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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41권, 고종 38년 10월 9일 양력 1번째기사 1901년 대한 광무(光武) 5년

지방의 재해에 대하여 명하다

조령을 내리기를,

"진황(賑荒)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정사이다. 《주례(周禮)》에는 12월에 진황하는 정사가 있고 한(漢) 나라에서는 봄이 한창인 때에 진대(賑貸)를 의논하였으니, 대개 천재(天災)가 불시에 들이닥쳐 숱한 민생(民生)들이 쪼들리는 만큼 비록 태평한 세월이라도 조정에서 무휼(撫恤)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살아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흉년이야 더 말할 것이 있는가? 비록 부자라고 하더라도 예비하지 않으면 또한 곤궁을 면할 수 없는데, 하물며 가난한 백성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는가?

짐(朕)은 생각하건대, 나의 백성들이 이처럼 큰 흉년을 만나 가을이 되어도 낫질할 것이 없으니, 농가들에서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황정(黃精)은 싹트지 않고 오매(烏昧)는 나지 않는데다가 더구나 겨울이 점점 다가와서 온 산에 눈이 쌓이면 추위에 떨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어 참혹하고 스산할 것이다. 빌리자니 온 동리가 다같이 굶는 판이고 호소하자니 고을에 전혀 저축이 없어서, 이에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며 노약자들은 구덩이에 굴러 떨어지고 드세고 건장한 사람들은 도적으로 되어버릴 것이다. 말이 이에 미치고 보니 짐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고 을야(乙夜 : 오후 10시경)에도 잠들지 못하고 병침(丙枕 : 오후 12시경)까지 뒤척이는 것이 여러 번이다.

그래서 일전에 특별히 조칙(詔勅)을 내려가지고 ‘마음에 두고 잊지 아니하며 백성들을 구제하라.’는 정 백자(程伯子 : 북송(北宋)의 정호(程顥))의 말까지 인용하여 각도(各道)의 수령(守令)과 재신(宰臣)들을 면려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늦출 수 없는 것인 만큼 반드시 먼저 조정에서부터 속히 방략(方略)을 시행한 다음에야 관찰사(觀察使)와 수령과 재신들을 신칙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사람의 지려(志慮)와 정신(精神)은 하나로 전념하지 않으면 집중되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조정에만 맡겨두면 또 그럭저럭 질질 끄는 폐단이 생길 것이다.

삼가 열성조(列聖朝)의 고사(故事)를 상고하건대, 우리 인조조(仁祖朝) 때부터 진휼청(賑恤廳)을 설치하고 이미 흉년을 구제하여 홍수와 가뭄이 재변(災變)으로 되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의지할 데 없는 환과고독(鰥寡孤獨)을 돌보아주었다. 이로부터 열성조들이 서로 이어오면서 애쓴 결과 드디어 가법(家法)으로 되었으니, 지금 역력히 상고할 수 있다. 아! 훌륭하도다! 우리 조정의 깊은 인자함과 후한 혜택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푹 배어든 것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짐이 사복(嗣服)한 이래로 또한 일찍이 감히 이것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갑오개혁〔甲午變更〕 이후에는 마침내 폐하고 거행하지 않았으니, 더욱 통탄할 노릇이다. 진휼청의 전례에 의거하여 별도로 한 개의 관청을 설치하여 혜민원(惠民院)이라고 칭하고 날마다 회동(會同)하여 방략을 충분히 상의하고 각기 조목별로 진달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죽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게 한다면 짐이 어찌 마음에 돌보아주는 생각이 없다고 하겠는가? 비록 풍년든 해라도 폐지하지 말고 상설로 두어 고할 데 없이 구렁텅이에 뒹구는 홀아비와 홀어미, 부모 없는 어린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를 돌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가법을 행하는 바로서, 주 나라나 한 나라에서만 아름다운 일을 한 것으로 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또 천하의 모든 나라가 다같이 행하는 일일 것이다. 각기 짐의 뜻을 잘 체득하여 형식적인 것으로만 여기지 말고 실효(實效)를 거두도록 힘씀으로써 나의 백성들을 보전하도록 하라."

하였다.


  • 【원본】 45책 41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26면
  • 【분류】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구휼(救恤)

    九日。 詔曰:

    賑荒, 有國之大政也。 《周禮》有十二荒政, 家議方春賑貸, 蓋天災有不時, 而民生多困悴, 雖樂歲, 非有朝廷撫恤, 民不得以聊生。 況凶年乎? 雖富者, 非有以豫備, 亦不能其艱, 況貧民乎? 朕念夫吾赤子遇此大歉也, 秋無掛鎌, 田家之呼庚, 其勢固也。 黃精無苗, 烏昧非産, 況漸當冬寒, 積雪滿山, 凍餓相望, 慘憺愁阻, 欲假貸乎, 則鄕隣同此頷顑, 欲號訴乎, 則郡邑無一儲蓄, 於是乎子棄其父, 父棄其子, 老弱轉于溝壑, 强壯化爲盜賊。 興言及此, 朕心惻傷, 乙夜不寐, 丙枕轉輾者, 厥惟屢矣。 是以日前, 特下詔勅, 至引程伯子存心濟物之言, 以勵各道守宰矣。 然此不可虛徐玩愒者, 則必先自朝廷, 亟施方略, 然後可以飭勵觀察、守宰。 且人之志慮精神, 不專一則不翕聚, 若泛然以責朝廷, 則又有漫漶因循之弊。 謹稽列聖朝故事, 自我仁祖朝時, 設賑恤廳, 旣有以賑救歉荒, 使水旱不能爲之災, 又有以收䘏四窮之無所依歸者。 自是列聖相繼惓惓, 遂成家法者, 今皆歷歷可攷。 猗歟盛哉! 我朝深仁厚澤之浹洽人心者, 不其在玆歟? 逮朕嗣服以來, 亦未嘗敢少忽于此矣。 至於甲午變更以後, 遂廢不擧, 尤所痛恨者也。 依賑恤廳例, 另設一官, 稱以惠民院, 逐日會同, 爛商方略, 令各條陳, 苟能使斯民不至死亡者, 朕豈無懷保之念乎? 雖豐年, 常設勿廢, 以養鱞寡孤獨之顚連無告者。 此實所以行我家法而俾不得專美者也, 亦天下萬國所同行之事也。 其各悉體朕意, 勿視以文具, 務究實效, 以保我元元。


    • 【원본】 45책 41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3책 226면
    • 【분류】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