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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41권, 고종 38년 9월 12일 양력 1번째기사 1901년 대한 광무(光武) 5년

영돈녕원사 윤용선이 예법에 대하여 아뢰다

영돈녕원사(領敦寧院事) 윤용선(尹容善)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전대의 전례(典禮)를 두루 상고하여 보았는데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우러러 진달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바로 경우궁(景祐宮) 수빈(綏嬪)의 위호(位號)를 존봉(尊封)하는 일입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옛날에는 천자(天子)의 후궁(後宮)을 비빈(妃嬪)으로 통칭하고 따로 구별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唐) 나라송(宋) 나라 이후부터 점점 차등을 두다가 명(明) 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비(妃)를 책봉하고 빈(嬪)을 책봉하는 예법이 각각 달라서 보(寶)를 쓰기도 하고 규(圭)를 쓰기도 하였으며 물건에도 차이가 있게 되어, 비와 빈의 존비(尊卑)의 구분이 여기에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래서 천자의 후궁이라야 비라고 불리고 제후왕(諸侯王) 이하의 후궁은 빈이라고만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 왕조의 후궁들이 빈을 넘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그 예(禮)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황제 폐하께서 타고난 성인의 자질로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하는 날을 당하여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마음에 순응하여 황제라 칭하고 추숭(追崇)하는 전례를 종묘(宗廟)에 고한 만큼 경우궁은 바로 정조 선황제(正祖宣皇帝)의 빈으로서 대체로 천자의 후궁을 비로 부르는 예(例)를 적용한다면 응당 그를 비의 칭호로 높여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순조 숙황제(純祖肅皇帝)를 낳음으로써 억만 년 무궁할 터전을 마련하는 업적을 이룩하였으니, 황제의 생모를 태후(太后)로 높인 명나라의 일에 비추어보고 당시 순조의 효성으로 미루어본다면 높여 모시려는 그 뜻으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에 대해 선뜻 의논할 수 없다고 해서 빈의 칭호를 아직도 그대로 지니고 있으니, 어찌 미처 시행하지 못한 전례가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예라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의해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여야 할 것을 높이고 높이지 말아야 할 것을 높이지 않는 것은 모두 하늘의 이치입니다. 전에 천자의 예를 행하기 전에는 비록 임금의 어머니로 높였더라도 일단 선왕(先王)의 후궁인 이상 그 지위가 빈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이미 천자의 예를 행하였으니 천자의 후궁은 응당 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옛 법을 상고해도 근거가 있고 가까운 예를 참고해도 의심할 바 없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 수빈에게 비의 칭호를 빨리 올림으로써 정조의 덕을 빛내고 순조의 효성을 드러낸다면 여기에서 선대의 공로와 업적을 계술(繼述)하는 폐하의 훌륭한 뜻이 어찌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신은 원래 식견이 없어서 단지 옛 전례만 가지고 나라의 크나큰 예를 논하였으니, 참으로 더없이 황송합니다. 신의 이 글에 대하여 정부의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보고 중론(衆論)을 널리 받아들여 재처(裁處)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노성(老成)하고 숙덕(宿德)이 있으며 박식하고 예를 아는 경(卿)으로서 남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말을 이렇게 하였으니, 절절한 충성과 사랑의 뜻이 말에 그대로 넘쳐 짐(朕)은 이에 흠탄(欽歎)한다.

경우궁을 비로 존봉하자고 진달한 문제는 과연 미처 시행하지 못한 전례로서 추모하며 감흥하는 짐의 성의로 보아 자연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확실한 근거로 명나라의 전례가 있는 이상 무슨 주저할 점이 있겠는가? 당장 조칙(詔勅)을 내리겠다."

하였다.


  • 【원본】 45책 41권 5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2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풍속-예속(禮俗) /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 왕실-국왕(國王)

十二日。 領敦寧院事尹容善疏略:

臣歷考前代典禮, 有一冒昧仰陳者, 卽景祐宮 綏嬪位號尊封事也。 臣竊觀古者天子之後宮, 通稱爲妃嬪, 未嘗區以別也。 自以來, 漸有差等, 至朝則冊妃、冊嬪, 禮各有節, 用寶、用圭, 物亦有異, 而妃嬪尊卑之分, 於是乎顯殊矣。 故惟天子之後宮, 仍得稱妃, 自諸侯王以下, 惟嬪而已。 我朝後宮之不越乎嬪, 蓋其禮然也。 欽惟我皇帝陛下, 以天縱上聖之姿, 當邦命維新之日, 應天順人, 光稱大號, 追崇之典, 上于宗廟, 則景祐宮正祖宣皇帝之嬪也。 夫用天子後宮稱妃之例, 則卽宜其崇以妃號。 而況誕降我純祖肅皇帝, 垂基億萬年無疆之業, 以朝皇帝所生母尊爲太后之事, 揆之而推純祖當日之聖孝, 則其崇奉之意, 宜靡不用其極矣。 然今不可遽議于此, 而嬪號之尙襲, 豈非未遑之典乎? 夫禮者, 因天理而起者也。 故當尊而尊, 不當尊而不尊, 皆天理也。 向也未行天子之禮, 則雖尊爲王之母, 而旣是先王之後宮, 則其位不得不止於嬪, 今也已行天子之禮, 則天子後宮, 應得爲妃。 考之古典而有據, 參之近禮而無疑矣。 伏乞陛下亟上綏嬪妃號, 以光正祖之德, 以彰純祖之孝, 于以爲陛下繼述功烈之盛, 豈不偉哉? 臣素無識見, 只以古例, 論國家之大禮, 誠甚萬萬惶悚。 以臣此章, 下詢于政府諸臣, 博採衆論而裁處焉。

批曰: "以卿老成宿德, 以卿博識知禮, 乃爲此人不能言之言, 斷斷忠愛之義, 溢於言辭之表。 朕庸欽歎。 所陳景祐宮尊封妃號事, 果是未遑之典, 而其在朕追慕興感之誠, 自不能已也。 況有朝典禮之確據, 夫有何持疑之端哉? 卽當有詔勅矣。"


  • 【원본】 45책 41권 5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2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풍속-예속(禮俗) /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