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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7권, 고종 35년 2월 22일 양력 8번째기사 1898년 대한 광무(光武) 2년

안경수 등이 국가 성립의 두 가지 조건에 대해 상소를 올리다

중추원 1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 안경수(安駉壽) 등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 등이 생각건대 나라가 나라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 하나는 자립(自立)하여 다른 나라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스스로 닦아서 정사와 법도를 온 나라에 행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늘에서 우리 폐하(陛下)에게 부여해 준 하나의 큰 권한입니다. 이 권한이 없으면 그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립문(獨立門)을 세우고 독립회(獨立會)를 설치하여, 위로는 황상의 지위를 높이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뜻을 공고히 하여 억만년 무궁한 기초를 확립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 나라의 형세를 가만히 보건대 자못 위태로워 모든 조치가 백성들의 기대에 크게 어긋납니다.

자립에 대해서 말한다면, 재정(財政)을 남에게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남에게 양보하고, 병권(兵權)은 스스로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남이 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하들에 대한 출척(黜陟)마저 자유롭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찌 간사한 무리들이 기회를 틈타 중간에서 사욕을 부리거나 혹은 외국의 힘을 빌려 지존(至尊)을 위협하거나 혹은 풍설(風說)로 속여 성총(聖聰)을 현혹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리가 내리면 굳은 얼음이 언다는 것은 이치상 반드시 그런 것이니, 하루 이틀, 한두 가지 일에서 점점 이와 같이 되어 간다면 며칠, 몇 달 내에 전국의 권한을 모두 남에게 양보하여 결국 그 피해를 도로 입게 되지 않는다고 어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닦는 데 대해서 말한다면, 대개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전장(典章)과 법도가 있기 때문인데, 현재 우리나라는 전장이 있고 법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옛 법은 폐지하였다고 하여 시행하지 않고 새 법은 비록 정해진 것이 있긴 하지만 또한 시행하지 않습니다. 시행하지 않으니 이것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 전장과 법도가 없으니 이것은 나라가 아닙니다. 나라가 이미 나라가 아니니 사람들의 마음은 자연히 다른 나라에 의지하게 될 것이고 다른 나라도 자연스럽게 우리 내정(內政)에 간여하게 될 것입니다.

아! 이것이 어찌된 까닭입니까? 삼천 리 강토의 1,500만 인구가 모두 우리 대황제 폐하의 백성들이니, 황실을 보호하고 국권을 유지하는 것이 백성들의 직분인데 강한 이웃 나라가 외부에서 모욕하고 핍박하게 하고 성상께서 위에서 외롭고 위태롭게 계시도록 만들었으니, 이는 단지 신 등이 작은 것에만 집착하고 온 나라의 큰 것을 알지 못한 채 구차하게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면서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말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첫째도 신 등의 죄이고 둘째도 신 등의 죄입니다.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릇 오늘날 폐하의 백성이 된 자는 구차히 쇠잔한 목숨을 보존하면서 군부(君父)가 곤란을 당하는 것을 차마 보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가슴과 배를 찔러 청천 백일(靑天白日) 하에 한 번 죽음으로써 더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에 감히 엄명(嚴明)하신 폐하에게 한 목소리로 일제히 호소하는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마음을 확고히 잡으시어 삼천리강토의 1,500만 백성들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아 그 울분과 걱정을 함께 하소서. 안으로는 정해진 규정을 실천하며 밖으로는 다른 나라에 의지하지 않으심으로써 우리 황상의 권한을 스스로 세우고 우리 한 나라의 권한을 스스로 세운다면 비록 열 배, 백 배 강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감히 제멋대로 간여하겠습니까? 하늘이 밝게 내려다보고 계시거니와 신 등은 맹세코 오늘의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도리에 맞는 말은 요컨대 그것을 행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다.


  • 【원본】 41책 37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향촌-사회조직(社會組織)

中樞院一等議官安駉壽等疏略:

臣等以爲國之爲國有二焉, 曰自立而不依賴於他國也, 曰自修而行政法於一國也。 此二者, 上天所以畀付我陛下之一大權也。 無是權則無其國也。 所以建獨立之門, 設獨立之會, 上而尊皇上之位下而固人民之志, 確立萬億年無疆之基礎。 而竊觀近日國勢, 殆乎岌嶪, 凡百施措, 大違民望。 以言乎自立, 則財政焉, 不宜讓人而讓之於人, 兵權焉, 宜其自操而操之在人。 甚至於臣工之黜陟, 亦或有不得自由者焉。 是無乃奸細輩, 夤緣機會, 從中逞私, 或藉挾外權而威脅至尊, 或譸張風說而眩惑聖聰而然歟? 履霜堅氷至, 理之必然也。 一日二日, 一事二事, 駸駸然若此不已, 則幾日幾月之內, 安知不以全國之權, 俱讓於人, 有太阿倒持之悔乎? 以言乎自修, 則夫邦國之稱, 以其有典章法度也。 現今我國可曰有典章乎? 有法度乎, 舊式焉, 謂之廢止而不行; 新式, 則雖有所定, 而亦不行。 不行, 則是有而無也。 旣無其典章法度, 則是非國也, 國旣非國, 則人心自然依賴於他國, 他國亦不期然而干預於內政也。 噫, 是曷故焉? 三千里一千五百萬人口, 皆我大皇帝陛下之赤子也。 保護皇室, 維持國權, 是亦子之職。 而乃使强隣侮逼於外, 聖躬孤危於上者, 祗緣臣等只知一縷之微, 不知全國之大, 苟且因循, 以至于今日也。 言念及此, 一是臣等之罪, 二是臣等之罪也。 俯仰穹壤, 何所容措? 凡今日之爲赤子於陛下者, 與其苟保殘命而忍見君父之受困, 無寧碪其胸戟其腹, 一死於靑天白日之下, 不覩不聞之爲快也。 玆敢齊聲一籲於嚴明之下。 伏願皇上確執聖衷, 以三千里一千五百萬赤子之心爲心, 共其憤而同其憂, 內以實踐定章, 外以毋依他國, 自立我皇上之權, 自立我一國之權。 則雖有十百强敵, 孰敢擅豫也哉? 天鑑孔昭, 臣等誓不改今日之心矣。 伏乞聖明垂察焉。

批曰: "知言之言, 要在行之而已。"


  • 【원본】 41책 37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향촌-사회조직(社會組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