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직이 충신에 대한 정문의 건립을 건의하다
의정부 찬정(議政府贊政) 이용직(李容稙)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의 방계 친족인 증 이조 판서(吏曹判書) 충간공(忠簡公) 이개(李塏)는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서 그 높은 충성과 큰 충절은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신이 다시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제 마음에 오래도록 한스러웠습니다. 옛날 우리 역대 임금들 때에는 충성과 절개를 장려하고 고무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 사육신에게 이미 관직을 회복시키고 작호(爵號)와 시호를 추증하며 치제(致祭)하고 또 그들을 모신 서원(書院)에 사액(賜額)해 주었고 백대토록 제사를 옮기지 말라고 명령함으로써 오랫동안 제사를 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저 세상에서 억울해 하는 분의 공을 드러내고 위로해 주는 정사일 뿐만 아니라 강상(綱常)을 추켜세우고 명절(名節)을 장려하기 위한 것으로 참으로 아주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옛날 선조 대왕(宣祖大王)은 사육신의 자손들을 거두어 등용하라는 전교를 내렸고 숙종(肅宗) 때에는 선조(宣祖)의 이 전교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여겨서 즉시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자손을 수소문하여 급히 보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육신 중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에게만 후손이 있고 그 밖의 다섯 신하에게는 모두 후손이 없어서 외가의 후손으로 제사를 받드는 사람도 등용되는 은택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방계 친족인 충간공 이개의 경우에는 제사를 주관할 친손과 외손들이 모두 없어서 노량진 강가에 있는 무덤이 길손들만 구슬프게 만들었으니 떠도는 넋이 어찌 굶주리지 않겠습니까? 이 다섯 신하의 열렬하고 뛰어난 기개와 절조는 천지를 울리고 해와 달을 꿰뚫을 만한데도 의지할 데 없이 방황하니 어찌 끊어진 것을 잇고 망하는 것을 보존하는 의리에 흠이 되지 않겠습니까?
옛날 선조(宣祖) 때 임진왜란에서 절개를 지켜 죽은 박호(朴箎)는 바로 세 종사관(從事官)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역시 대를 이을 후손이 없기 때문에 정조 선황제(正祖宣皇帝)는 특별 명령으로 후사를 세워 제사를 받들게 하였습니다. 비록 대가 바뀌면 소목(昭穆) 차례를 계속 그대로 두기는 어렵지만 예법에는 의리를 거론하는 것이 있고 일에서는 권도(權道)도 중요하여 귀신의 이치와 인정(人情)에 부합되게 함으로써 한 시대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로 하여금 유감이 없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큰 성인의 조처가 모든 제왕들보다 뛰어나 능히 한 시대의 전례(典禮)와 천고의 표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후손이 없는 다섯 신하들에 대하여 정조(正祖) 때 행했던 박호의 고사(故事)에 의거하여 역시 모두 사손(祀孫)을 세우도록 명령함으로써 끊어진 대를 이어 오랫동안 지내지 못한 제사를 지내게 하고 폐하의 깊고 큰 사랑과 혜택이 무덤 속에 누워있는 사람들에게도 미치게 한다면 이야말로 훌륭한 시대의 아름다운 일이 되리라고 봅니다.
이에 신은 외람되고 망령됨을 헤아리지 않고 종중(宗中)에 알린 다음 일가(一家) 사람인 이두복(李斗馥)의 둘째 아들 이중원(李重遠)을 충간공 이개의 사손으로 세우려고 합니다마는 신중한 문제이므로 신의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라고 해서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특별히 윤허하여 빨리 예원(禮院)에서 품처(稟處)하게 함으로써 대를 이을 사람을 세워 제사를 받들게 하는 동시에 또 정려문을 세우도록 명함으로써 풍속과 교화를 바로 세우소서. 이 밖의 네 신하인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 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에 대해서도 각기 그들의 집안에서 사손을 세우게 하며 모두 정려문을 세워주는 은전을 베풀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나라에서 충성과 절개를 장려하는 뜻에 부합되는 것이니 장례원(掌禮院)으로 하여금 모두 상소의 내용대로 시행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 【원본】 46책 42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4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
議政府贊政李容稙疏略:
臣之傍親贈吏曹判書忠簡公 李塏, 卽世所稱六臣之一, 而其危忠大節, 載在史乘, 臣無容復贅。 然惟以奉祀無主, 有憾於私情者久矣。 昔我列聖朝, 以奬勵激勸爲急務, 其在六臣, 旣復官而又贈爵諡, 旣致祭而又賜院額, 又命不祧於百世, 使之久食崇報。 此不但昭晰慰悅於泉臺掩抑之魂, 其所以扶植綱常、砥勵名節者, 固已逈出尋常萬萬矣。 昔宣祖大王, 嘗有六臣子孫收用之敎, 而在肅宗朝, 以爲宣廟之此敎, 非出偶然, 卽令道臣搜聞馳啓。 六臣中惟忠正公臣朴彭年有後, 其餘五臣, 俱無嗣, 有以外裔奉祀, 而亦沾恩榮。 至於臣之傍親忠簡公臣塏, 旣無內外雲仍以主烝嘗, 則江上之冡, 只使行人悽愴, 羈旅之魂, 不其餒乎? 此五臣烈烈卓卓之氣節, 足以軒天地貫日月, 而猶未免棲遑無依, 豈非有欠於繼絶存亡之義乎? 昔在宣廟龍蛇之難, 殉節臣朴箎, 卽三從事之一, 而亦無嗣後, 故正祖宣皇帝, 特命立嗣, 俾奉香火。 雖其世次迭遷, 昭穆難繼, 然禮有義起, 事貴達權, 允合於神理人情, 而使一世忠義之士, 無復餘憾。 是知大聖人所作爲, 出乎百王, 足以爲一代之典禮、千古之柯則。 臣愚以爲, 五臣之無後者, 當依正祖朝朴箎故事, 亦皆命立祀孫, 俾續已絶之代, 以奉久廢之祭, 使陛下之深仁厚澤, 沾及於泉壤之枯朽, 實爲聖朝美事。 故臣不揆僭妄, 諗于宗中, 將以族人斗馥之第二子重遠, 立爲忠簡公 塏祀孫, 而事係愼重, 不可以臣家私事, 有所擅便。 伏乞聖明特賜允從, 亟令禮院稟處, 使之立嗣, 以奉香火, 又命旌閭, 以樹風敎。 而其餘四臣忠文公 成三問、忠景公 柳誠源、忠烈公 河緯地、忠穆公 兪應孚, 亦令各其宗族立其祀孫, 竝施綽楔之典焉。
批曰: "允合朝家敦尙忠節之意, 令掌禮院, 竝依疏辭施行。"
- 【원본】 46책 42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4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