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고종실록 39권, 고종 36년 11월 25일 양력 1번째기사 1899년 대한 광무(光武) 3년

장종 대왕의 부묘례를 행하다

장종 대왕(莊宗大王)의 부묘례(祔廟禮) 행하였다. 중화전(中和殿)에 나아가 황태자(皇太子)가 시좌(侍座)한 상태에서 하례(賀禮)를 받고 사면(赦免)을 반포하였다. 조문(詔文)에,

"예법에는 정상적인 것과 변통하는 것이 있으므로 인정은 굽히는 때도 있고 펴는 때도 있게 된다. 굽혀야 할 때에 굽히면 굽히는 것이 옳은 것이 되고, 펴야 할 때에 펴면 펴는 것이 옳은 것이 되는 것이니, 완전히 옳게 하는 것이 곧 바른 예법이다.

삼가 생각건대, 장종 신문 환무 장헌 광효 대왕(莊宗神文桓武莊獻廣孝大王)은 하늘처럼 굳건하고 해처럼 밝으셨다. 명령을 받고서 대리(代理聽政)을 하는 14년 동안에 순(舜)임금처럼 정사를 대행하였고 계(啓)와 같이 뒤를 이었다. 한 명의 원량(元良)이 있고 아래로 만백성의 기대를 받았다.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행을 끝내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세상을 떠났어도 사람들은 오래될수록 더욱 깊이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본이 둘이어서는 안 된다는 예경(禮經)의 의리를 삼가 지켜 아직까지 큰 덕망에 반드시 얻게 되는 이름을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의리로서는 굽혀야 하였기 때문에 인정을 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천도(天道)는 한 번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은 없기 때문에 공의(公議)가 오래되어서야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의리로서는 인정을 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 음력 10월 23일에 종묘(宗廟)에 함께 모시니 이것은 완전한 의리이며 바른 예법이다. 어찌 감히 지난 시기에 대하여 자랑하겠는가. 실로 오늘을 기다린 듯하다. 인정이 예법에 맞으니 감격이 기쁨과 함께 새롭다.

또한 정종 문성 무열 성인 장효(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 대왕은 하늘이 내신 성인이고 날로 향상된 순수한 학문이 역대 제왕 이후로 가장 훌륭하였다. 심법(心法)은 요(堯)·순(舜)·우(禹)·탕(湯)처럼 서로 전수(傳授)하였고 정사의 규구는 전(典)·모(謨)·훈(訓)·고(誥)처럼 서로 안팎이 되었다. 그 성과가 더없이 높고 컸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형용할 수가 없었다.

단지 평생을 가는 그리움이 있었으므로 남면(南面)하는 즐거움도 없었다. 조신(朝臣)들이 호소하는 것도 여러 번 거절해 버리고 왕대를 마쳤으니, 이것이 대체로 24년 동안 견지해 온 깊은 의리였다.

평소에 혐의를 분별하고 은미한 것을 밝힌 깊은 뜻을 우러러 생각하면 물론 오늘날에 그 뜻과 일을 이어가는 것이 효도가 되는 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때에 따라 마땅하게 하는 것이 의리이고 경우에 따라 행하는 것이 예법이란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종묘에 배향하고 추숭하는 이 때에 다같이 높이는 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 예경 자수 효의 왕후(睿敬慈粹孝懿王后) 김씨(金氏)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배필이 되었으며 하늘이 되고 땅이 되었다. 지극히 어려운 경우를 당하여서도 지극히 순종하였으므로 성조(聖朝)가 아름다운 며느리라고 자랑하였고, 가정을 바로잡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바로잡았으므로 영고(寧考)는 실로 남모르는 도움을 받았다. 비록 옛날에는 겸손하여 진실로 깊은 뜻을 따랐지만 오늘에 와서 높이자면 어찌 찬양하지 않겠는가?

삼가 책보(冊寶)를 받들어 정종 대왕(正宗大王)께 ‘경천 명도 홍덕 현모(敬天明道洪德顯謨)’라는 존호(尊號)를 추상(追上)하고 효의 왕후(孝懿王后)에게는 ‘장휘(莊徽)’라는 존호를 추상하는 바이다. 이미 우리 열조(烈祖)를 도와서 소목(昭穆)의 위치가 정해졌으니 돌아가신 영혼도 임하는 듯 오르내릴 것이다. 큰 예식을 빛내기 위하여 특별히 넓은 은혜를 베푸노니 실행해야 할 사의(事宜)들을 아래에 적는다. 【이하는 생략한다.】

아, 존호를 올리는 책문을 태실(太室)에 보관하고 보니 옛날을 그리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고, 같은 감실(龕室)에서 제사를 지내니 나라를 새롭게 할 운수를 맞이하게 되었다. 천하에 포고하니 모두 듣고서 알게 하라."


  • 【원본】 43책 39권 8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27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二十五日。 行莊宗大王祔廟禮。 詣中和殿, 皇太子侍座, 受賀, 頒赦。 詔文曰:

禮有經變, 故情有絀伸, 當絀而絀, 則絀爲義也; 當伸而伸, 則伸爲義也。 義之盡, 卽禮之正也。 恭惟我莊宗神文桓武莊獻廣孝大王, 體以乾剛, 繼之离明。 受命代理, 十有四年, 如之攝, 如之承。 內有一人之元良, 下係兆民之蘄向。 盛德至善, 終不可諠, 所以旣沒世, 而人思慕之, 愈久而愈深。 而謹守禮經不貳本之義, 未闡大德必得名之典。 蓋當時之義, 在所當絀, 故情未克伸。 而天道無往不復, 公議久而乃定, 今日之義, 在所當伸。 玆於本年陰曆十月二十三日, 躋附于廟, 此乃義之盡而禮之正也。 何敢將多于前? 允若有待於今。 情以文合, 感與喜竝。 亦粤我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 天縱之上聖, 日躋之純工, 自有帝王以來, 未有盛焉。 心法則如, 以是傳授, 治規則如典謨訓誥, 相爲表裏。 巍巍乎其有成功, 蕩蕩乎民無能名。 惟其有終身之慕, 是以無南面之樂。 屢拒廷籲, 終王之世, 玆蓋二十四年秉執之精義也。 仰體平日別嫌明微之深旨, 固知在今繼志述事之爲孝。 然念隨時制宜之謂義, 會通以行之謂禮, 肆於躋享崇報之辰, 合有追隆竝揚之典。 猗! 我睿敬慈粹孝懿王后金氏, 以聖配聖, 乾元坤元。 處至艱而至婉, 聖祖喜稱佳婦, 自正家而正邦, 寧考實賴陰功。 雖昔年之謙抑, 寔遵精微, 而今日之賁隆, 詎無揄揚? 謹奉冊寶, 追上正宗大王尊號曰‘敬天明道, 洪德顯謨’, 孝懿王后尊號曰‘莊徽’。 旣右我烈祖昭穆有秩, 亦逮前寧人陟降如臨。 用光大禮, 特霈覃恩。 所有合行事宜, 開列于後。 【以下略。】 於戲! 藏顯冊於太室, 冞增愴舊之思; 享肇禋於同龕, 益迓維新之命。 布告天下, 咸使聞知。


  • 【원본】 43책 39권 8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127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