하면서부터 모든 제도를 경장(更張)하다 보니, 실로 모두 새로 시작하는 일로써, 경비가 넉넉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여력이 없음을 염려하여 육침(六寢)이 안팎의 구별이 없고 백관들이 포진하기에도 비좁았지만 오늘까지 7년이 되도록 정전(正殿)을 미처 짓지 못하다가 이제 와서야 공사를 하기로 결단하여 마침내 완성하였다. 서두르지 말게 하였으나 아들이 부모의 일에 달려오듯이 모든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모퉁이와 섬돌은 오로지 옛 규례대로 따라 전보다 크게 하지 않았고 당(堂)의 구조나 단청 등은 그저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지도록 튼튼하게 하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공사를 하여 이미 완공되었는데, 웅장한 건물이 우뚝 솟아 대궐은 더욱 휘황찬란하니 경사치고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음력 9월 18일 새벽에 천지와 종묘 사직(宗廟社稷)에 삼가 고했으며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선포한다.

이처럼 경사를 축하하는 때를 만났으니 어찌 은혜를 베푸는 일을 늦출 수 있겠는가? 시행해야 할 사항들은 아래에 조목별로 열거한다. 【이하는 생략한다.】

아! 터전을 태산 반석처럼 튼튼하게 다져 대궐이 찬연히 새로워졌다. 만대를 두고 태평할 길을 열어 경사는 종묘사직에 미치고 다섯 가지 복을 거두어 펴서 신하와 백성들과 함께 즐긴다. 천하에 선포하여 모두 알게 하라."

하였다.


  • 【원본】 46책 42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6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十九日。 御中和殿, 受賀, 頒赦。

奉天承運皇帝詔曰: 蓋聞帝王家宮室之制, 非欲爲壯麗之觀也, 夫以萬乘之威, 臨九宇之大, 如是而見簾陛之截而尊卑之別矣。 黃帝有合宮, 有明堂, 王者之堂也。 天子朝諸侯, 負斧扆, 南向而立者, 此也。 然後可使萬國衣冠回旋拜跪矣。 九室七筵、四戶八牖、總章靑陽之个、公玉帶之圖, 今未可考徵, 而國家景福宮勤政殿昌德宮仁政殿, 乃嚮明出治朝覲會同之所也。 朕荷上天祖宗眷顧而騭佑, 邦舊命新, 制作悉備。 而自朕臨御慶運之宮, 百度更張, 實皆草創, 言念經費之未裕、民力之未紓, 六寢無辨於外內, 千官狹隘於布寘, 式至今七載之間, 法御之正衙, 尙未遑焉, 于時興工, 惟斷乃成。 勿亟子來, 黎庶雲集。 維隅平墄, 惟是遵先憲而無加于前, 堂構塗墍, 但令貽來昆而永鞏於後。 自春徂秋, 役旣告訖, 輪奐屹峙, 象闕增輝, 慶莫斯大。 乃於陰曆九月十八日曉, 祗告于天地、宗廟、社稷, 亦粤臣庶, 誕告用亶。 値玆燕賀之辰, 詎緩霈澤之施? 所有合行事宜, 條列于左。 【以下略】 於戲! 盤泰重鞏, 觚稜煥新。 開萬世泰平, 慶衍宗社, 斂五福敷錫, 樂與臣民。 布告天下, 咸使聞知。


  • 【원본】 46책 42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6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