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42권, 고종 39년 3월 16일 양력 1번째기사
1902년 대한 광무(光武) 6년
어진과 예진의 제작에 대하여 논하다
어진도사도감 도제조(御眞圖寫都監都提調) 이하를 【도제조(都提調) 윤용선(尹容善), 제조(提調) 민영환(閔永煥), 윤정구(尹定求), 이원일(李源逸)이다.】 소견(召見)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어진(御眞)과 예진(睿眞)을 그리는 것은 사체(事體)가 매우 중대한 일인데 요즘은 숙련된 화원(畵員)을 또한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석진(趙錫晉)의 화격(畵格)이 좀 낫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이 한 사람의 손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도화서(圖畵署)에 있건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건 따질 것 없이 뛰어나게 이름난 사람들은 모두 초집(招集)하여 각기 초벌 그림을 그리도록 할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화원들이 한꺼번에 입시(入侍)한다는 것은 역시 번잡하고 외람될 것 같습니다. 도감(都監)에서 우선 재능을 시험해서 가장 우수한 자를 선발하여 입시해서 초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46책 4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44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예술-미술(美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