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을 모사하는 일은 흥덕전에서 진행하게 하다
약원(藥院)에서 입진(入診)하였다. 이모중건도감 도제조(移摹重建都監都提調) 심순택(沈舜澤)이 함께 입시(入侍)하였다. 심순택이 아뢰기를,
"진전(眞殿)에 불이 난 것은 옛날에도 드문 괴변입니다. 너무나도 원통하여 아뢸 말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날 밤은 초하루 여름에 분향(焚香)할 때도 아니었고 또 지척에 있는 곳인데 어떻게 잡인들이 왕래할 수 있었겠는가? 밤중이 되어 바로 자리에 누우려고 할 적에 갑자기 동북 변두리에서 불길이 하늘에 뻗쳤는데 변이 어디서 생겼는지 알 수 없어 대궐문을 굳게 닫고 외인(外人)들을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더니 삽시간에 불이 전각까지 번져서 끌 수 없게 되었다. 너무나 황공하고 급한 가운데 더없이 중대한 어진(御眞)을 봉출하지 못하였다. 정성과 효성이 미치지 못하여 전에 없던 변고가 생긴 것이니 절통하기 그지없다."
하였다. 태의원 도제조(太醫院都提調) 조병세(趙秉世)가 아뢰기를,
"신도 이 변고를 듣고 놀랍고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 밤을 세워 올라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전에 능침에 불이 났을 때에는 단지 하루 거애(擧哀)하였지만 이번에는 사흘 거애하고도 오히려 여한이 있다. 정묘년(1627)과 병자년(1636)의 오랑캐 난리 이외에 더는 이와 같은 큰 화변이 없었다. 그 화재의 원인에 대하여 내가 친국(親鞫)하여 끝까지 캐려 하였으나 신식(新式)에 구애되어 다만 경부(警部)에 분부하고 만 것이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만약 폐하가 직접 신문하게 된다면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 화를 입을 염려가 있으므로 유사(攸司)에서 사핵(査覈)하여 중하게 다스리게 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효종(孝宗)이 심양(瀋陽)에 가 있을 적에 지은 붉은 행전(行纏) 및 마고자(摩古子)와 열성조들이 쓰신 고적(古跡)들이 모두 불타버리는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그 절통한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준원전(濬源殿)의 어진(御眞)을 모셔오는 의식 절차는 인조조(仁祖朝) 신미년(1631) 집경전(集慶殿)의 전례대로 간소하게 하라."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올 봄에 어진을 이모(移摹)할 때에 연로(沿路)의 지방에 폐를 끼친 것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고, 심순택이 아뢰기를,
"이모하는 의식 절차는 이미 간단하게 한 전례가 있으니 거기에 근거해서 진행할 것이나, 이모할 장소는 어디로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흥덕전(興德殿)에서 설행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신들이 내일 회동하여 거행하겠습니다."
하였다.
- 【원본】 44책 40권 96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84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二十二日。 藥院入診。 移摹重建都監都提調沈舜澤, 同爲入侍。 舜澤曰: "眞殿失火, 罕古變怪, 而痛廓萬萬, 無以仰達矣。" 上曰: "此夜乃非朔望焚香之時, 且咫尺之地, 則豈有雜人之往來乎? 夜是將半, 而方欲寢睡之際, 忽於東北邊, 火焰亘天, 不知變自何出。 故堅閉闕門, 不通外人, 頃刻之間, 火已遍熾於殿閣, 無以得撲滅。 而踧踖蒼黃之中, 莫重御眞, 未得奉出。 乃誠孝未格而有此無前之變, 痛迫極矣。" 太醫院都提調趙秉世曰: "臣亦聞此變, 不勝驚悚, 罔夜上來矣。" 上曰: "曾於陵寢失火, 但一日擧哀。 然而至於今番, 三日擧哀, 猶有餘憾矣。 丁卯虜亂、丙子胡亂以外, 更無如此大變矣。 其回祿之根因, 當欲親鞫窮覈, 而拘於新式, 但已爲分付于警部矣。" 秉世曰: "果若親讞, 恐或有玉石俱焚之慮也。 令攸司査覈重治, 恐合事宜也。" 上曰: "孝宗朝嘗在瀋陽時, 衣製紅纏、摩古子, 與列聖朝御題古跡, 竝未免回祿之患, 其所痛迫, 曷以形言? 而璿源殿御眞奉來儀節, 謹依仁祖朝辛未集慶殿已例, 簡率矣。" 秉世曰: "今春御眞移摹時, 沿路地方, 其所貽弊, 已不少矣。" 舜澤曰: "移摹儀節, 旣有簡率之前例。 依此設行, 而移摹處所, 以何處爲定乎?" 上曰: "以興德殿設行可也。" 舜澤曰: "臣等明日當爲會同擧行矣。"
- 【원본】 44책 40권 96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8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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