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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40권, 고종 37년 5월 25일 양력 1번째기사 1900년 대한 광무(光武) 4년

함흥에 남아 있는 향규 중에 신분질서를 어지럽히는 항목을 삭제하도록 하다

내부 대신(內部大臣) 이건하(李乾夏)가 아뢰기를,

"방금 함경남도(咸鏡南道)의 진신(縉神)과 유생(儒生) 이과영(李果英) 등의 상언(上言)에 대한 계하 장본(啓下狀本)을 보니, ‘삼가 아룁니다. 본도(本道) 각군(各郡)의 향규(鄕規)는 옛날 우리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함흥(咸興)에 머물렀을 때 향헌목(鄕憲目) 41조(條)를 직접 지으셨고 뒤이어 효령 대군(孝寧大君)이 명을 받들어 계속하여 풍패 향록안(豐沛鄕錄案)과 향헌 56조를 지었으며, 또 향헌비(鄕憲碑)를 세우고 직접 쓴 것이 오늘까지 전하고 있으며, 이어 전후의 책자들을 도내의 열군(列郡)에 반포하였습니다. 시골 사람들 중에서 재능과 인망이 있는 자는 향장(鄕長)으로 차출하고 문예에 우수한 자는 교장(校長)과 양감(養監)으로 차출하고 무예에 익숙한 자는 훈청(訓廳)의 수석 무관으로 차출하였는데, 온 도내 사람들이 500년 동안 받들어 준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로는 향임(鄕任)의 네 자리를 향장(鄕長) 한 자리로 바꾸고 장교(將校) 다섯 자리를 순교(巡校) 네 자리로 바꾸었습니다.

아! 저 장교와 교생(校生)의 무리들이 훈청(訓廳)의 수석 무관의 자리를 빼앗고 장의(掌議)의 명목을 더 설치하였으며 또 양감과 교장의 자리도 빼앗았으니, 500년 동안 내려오던 나라의 법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새로 만든 규정에 있는 「양반과 평민에 구애받지 말라.」고 한 한 마디 말과 관련됩니다. 이것을 구실로 삼지만 양반과 평민이라는 말이 바로 지방 양반과 지방 평민 중에 지식이 많아서 임무를 감당할 만한 자를 가리킨 것인 줄도 모르고 각부(各府)와 각부(各部)에 거짓말로 호소하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뢰한 하일청(河逸淸) 등은 향청(鄕廳)과 경의재(經義齋)를 부수는 행위까지 하였으니, 이런 자들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향읍(鄕邑)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들이 구실로 삼는 단서를 따져보면, 「양반과 평민에 구애되지 말라.」고 한 한 마디 말에 기인할 뿐입니다. 이에 감히 폐하 앞에서 상소를 올려 일제히 호소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우리 성상께서는 위로 태조 고황제의 향헌을 만드신 뜻을 이어받으시고 아래로는 태조의 고향의 향규를 살피시어 장교와 교생들이 향임(鄕任)을 침범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내부(內部)에 명하여 「양반과 평민에 구애되지 말라.」고 한 한 마디 말을 삭제해 버리고 다시 규정을 만들게 함으로써 이 옛 고향의 선비들과 무인들이 그전에 하던 소임을 회복할 수 있도록 속히 은혜로운 명을 내려 보냄으로써 일제히 호소하는 뜻에 부응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교장은 풍속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며 향임은 정무를 돕는 사람이니, 그 소임을 보면 신중하고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도(道)로 말하면 태조 고황제께서 직접 지은 향헌목을 준수하여 온 지 500년이나 되므로 더욱 특별히 그것을 신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방 제도 가운데 「양반과 평민에 구애되지 말라.」는 한 마디 말은 칙령에 실려 있으므로 선뜻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본부(本部)에서 시의(時宜)를 참작하여 순교나 교생의 무리들이 침범하고 핍박하는 것을 엄금하는 내용의 합의된 절목(節目)을 특별히 만들어 보냄으로써 한 군(郡)의 규범으로 삼게 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합당할 듯합니다. 상께서 재결(裁決)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44책 40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58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二十五日。 內部大臣李乾夏奏: "卽伏見咸鏡南道縉紳儒生李果英等上言啓下狀本, ‘伏以本道各郡鄕規, 昔惟我太祖高皇帝, 駐蹕咸興時, 御製鄕憲目四十一條, 繼以孝寧大君, 奉旨續著豐沛鄕錄案及鄕憲五十六條, 又立鄕憲碑, 親筆書之, 傳至于今, 仍以前後冊子, 頒下道內列郡。 鄕人之有才望者, 差出鄕長; 優於文藝者, 差出校長、養監; 嫺於射業者, 差出訓廳首武, 全省之內, 欽奉遵守者, 五百年于玆矣。 自甲午更張後, 鄕任四窠, 革爲鄕長一窠, 將校五窠, 革爲巡校四窠。 而噫! 彼將校、校生輩, 全奪訓廳首武, 加設掌議名色, 又奪養監及鄕長之任, 國家五百年成憲, 一朝掃地, 實由於新章程中, 「勿拘士民」四字也。 資爲口實, 而不知士民二字, 乃指鄕士、鄕民之博學可堪者, 誣訴府部, 紛挐駁雜。 甚至於亂類河逸淸等, 打破鄕廳及經義齋之擧, 此而不懲, 則至於無邑、無鄕乃已。 究其藉口之端, 則「勿拘士民」四字而已。 玆敢陳章齊籲于淸蹕之下, 伏願我聖上, 上述太祖高皇帝鄕憲法意, 俯察豐沛鄕鄕規, 將校、校生侵奪鄕任者, 一倂禁斷, 勅諭內部, 刪去「勿拘士民」四字, 更成章程, 俾此舊鄕之儒、武, 復其前業之意, 亟降恩命, 以副齊籲之忱’云云。 校長, 所以首先風化者也; 鄕任, 所以佐理政務者也。 顧其任, 則非不愼且重也。 至於該道, 則太祖高皇帝御製鄕憲目, 遵守五百年, 則其所愼重, 尤有逈別。 然地方制度中, 「勿拘士民」四字, 勅令所載, 不可遽爾刪去。 自臣部參酌時宜, 嚴禁巡校、校生輩侵逼之意, 另成完議節目, 俾爲一郡之規, 恐合事宜。 請上裁。" 允之。


  • 【원본】 44책 40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58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