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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1월 7일 양력 1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산릉에 금정을 열 때 나아갔던 대신 이하를 소견하다

산릉(山陵)에 금정(金井)을 열 때에 나아갔던 대신(大臣) 이하 【의정(議政) 심순택(沈舜澤), 특진관(特進官) 조병세(趙秉世),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 민영규(閔泳奎), 내부 대신(內部大臣) 남정철(南廷哲), 장례원 경(掌禮院卿) 김영목(金永穆)이다.】 를 소견(召見)하였다.

심순택(沈舜澤)이 아뢰기를,

"신이 산릉에 나아가서 금정을 연 뒤에 흙의 색깔을 간심(看審)하니 자황색에 윤기가 흐르므로 연이어 두세 번 간심해보니 아주 썩 좋았습니다. 지관(地官)들도 상길(上吉)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조병세(趙秉世)가 아뢰기를,

"흙의 색깔이 매우 좋았으며 점점 깊이 파들어 갈수록 윤기 도는 자황색이 처음보다도 더욱 좋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흙의 색깔이 아주 좋다니 매우 다행이다. 인산(因山) 전에는 땅속이 좋은가 나쁜가를 알 수 없어 가장 염려스러웠는데 지금은 조금 마음이 놓인다."

하였다. 심순택이 아뢰기를,

"신이 이전에 새 장지(葬地)를 정할 때 참가하지 못하였다가 이번에 비로소 그 산의 판국의 형세와 광중을 직접 보았는데 보통 사람의 눈에도 과연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송(宋) 나라 때에도 풍수(風水)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주자(朱子) 또한 지리(地理)에 대하여 힘주어 말하였으니 풍수의 술법에 대해서 전혀 믿지 않을 수는 없다."

하였다. 심순택이 아뢰기를,

"주자(朱子)의 능(陵)에 대한 논의에는 명백한 근거가 매우 많습니다."

하였다. 이어 아뢰기를,

"신이 요즘 병들고 노쇠한 탓으로 특별히 몸조리를 한 다음 정사를 보라는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호(諡號)를 올리고 향을 올리는 의식과 새 능소(陵所)에 나가는 일에 있어서 의리로 놓고 볼 때 병이 있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산 날이 머지않기 때문에 지레 물러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지금 의정부(議政府)의 사무가 지체되는 것이 날로 심하니, 역시 모르는 체하면서 그냥 있기가 어렵습니다. 외람되게 감히 우러러 호소하는 바이니, 특별히 신의 병세를 헤아리시어 빨리 체차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노인이라 기력이 빠진 것이니 추후에 처분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 【원본】 40책 36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5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인사-관리(管理)

七日。 召見山陵開金井時, 進去大臣以下。 【議政沈舜澤、特進官趙秉世、宮內府大臣閔泳奎、內部大臣南廷哲、掌禮院卿金永穆】 舜澤曰: "臣進詣山陵, 開金井後, 土色看審則, 紫黃明潤, 連看至再三次, 尤極好矣。 而地官所言, 亦爲上吉云矣。" 秉世曰: "土色甚吉, 而漸至穴深, 紫黃明潤之色, 尤勝於初矣。" 上曰: "土色極好, 甚幸。 因封前, 地中吉凶, 最爲關念, 今則稍可爲慰也。" 舜澤曰: "臣曾未參見於新占時, 而今者始覩, 則局勢與穴證, 以凡眼所覩, 果爲叶意矣。" 上曰: "時亦有風水之論, 而朱子又爲威說地理, 則堪輿之術, 全不可不信矣。" 舜澤曰: "朱子山論, 頗多明據處矣。" 仍奏曰: "臣近因癃衰之祟, 特蒙調理視務之優恩。 而今番冊諡進香與新陵進詣時, 義不可以病辭兔, 强此膺命。 且因封在邇, 固不容徑庭退歸。 然顧今政府事務, 曠㾾日甚, 亦難欿然自居。 故冒敢仰籲, 特諒臣病狀, 亟賜鐫改焉。" 上曰: "老人勞瘁, 極爲悶然。 從當有處分矣。"


  • 【원본】 40책 36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15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인사-관리(管理)