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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40권, 고종 37년 10월 15일 양력 2번째기사 1900년 대한 광무(光武) 4년

산릉을 간심하고 온 대신 이하를 소견하다

산릉(山陵)을 간심(看審)하고 온 대신(大臣) 이하를 소견(召見)하였다. 【의정부 의정(議政府議政) 윤용선(尹容善), 천릉도감 제조(遷陵都監提調) 민영준(閔泳駿), 산릉도감 제조(山陵都監提調) 민응식(閔應植), 김영목(金永穆), 궁내부 대신 서리(宮內府大臣署理) 민종묵(閔鍾默), 학부 대신(學部大臣) 김규홍(金奎弘), 장례원 경(掌禮院卿) 윤정구(尹定求), 상지관(相地官) 이병헌(李秉憲) 등이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신들이 명을 받들고 군장리(群場里) 임좌(壬坐), 정안리(正安里) 계좌(癸坐), 팔곡산(八谷山) 계좌를 간심하고 여러 상지관(相地官)과 의논하여 보니, 군장리 임좌에 대해 상(上)을 쓴 자가 매우 많았으며 정안리 계좌에 대해 상을 쓴 자는 군장리보다 적었습니다.

신들이 풍수(風水)의 이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고 상지관이 논한 것에 대해서도 좋고 나쁜 것을 가려내지 못하고 있으나, 평범한 안목으로 말하더라도 토덕(土德)이 돈후하고 산의 기세가 명랑하기는 군장리 임좌나 정안리 계좌가 모두 그러했습니다. 상지관이 대령하고 있으니 하순(下詢)하신다면 자연히 통촉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짐도 일찍이 상지관의 말을 들으니 모두 군장리가 좋은 자리라고 하였다. 이제 물어보겠다. 경들이 보기에는 두 곳 가운데서 어느 곳이 낫던가?"

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지관의 말은 군장리의 임좌는 산세가 웅장한데다 뻗어 내린 용맥(龍脈)에 왕자혈(王字穴)이 있어서 능침(陵寢)을 쓸 만한 대지(大地)라고 하였습니다. 정안리 계좌는 용세(龍勢)가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감싸고 있으므로 흠 없는 길지(吉地)라고 하였습니다. 임좌는 흙 색깔까지도 징험하였습니다. 계좌는 흙 색깔은 아직 징험하지 못했으므로 감히 질정하여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안목으로 보더라도 임좌가 계좌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상지관을 입시하라고 명하자 이병헌 등이 앞에 나아가 보고하기를,

"군장리 임좌는 청룡과 백호가 웅장하게 감싸고 안산(案山)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참으로 상길(上吉)의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안리팔곡산의 계좌는 것은 모두 이만 못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은 다시 가서 군장리정안리를 간심하고 오라."

하였다.


  • 【원본】 44책 40권 9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83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召見山陵看審大臣以下。 【議政府議政尹容善、遷陵都監提調閔泳駿、山陵都監提調閔應植·金永穆、宮內府署理大臣閔種默、學部大臣金奎弘、掌禮院卿尹定求、相地官李秉憲等】 容善曰: "臣等承命, 看審群場里壬坐、正安里癸坐、八谷山癸坐, 與諸地師辨論。 則於群場里壬坐, 書上者甚多, 正安里癸坐之書上者, 不及於群場里矣。 臣等於風水之理, 全無知識, 地師所論, 亦無以辨其可否。 而雖以凡眼言之, 土德敦厚, 山氣明朗, 群場里壬坐、正安里癸坐, 同然矣。 相地官待令, 若下詢, 自可洞燭矣。" 上曰: "朕亦嘗聞相地官之言, 皆以群場里爲吉地矣。 今將詢問。 而卿等所見則兩處中, 何處爲勝乎?" 容善曰: "地師之言, 群場里壬坐, 山勢雄偉, 來龍有王字穴, 爲陵寢大地云。 正安里癸坐, 龍勢無雄偉, 而龍虎拱抱, 爲無欠吉地云。 壬坐則甚至土色有徵驗, 癸坐則但土色姑未徵驗, 未敢質達。 而以凡眼見之, 壬坐似勝於癸坐矣。" 上命相地官入侍, 秉憲等進前奏曰: "群場里壬坐, 龍虎雄抱, 案對森立, 眞謂上吉之地矣。 以若正安里 八谷山癸坐, 皆爲不及矣。" 上曰: "卿等更爲進去, 群場里正安里, 再看審以來。"


  • 【원본】 44책 40권 9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83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