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40권, 고종 37년 5월 10일 양력 3번째기사
1900년 대한 광무(光武) 4년
흥안군 이제에게 작위와 시호를 주고 계후를 세운 것을 그만두게 하다
종정원 경(宗正院卿) 완순군(完順君) 이재완(李載完)이 아뢰기를,
"흥안군(興安君) 이제(李瑅)의 사적(事蹟)은 역사책에 명백히 실려 있으므로 새삼스럽게 논하지 않더라도 임신년(1872)에 족보를 수정할 때 작위와 시호(諡號)를 주고 계후(繼後)를 세운 것은 나라의 체통으로 따져 볼 때 떳떳한 법에 어긋나므로 이제는 모두 시행하지 말고 《선원보략(璿源譜略)》을 개정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합당할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베푼 은전(恩典)과 관련되는 문제이므로 신이 함부로 처리할 수 없으니, 삼가 성상의 재결(裁決)을 기다립니다."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아뢴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임신년의 《선원보략》 중에서 계후가 문란하게 된 것은 이미 보고하고 재결을 받아서 바로잡았으니 군(君)으로 봉한 작호를 이어받은 것도 자연히 거론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44책 40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55면
- 【분류】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